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복식 進行과정
우리나라의 순교자 24위가 6일 오전 10시 「로마」의 「성 베드로」대성전에서 복자위에 오른다.
4대 박해를 통해 1만여명의 순교자를 낸 우리나라는, 이로써 1925년에 이미 시복된 79위 복자와 함께 모두 1백3위의 복자를 모시게 되었다.
시복식이 거행되는 「성 베드로」대성전의 제대와 「아프스」(성당의 맨 안쪽 돌출한 반원형의 부분)는 웅장하게 꾸며졌는데 「성베드로의좌」위에는 새복자의 공격을 나타내는 그림을 걸어놓고 휘장으로 덮어두었다. 벽기둥에는 시복을 위해 인정된 두가지 기적을 그린 깃발이, 또한 대성전 건물정면 중앙에는 큰 복자의 그림이 각각 걸려있다.
오전 10시 정각 예부성성 추기경들이 입장 복음성경 쪽의 제단앞 「코루스」(內陣)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추기경 뒤에는 대주교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이 배석하며 맞은편에는 「성 베드로」대성전의 추기경과 대성전참사회 전원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저명한 사람 특히 새 복자의 친척이나 그들 수도회의 수도자들은 따로 마련된 특별석에 자리를 잡는다.
이어 시복수속을 청원한 이가 예부성성의 비서관을 대동하고 예부성성장관(추기경) 앞으로 나아가 시복교서를 바치며 그 공포를 명해줄 것을 청하면 예부성성장관은 이에 동의하고 대성전 안에서 복교서를 반포할 허락을 얻기 위해 비서관을 대성전 추기경에게 보내어 그의 허락을 구한다. 허락이 내리면 대성전참사회원 한 사람이 작은 강대에 올라가서 새복자에 대한 찬사가 포함된 교서를 낭독하고 새복자가 복자로 공경받게 된 것을 선언한다.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대성전의 종이 울리고 새복자의 그림을 덮었던 휘장이 벗겨지며 새복자의 유해가 제대에 현시(顯示)된 가운데 미사가 시작된다. 붉은 「까빠」를 입는 미사집전자는 새복자의 그림과 유해를 향해 향을 피운다음, 제의를 입고 대미사를 드린다.
미사가 끝나면 청원인이 추기경들과 고위성직자 및 저명인사들에게 새복자의 전기와 기념메달을 나눠 주고 상본과 전기는 신자들에게도 배부된다.
이날 오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소백의와 소「까빠」와 붉은 영대를 메고 측근 고위성직자들을 대동, 대성전으로 들어와 새복자들에게 경배한다. 이때 「아프스」는 오전의 시복식 때처럼 조명되고 추기경들이 「코루스」에 배석한다. 교황은 유해와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를 드리고 나서 주교가 집전하는 성체 강복식에 참석한다.
강복식이 끝나면 청원인은 유해함과 복자의 그림, 복자전을 교황께 드리고 시복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한다.
■ 韓國순례단 1백40명 參席
백년만에 한번 있을가 말가한 이번 시복식에는 서울 김수환 대주교와 주한 교황대사 로똘리 대주교를 비롯한 성직자와 평신자 1백40명이 참석한다. 이중에는 이번에 시복되는 남종삼 복자의 후손 7명이 끼어있다.
지난 1925년 79위 시복때는 안 주교와 민 주교,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한바오로 신부와 평신자인 장면씨와 장발씨가 참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