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자들의 반대 이유란?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신학자들의 역사상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만큼 찬성(표면화된 지지)을 얻은 회칙은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또 한편 이번 산제회칙만큼 많은 신학자와 신자들의 반대 논란을 불러일으킨 회칙도 역사상 없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할 것인가? 또 이 회칙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대 이유는 무엇인가? 「매스·메디아에 관한 교령」 제5조에 의하면 『사람은 개인으로서나 사회의 일원으로서나 각자의 조건에 따라 알아야 할 일에 관한 보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번 산제회칙에 관해서도 그것이 크리스찬 생활에 중대한 것일수록 찬성론뿐 아니라 반대론도 소개하는 것이 가톨릭신문의 정당한 보도 자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 회칙에 찬성하지 않는 신학자들의 반대 이유를 소개하겠다.
1. 문제점은 무엇인가?
산아제한 문제를 여러 면에서 고찰할 수 있겠지만, 교회와 관계되는 면은 오직 한가지뿐이다. 즉 신학적인 면이다.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정확히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이 빚어진다.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는 오직 한 가지, 『천주께 이 문제에 관하여 무엇을 계시하셨는가?』하는 물음만이 제기될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물음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학적 또는 사회과학적 문제에 속한다. 신학은 신학적 문제에 해답을 줄 자격이 있지, 자연과학적 혹은 사회과학적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줄 수 없다. 예컨대 신학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의학적인 문제들=예를 들면, 피임약은 건강을 해치는가? 의학적으로 완전한 피임 방법이 있는가? 어떤 방법이 제일 안전한가? 등등. 이런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의학에서만 다룰 수 있고 보통으로 신학자는 관여할 수없는 문제들이다. 신학자들의 사명은 의학상의 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제시를 전하는 것이다.
㉯인구정책상의 문제들=인구정책은 그 낱말 자체가 표시하듯이 신학이 아니라 정치학 즉 국가의 정책에 속하는 문제이다. 국가는 의당히 다음과 같이 자문(自問)할 수 있다.
인구가 팽창해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국가 발전상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가? 인구의 감소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는가? 산아제한은 사회적 이득이 있는가? 등등. 신학자는 이상의 문제에 결정적인 해답을 줄 수 없고 오직 『이 문제에 있어서 하느님은 무엇을 계시하셨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뿐이다. 가끔 부유한 국가들이 저개발 국가들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산아제한을 장려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신학자가 관여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학자는 오직 하느님의 계시에 관심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법상의 문제=이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흔히 신자들은 말하기를 교황께서 인공적인 산아 조절을 금하셨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교황께서 산아제한에 관한 법을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문제에 대아여 교황으로서의 「가르침」을 내리신 것이다.
산아제한에 관한 문제는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다. 즉 교회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에 관련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피임과 유산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같은 법주에서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산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가톨릭신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하여 죄 로 단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있어서는 「죽이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유산은 명백히 제5계에 위배되는 살인과 같은 행동이므로 본고에서는 논할 필요도 없다.
필자는 이상 열거한 바와 같은 문제들은 제쳐놓고 다만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산제회칙에 선뜻 찬성 못하는 신학자들의 반대이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호에서는 가톨릭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 즉 성경을 다룰 예정이다.
그다음에 옛부터의 전통, 그리고 합리적 논증, 마지막으로 특수문제들을 다루어 볼가 한다. (계속)
白쁠라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