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성탄때 즐거운 가정을 버려놓고 한국을 찾아와 「호텔」 잠을 자며 관광을 하겠는가. 결국 국내 손님의 수(數)가 이때가 되면 부쩍 늘어난다는 말이 정직하다. 더욱 고소를 금치 못한다.
사람들은 어쩌자고 집을 뛰쳐나가 호텔 잠을 자며 이날을 즐기자는 것일까. 실로 그들은 「성탄」을 명삼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즐기자는 주의이다. 놀고 또 놀고 신나게 떠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들이 「논다」는 것은 경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향락」을 의미한다. 성탄은 모처럼 마음놓고 주어진 「향락의 날」이다. 모처럼 통행금지까지도 해제된 「소돔과 고모라의 날」이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란(戰亂) 후 우리나라는 천주교 · 기독교 할 것 없이 교세(敎勢)가 몇배로 늘었다. 해방무렵 천주교도가 20여만명이던 것이 오늘 70여만명이나 된 것은 「비약적인 확장」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구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 결과가 「성탄절의 타락」으로 변질된 것은 어디로 보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다. 세상의 소금은 그만큼 짜졌을텐데 「썩음」은 날로 더 하니 어찌된 일인가. 천주교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독교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조용한 성탄 보내기」 운동이 오히려 그쪽에서 더 요란한 형편이다. 걱정은 피차 마찬가지인가보다.
어느해인가(하긴 매년 그렇지만) 자정미사 시간에 성당문에서 입당권(入堂券)을 받었다. 입장권과 입당권은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하다. 아뭏든 입에서 술냄새가 푹푹 나는 사람, 구경삼아 이날밤을 성당 안에서 기분을 내려는 기분파 등을 되돌려 보내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어느 성당에서는 유가로 팔려, 정말 입장권과 다름없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차라리 자정미사가 단순한 성탄 「쇼」로 밖에는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정부의 통금해제 혜택을 못받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기간동안 없애는 것도 한 「아이디어」일 것 같다. 그것은 지나친 노파심의 발동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성탄이 「징글벨」 소리로 소란한데는 까닭이 있는 것 같다. 한때 혁명 직후, 너무 사회가 긴장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리스마스는 어느 면에서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다. 유럽 쪽은 성탄전에 감히 어디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를 부르겠는가. 독일인 신부가 한국의 어느 성당에서 성탄절 성가연습도 못하게 하던 일이 있었다. 그 정도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즐거워할 선물을 생각하고 아내와 남편은 서로의 은총을 기도해 준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지 「성취」도 「완성」도 아니다. 우리는 경건히 人生의 意味 깊은 시작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호텔의 푹신한 침대 위에나 酒사의 宿醉 속엔 성탄의 뜻은 없다. 저주와 경멸과 죄악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는 평화한 가정만 방문하실 것이다.
李元敎(中央日報 審議室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