『때가 차매 왔노라』고 바오로가 「갈라타서」에서 이른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神話나 하나의 傳說的인 人物이 아니라 確實한 歷史 안에서 탄생하였다.
당시에 희랍과 로마는 思想的 道德的 또는 宗敎的 立場에서 하나의 새로운 改革者를 필요로 했던 것이며, 한편 政治的으로 로마에 屬國이 된 유데아 民族은 그들의 唯一한 啓示宗敎가 國家的인 것이 되고, 政治的인 解放者로서 이제 「메씨아」를 기다리게 된다. 어떻든 「메씨아」가 이 세상에 오시기에 그 時代相은 접합되어 있었다.
『오늘 그리싀도 탄생하셨도다. 구세주 나타나셨도다. 天使와 大天使는 기뻐 노래하고 義人들은 환호하며 노래한다.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이로다. 알렐루야.』
主의 탄일, 이 날은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인류에게 빛을 밝히는 날이다. 암흑 세계는 광명의 빛으로 밝혀진다. 광명의 이날, 빛의 이날, 우리 각자는 「再生」의 날이기도 하다.
主의 탄일, 이날은 우리 각자의 「生命의 효矢」를 일러주며, 따라서 그리스도 세상에 오심은 「하느님의 백성」의 생명이 시작을 말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 탄생은 동시에 肢體인 우리들의 탄생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再生」을 가져오기 위해서 나셨다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다시 낳게될 때 오늘의 「성탄」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 탄생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 地上의 탄생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우리 마음 안에 탄생이다.
그리스도의 地上의 탄생은 육체적인 탄생, 즉 그리스도 제2탄생을 말하며 그리스도 우리마음 안에의 탄생은 우리의 정신적인 탄생, 우리의 제2탄생을 말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제1 탄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하신 하느님(성부)의 품에서 나신 영원한 탄생이다. 『너는 내 아들이니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시편 2 · 7). 따라서 天上의 탄생은 영원한 성부로부터 나신 탄생이며, 地上의 탄생은 인간의 「어머니」로부터 나신 탄생이다. 천상의 탄생은 영원 안에서의 탄생이라면 지상의 탄생은 시간 안에서의 탄생이다. 천상의 탄생은 神으로서의 탄생이라면, 지상의 탄생은 人間으로서의 탄생이다.
또한 천상의 탄생은 知性의 탄생이라면 지상의 탄생은 육체의 탄생이다. 그리고 천상의 탄생은 「아버지」로부터의 탄생이라면 지상의 탄생은 「어머니」로부터의 탄생이다. 참으로 신비스런 탄생이다. 천상에서는 어머니가 없는 탄생이라면 지상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탄생이다. 이런 신비스런 탄생 외에 또 하나의 탄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 안에의 그리스도 탄생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두 가지 탄생이 존재한다. 육체적인 탄생 정신적인 탄생이 그것이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아무라도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능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육으로조차 난 것은 육이요 神으로 조차 난 것은 神이니라』(요한복음 3장 5 · 6절)
우리들의 인간인 어머니로부터의 탄생과 성신 안에서의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영원한 아버지로부터의 탄생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성부의 知性과 동정이신 어머니이 육체로부터 나심과 같이 우리들도 자연적인 탄생과 아울러 교회의 품안에서 다시 낳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제2 탄생은 바로 그리스도 제2 탄생의목적이다. 『인간이 神으로 조차 낳기 위해서 神은 인간으로조차 났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인간에게서 낳았다』 아우구스띠누스 성인의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재생의 탄일을 맞게되는가? 영세를 받을 때 우리는 재생의 날을 맞게된다. 그리스도 신자들의 生命의 시작을 가져올 때를 말한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심은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때를 말하며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탄생하심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를 말한다. 「베틀레헴」이 구유안에 탄생하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실 새로운 생활을 개시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탄생하실 목적이다.
人間을 神의 자녀로 만든다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새로운 생활이기도 하다. 人間이 神의 아들로, 神이 人間으로, 참으로 놀랄만한 交換이며 通交다.
그리스도 탄생이 人間으로서의 그 完成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리스도 우리 마음 안에의 탄생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完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는 영해로서 이 세상에 왔으나 어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 목적을 위한 하나의 시작이며 과정이었다.
그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자랐으며 성장했다. 『영해 점점 자라시며 건강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시며, 또한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시더라』(루가복음 2 · 40). 하느님을 위해서 제물이 되기까지 성장하고 자랐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再生은 하나의 시작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完成될 때까지 자라고 성장하는데 있다. 『곧 우리 모든이로 하여금 신앙과 하느님 아들에게 대한 인식의 일치와 완전한 성년과 그리스도 열세의 풍부한 분량에 이르게끔 하시기를 위함이니라』(에페소 4 · 13)
따라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이 成熟이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를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많은 성탄을 맞이했다. 이 再生의 날은 몇번이고 회상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우리 안에서 느기게 된다. 이제 우리는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를 간직한 채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함이 참다운 성탄을 지내는 의의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실 때, 아무도 그리스도를 몰랐으며 분만할 방한간 조차 거절을 당했다. 심지어 권력을 가진 헤로데는 죽일려고까지 했다. 유데아 백성들은 정치적인 解放者로서 救世主로 기다렸기에, 비천한 구유 안에 탄생하신 救世主는 그들의 눈에는 救世主로서 뵐 리는 만무했다. 다만 「靈의 눈」을 지닌 세 박사들과 순직한 목동들만이 救世主를 알았던 것이다. 『본 땅에 오시되 그 백성들이 받아 들이지 않더라.』
인류를 구속하려는 의욕에 찬 욕망과 사랑에 충만한 마음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려는 그 은헤로운 시골처녀의 복중은 晴眼이 아닌 흐릿한 세상의 눈에는 뵐 리가 만무했다. 당시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아 사랑의 對話를 가질 수 있는 晴眼을 갖자구나.
이제 그리스도는 손에 등불을 밝혀 가시덤불의 길섶을 밝힌다. 오 영해 예수 당신은 세상이 기뻐할 바 사랑이시다. 그리스도 탄생하셧다. 자유의 탄일 기쁨의 탄일 구원의 탄일이왿. 다같이 우리 마음 안으로 「베틀레헴」을 가져와 고요히 명상에 잠겨보자.
金正元(전주 중앙본당 보좌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