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0)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⑯
발행일1968-09-29 [제637호, 4면]
윤 사장은 회사 일을 급한 대로 대강 처리하고 혼자서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전용차로 숙소인 B호텔로 돌아오는 도중에 차에서 내렸다.
『내가 조용히 처리할 긴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차를 차고에 넣고 오늘은 편히 쉬게. 내일 아침까지는 이 차를 쓰지 않을 테니까?』
『녜. 알겠읍니다.』
운전수는 대답은 하고도 한편 의아한 듯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빨리 가라니까 왜 그러구 있어.』
윤 사장이 퉁명스럽게 소리치자 운전수는 비로소 허리를 굽신하며 운전대로 들어갔다. 전용차가 사라지는 것을 본 후에 윤 사장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은실이가 적어준 정아의 주소였다.
(그랬구나. 그 애가 바로 정아였구나)
윤 사장은 극도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모든 일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애를 쓰고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던 정아를 바로 자기 회사복도에서 발견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놓쳐버려서 만나기 어려울 줄 알았던 그를 주소를 알아서 이렇게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정아야 사랑하는 내 딸아.)
윤 사장은 마음속으로 뇌어 보았다. 한없이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이 마음 가득히 마치 짙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애가 나를 이제 와서 아비로서 받아들여줄 것인가?
윤 사장은 그 매섭게 쌀쌀하던 정아의 모습을 생각했다. 눈을 딱 부릅뜨고 노려볼 때 정아에게서는 서릿발이 날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무슨 허물이 있겠어요.』
은실이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찾아가면 마음이 풀어져서 따뜻하게 대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더우기 쌀쌀한 것은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도 말했다.
생각하면 은실이도 매우 지혜로운 처녀라고 윤 사장은 생각했다.
윤 사장은 그 아이들을 자기 힘으로 모두 행복스럽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정아는 행복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지나고 있다고 은실은 말했다. 그 이상 담장에 캐물을 수가 없었지만 정아와 그애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가?
윤 사장은 마음이 뒤설레어 덮어 놓고 도로 위를 걸어갔다. 벌써 늦은 오후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전차마다 버스마다 초만원이 되어 사람들이 가득히 차 있었다.
(정아나 그 애 어머니가 만일 끝까지 나를 용납해 주지 않는다면?)
윤 사장은 불쑥 이런 불길한 생각이 솟아올랐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나는 죄인이 아닌가)
윤 사장은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속행동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주려고 하는 것이다. 주기만 한다면 그들의 태도야 어떻든지 조금도 상관한 것이 없지 않으냐)
윤 사장의 마음은 차차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고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사죄를 하는 마당에서 그들의 태도에 대하여 집념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윤 사장은 생각했다.
(용납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윤 사장은 마음의 안정을 얻자, 곧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는 운전수에게 은실이가 적어준 주소를 말했다. 운전수는 차를 돌려 윤 사장이 걸어오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윤 사장은 속으로 웃었다. 수십년만에 돌아온 서울은 크게 변모하고 더우기나 새 이름의 마을이 수없이 많이 생겨서 윤 사장은 어떤 마을은 방향조차 알 수가 없었다. 택시는 로타리를 몇개 돌아서 시외로 달렸다. 택시가 목적지에 이르렸을 때 윤 사장은 깜짝 놀랐다.
(여기였구나. 바로 여기였구나?)
윤 사장은 속으로 놀라며 외쳤다. 그러니까 요전에 정아는 바로 저의 집 마을에 와 가지고도 시침을 떼고 윤 사장에게는 얼토 당토 않은 곳으로 왔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여기니까 집은 내려서 찾아보시지요. 이 동네 집 찾기가 좀 힘이 들겁니다.』
운전수는 이렇게 말하고 차를 몰고 사라져버렸다. 윤 사장은 마을 어구에 서서 잠시 숨을 돌렸다. 피로하였다. 오늘은 확실히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쓴 것이었다.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와 목에 땀을 씻었다. 앞이 아뜩아뜩하고 다리가 자꾸만 헛놓이는 것 같았다.
(내가 좀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지만 윤 사장은 그대로 마을로 들어섰다. 요전 날 정아가 들어가면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집 저집 문패를 보니 마을 이름이 전혀 다르다.
(이상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근처 구멍 가개에서 물어보았다.
『그 마을은 골목 저편 입니다. 골목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이 다르지요. 그 번지면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언덕중턱쯤 될 겁니다.』
구멍가게 영감은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언덕을 가리키며 가르쳐 주었다.
『고맙습니다.』
윤 사장은 허리를 구부려 공손히 인사하고 천천히 언덕길로 올라갔다. 어떤 늙은 부인이 채소보통이를 길가에 놓고 쉬고 있었다. 윤 사장은 그 부인에게 번지를 물었다.
『그게 바로 우리 집인데 누누를 찾으시나요?』
『정아라는 처녀가 혹시 살고 없읍니까?』
늙은 부인은 유심히 윤 사장을 훑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