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거리 거리에 징글벨의 노래 소리가 넘치고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태양처럼 빛나던 십이월의 어느날이었읍니다.
어슬렁 어슬렁 이골목 저골목을 거닐면서 그 광경을 즐기던 크리스마스 요정은 『시골은 어떨까?』하면서 그 찬란한 치맛자락을 날리며 휙 손을 들어 지나가는 바람을 세웠읍니다. 그래 바람을 타고는 또 휙 신나게 시골 길을 달렸읍니다.
시골엔 하얗게 눈이 나렸읍니다. 그리고 그 하얀 눈더미 속엔 군데 군데 파란 보리 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읍니다.
크리스마스 요정은 그만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뛰어 가서 덥석 인사를 했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나 천만뜻밖에도 보리싹들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읍니다.
『크리스마스고 뭐고 추워 주겠어요』
『네?』
『메리 크리스마스고 뭐고 다 구찬다 말이에요.』
『아니 그건 또 왜요?』
『메리 크리스마스는 무슨 얼어 죽을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저기 내 동생들을 좀 보세요 추위 때문에 숨도 잘 못 쉬고 눈이불 밑에서 얼굴도 못 내놓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뭐 크리스마스 요정? 아니 하느님의 천사라구요? 가서 그분께 말씀 드려 주세요?『
『………?』
『왜 나락(벼)은 꽃피고 새우는 제일 좋은 시절에 심어져 자라게 하면서 우리는 이게 뭐에요? 제일 추운 계절에 싹을 돋게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땀이 철철 흘러 내리는 가장 더운 여름철에 거둬들이게 하여 이 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우리는 하느님 믿지 않기로 했어요』
옆에 있던 보리싹이 덩달아 앙칼진 말을 내뱉았읍니다.
크리스마스 요정은 이런 경우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고 한참 주저하였읍니다. 그러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읍니다.
『이 봐요! 보리 아씨들! 그런게 아니에요 아씨들의 눈에는 나락이 크게 무슨 호강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들에 산에 민들레와 진달래가 만발하고 종달새가 우짖을 때, 그들의 싹이 돋고 자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발 빝을 모신 일이 있으세요?천날만날 축축한 물에서 그것도 맑은 물이 아니고 개구리밥이 넘실넘실 떠돌아 다니는 데서 아니 그뿐만 아니고, 개구리 거머리 할 것 없이 온갖 곤축들이 첨벙대고 있는 가운데서 말이에요』
『……』
『어디 그뿐인가요? 아까 아씨들이 말씀들 하신 것처럼 바람 시원한 좋은 가을에 나락이 거둬들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이삭이 갖 피어날 때부터 수천 수만 마리의 메뚜기 떼들 때문에 어디 아씨들처럼 이렇게 오손도손 모여 이야기나 할 수 있는 줄 아세요?
밤에도 그렇지요. 여름에는 개구리의 울음소리 때문에 가을에는 등어리에 업혀서 소물거리는 메뚜기들 때문에 어디 한번 옳게 단잠을 잘 수 있는 줄 아세요? 보리 아씨님들!』
『……?』
『…나락이 죽은 다음에는 도 그 줄기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당신들 보리나 콩, 팥, 메밀 등 곡식을 담는 가마니가 되고 또 외양간의 이엉이 되고, 기껏 출세를 해야 시골의 가난한집 지붕의 덮개가 되는 것이 고작이지만 당신들 보리 짚은 어때요?
우선 잠자리 날개처럼 아름다운 리본이 달린 멋쟁이 아가씨들의 모자가 되잖아요? 또 바구니도 되구요. 그런가 하면 시골에선 시집 갈 때 새색시들이 가져가는 베개모도 되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세상 만물은 다 자기의 마음 속에 행복을 찾고 가꾸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때였읍니다.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보리 싹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읍니다.
『크리스마스 요정님! 그럼 콩이나 팥은 왜 그렇지요? 메밀, 참깨, 들깨는요? 나락과 거의 같은 시절에 심어졌으면서도 왜 나락처럼 개구리나 메뚜기 떼의성화도 안 받느냐 말이에요?』
『아, 아씨들! 아직도 내 이야기를 못알아 들으시는군요. 그건 하느님의 뜻이에요.』
『………?』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리들은 자꾸만 그렇게 그분의 뜻을 따지고 알려고 해서는 안되는 거에요. 그러나 한마디만 해두지요. 하느님은 너무 높이 계시답니다. 그래서 우디르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저 하늘의 가장 작은 별에서부터 찬란한 아침 햇살, 바다의 맨 깊은 곳에 있는 연붉은 산호가지, 그리고 꽃 중에도 제일로 아름다운 백합의 향기 속에 아니 돌담 틈에 숨어 핀 오랑캐꽃의 가냘픈 모습 가냘픈 향기에까지 자기의 영광이 가득차기를 바라시는 거에요』
『…!!!』
『오늘 밤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드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시지만 일찌기 그분이 태어나셨던 곳은 마구깐이요 몸을 눕히셨던 곳은 여물통 인걸요』
그러자 쏴! 바람이 몰려 왔읍니다.
그 바람결을 따라 보리싹들은 모두가 입에 손을 갖다대고 저희들끼리 뭐라고 속닥속닥 하였읍니다.
<아까는 아무것도 모르고 참말로 미안했어요>하는 투로 말입니다.
재빠르게 그 눈치를 알아챈 크리스마스 요청은 다시 한번 외쳤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자 보리싹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대답을 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면서 노니는 바람결을 따라 파릇 파릇 새파랗게 춤을 추었읍니다.
- 끝 -
글 황유선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