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하면 어린시절로 되돌아간다. 내 마음 갖음이. 다섯 여섯살 적에 어른들이 성탄날 저녁에 자면 눈섭이 모두 하얗게 센다고 해서 억지로 참던 그날 저녁 억지로 안졸린척 눈을 끔뻑끔뻑 하다가 방바닥에 콧방아를 찧고 얼른 깨어나서 눈섭을 비벼봤다. 정말 눈섭이 하얗게 세었나 하고, 그래도 눈섭은 다박솔밭 같이 까맣기만 하여서 빙그레 웃던 일들이 어젯 일 같다.
우리집은 처음에는 본당에서 떨어진 시골에 있었다. 55년전쯤 일이다. 밤중에 온 공소교우들이 우리집에 모여 성탄첨례경을 공동으로 염하고 나면 우리 아버님은 공소회장직책에서 성탄성경을 낭독하시고 성경 풀이를 구성지게 하시고 나서 『자! 우리 오늘은 즐거운 성탄 밤이니 다 같이 잔치나 합시다』하시면 우리 어머님은 작은 어머님 그리고 동리 젊은 새댁들과 함께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 무시룩떡 팟무시루떡을 시루채 방에 들여다 놓고 긴 칼로 썩썩 썰어 한대접씩 앵기면 모두 김치국을 마셔가며 먹던 그날 저녁이 새로워진다. 지금 그런 떡을 몇번이고 먹어봐도 그때 그 기분이 영영 나지를 않는다.
집집에는 사발등 십자등 청색 붉은색 초롱을 처마끝으로 삥 돌아가며 달고 양편에는 「성탄」이라고 빨간 물감으로 그렸다.
그후 열살때 내 공부때문에 성당 가까이 이사를 갔다.
그때 진실로 걸구한 성탄의 「인스피레이션」이 오늘도 영롱하다. 말구유 속엔 멋들어지게 피리를 부는 목동, 꼬마 양을 안고 말구유 앞에 달려와 예수 아기에게 드리는 어린이들, 구유 양쪽에 희미한 석유 등불, 촛불, 색등에 아롱진 광휘 「크리스마스 트리」에 흰 눈이 내려 덮이고 양쪽에 엄동 속에 절개 굳은 대나무 잎에 푸르른 오두막 속에 예쁜 천상아기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앞에 나를 무릎 꿇게하고 뭐라고 자구 신공을 드리시던 우리 어머님은 예수 아기탄생하신 성탄의 광경, 내 앞에 전개된 말구유의 정상을 설명해 주신다. 그때 그 목소리가 60고개를 내려가는 내귀에 오늘까지 또박또박 들려온다.
즐거움 속에 성탄자시미사가 엄숙히 끝난 후나 미사전에 등불을 들고 동리방리 집집마다, 골목골목마다 돌아다니며 『성탄! 성탄! 예수아기 나셨네』하며 소리소리 지르며 성가를 불렀다. 한바퀴 쭉 돈 다음에 다시 성당에로 돌아와서 공청에게 크리스마스 나무가지에 주렁주렁, 나무 아래도 즐비하게 쌓인 선물을 제비 뽑아 들고나서 든 그 기분, 그 즐거움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1910년을 전후한 새 문명의 물결이 한창 쏟아져 들어올 그 무렵, 내 성탄의 추억은 우리 순교자들 선조들이 멀리 멀리 오래 오래전부터 바위틈에서 댕댕이넝쿨 머루넝쿨 토막집 바위굴 속에서부터 전해준 눈물겨운 고마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듯이 고맙고 거룩하기만 하던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져 작년엔 서울에서만도 성탄날 소년소녀의 범죄사건이 무려 3천9백건을 넘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다.
시루떡 먹을때 만큼 조용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우이스키 냄새 풍기는 20세기 후반기 서울의 성탄 밤이여! 제발 조용해지기를.
吳基先(서울 대방동본당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