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 탈혼
꼰기타의 집에서 성모발현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샹탄델」에서 온 오르티츠 의사 내외분과 독일인 장사꾼, 필립핀에서 온 부인, 「가라반달」의 지서주임 등이 한테끼어 있었다.
이윽고 몇몇 열정적인 사람들이 주동이되어, 발현하실 성모께 대한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찬미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성모님이 몇시쯤에 오시겠다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꼰기타 자신은 물론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성모님이 발현해도 그 발현모습을 볼 수없는 사람들은 다만 꼰기타의 용모와 태도만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날 밤에는 한밤중이 되고 새벽이돼도 종무소식이었다.
날이 새고 먼동이 틀 무렵, 사람들은 성모님께서 안오시나 보다하고 헤어질 마음으로 삼종을 바치려는 찰나 꼰기타가 갑자기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꼰기타에게 집중되었다.
꼰기타는 무릎을 끓자마자 용모와 태도가 갑자기 그러나 은은하게 변하여 갔다. 그 어린이의 얼굴은 이미 지상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꼰기타의 시선은 무엇인가 황홀하고 좋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태도는 이상한 빛이 내부로부터 뿜어 나오는 듯 맑고 밝은 광휘 속에서 기쁨과 고마움과 놀라움으로 충만하여 있었다.
꼰기타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그 위치가 좋지 못하다고 느꼈던지 누가 꼰기타의 두팔굼치를 들어 옆으로 옮겨 자리를 잘 잡게 하려하였으나 꼬마의 몸은 의외로 너무나 무거워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 네명의 어린이들이 탈혼상태에 들어가면 의례히 몸무게가 갑자기 무쇠덩어리처럼 무거워짐으로 장정도 들어올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꼰기타는 자기의 작은 십자고상을 손에 들고 아주 경건하게 천천히 십자성호를 긋고는 그 고상을 마치 자기 앞에 나타나신 성모님의 발이나 옷자락에다 대듯이 한 후 그 십자가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입술에 대어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성스럽고 경건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꼰기타의 그 신심이 넘쳐흐르는 엄숙한 태도에 말려들어 그녀의 십자가에 입맞췄다.
잠시 후 조용히 일어난 꼰기타는 주위를 둘러보거나 제발걸음을 내려다보는 일도 없이 아기예수의 적상이 있는 윗층으로 천천히 올라가서 석상을 안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석상 옮기는 과정이 끝나자 그녀의 용모와 태도는 여뇌때처럼 되었다. 이 개인적인 탈혼은 1962년 11월에 있었다.
■ 커다란 奇蹟
1961년 7월 2일부터 10월 18일 사이에는 발현이 꽤잦은 편이었고, 따라서 여러가지 사건도 일어났다.
그해 8월 어느날 이었다. 「살아있는 성인」이란 별명을 가진 예수회신학자 루이·안드레아 신부가 이곳 「가라반달」에 왔다. 루이 신부는 탈혼상태에 들어가 있는 꼬마들의 곁에 서 있다가, 갑자기 『밀라그로(기적)! 밀라그로! 오! 밀라그로!』하며 정신없이 중얼거려 주위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루이 신부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루이 신부의 중얼대는 소리를 듣고, 꼰기타의 탈혼 모습과 중얼대는 신부의 태도를 번갈아 볼 따름이었다.
루이 신부는 감격에 벅차서 그날 밤에 「가라반달」을 떠났는데, 다음날 새벽 네시경 「레이노사」에 머물고 있던 차 속에서 웃음을 먹음은 얼굴로 숨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루이 신부가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 너무 좋아서 죽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했으나 믿을 수는 없다. 다만 루이 신부가 탈혼상태에 있는 어린이 곁에서 이상한 것을 보면서 『기적』이라는 말을 연방 웨치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실이었다.
꼰기타는 또 하나의 큰 기적을 예언했다. 즉 오래지 않아 그 산골부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기적이 있을 것이며, 그 기적은 천주님의 사람을 증명하고 세상에 대한 성모님의 염려하시 는 마음을 드러낼 것으로 교회의 중요한 교리와 관계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 기적은 어느 목요일저녁 8시반경에 15분정도 계속될 것이고, 성모님의 축일이 아닌 성 「성체성사를 위한 젊은 치명자」의 축일에 일어날 것이며, 어느 성인 신부도 그곳에서나 혹은 이곳에 와서 보게 될 것이라고 꼰기타는 예언을 덧붙였다.
卞基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