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 기념 좌담회] 순교정신 현양사업 어제와 오늘
遺物(유물)의 地方分讓(지방분양) ⇨ 保存(보존)·巡禮(순례)에 不便(불편)
현양회 全國機構(전국기구) 부활돼야
치명자 많은「서울중심」때문에 지방협조 적어
순교精神(정신) 大衆化(대중화) 時急(시급)
現代的(현대적) 意味(의미)의 순교
일상생활의 試鍊(시련) 甘受(감수)하고
세계 救援(구원)위해 生命(생명)바치는 것
본사는 병인년 순교자 24위가 오르는 복자위에 오르는 영광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순교정신현양 사업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현실을 타진하고 미래를 설계해보는 좌담회를 마련하였읍니다. 신앙의 진리를 지키려는 집념 때문에 현대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고통을 영웅적으로 참아 받고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버린 선조들의 초인적 덕망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본받았으며 우리와 우리의 자손 세세대대에 선조들의 빛이 비칠 터전을 얼마나 마련했던가.
우리 모두가 여기 이자리에 모신 분들의 좌담을 듣고 「부끄러운 후손」을 면할 수 있는 자세를 가다듬어봐야 겠읍니다.(編輯者)
<座談 하신분>
金상기 교수(한국文化財委員長)
吳基先 神父(서울大方洞本堂주임)
韓戊淑 여사(女流作家)
司會 崔奭우 신부(박사·한국천주교교회사연구소장)
<가 나 다順>
◆司會=범인순교자 시복식을 즈음하여 순교선열들이 당한 고초와 공포를 생각하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나갔는가를 묵상하며 우 리에게 물려준 갖가지 유덕을 어떻게 보존해왔고 할 것인지를 이야 기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읍니다. 「현양사업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앞으로 한시간 동안 지난날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할일, 순교정신의 생활화, 사적보존문제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현양사업의 과거를 오 신부님이 잘 아시니 먼저 말씀을 좀…
■ 현양회 업적 크다
◆吳=글쎄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아는 대로 말씀드리지요. 우선 이 현양회가 생기기는 79위 복자나 이번 시복되는 24위 같은 분들을 좀 더 우리 신자들에게 그리고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니 말썽도 있었다지만 현양회가 있었던 보람이 있어요. 「새남터」도 작년말 샀다는데 그리고 절두산기념성당 부지구입 건립이나 오늘의 영광등 결국은 현양회 덕분 아닙니까?
◆司會=한 선생님은 어느 정도 현양회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韓=말은 들었읍니다마는 깊이는 모릅니다. 그러나 복자성당(절두산)을 가보고 느낀 것은 유물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가진 유물수집에 힘써야 할 것 같습니다. 公告라도 해서 수집해야지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한테 모으는 것이 좋지 않아요? 그것이 순교자에 대한 예의이고. 우리 신자들은 외국신자들보다 순교자에 대한 존경심이 소홀한 것 같습니다. 순교자수는 정말 많은데.
■ 박물관으론 빈약 절두산기념관
▲司會=유물수집 문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과거의 순교자 현양운동이 어떠했는지를 좀.
▲金=입교한지 얼마 안돼서 과거는 잘 모릅니다만 절두산을 중심으로 좀 더 많은 유적지에 현양사업을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유적·역사적 인물을 찾아내는 등.
◆司會=현양회가 과거에는 명실공히 전국적 기구였던 것이 실수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3년전 서울대교구 것이 되고 지방교구로 분양됐읍니다. 절두산성당 건립 때부터. 그래서 기구명칭도 「병인순교 백주년기념사업」 등으로.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양회가 지금의 큰일을 시작한 셈이지요.
◆吳=예. 그렇지요. 그런데 그렇게 흩어지고 보니 힘도 유산도 분산되고 순례자들에게도(보러 다니는데) 불편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날고 약한 놈이 탈지 모르지만(웃음) 복자수녀원에 있는 유물들도 한데모아야 할 것 같아요. 거기 참 많이 있읍니다. 분실될 염려도 있고.
◆金=절두산 박물관은 박물관으로는 너무 빈약해요. 그렇게 모으면 더욱 좋겠군요. 자리도 좁더군요.
◆司會=그래서 박물관이라 하지 않고 기념관이라 하지요. 자리가 좁은 것이 아니라 진열할 것이 없어서 좁혔지요. 얼마든지 넓힐 수 있읍니다.
■ 현양회 發足 43年 日帝, 6·25때 중단
▲韓=제가 얼마전 독일 「비스」에 있는 순교기념성당일 가보았는데 그 내부시설이 기막히게 찬란합디다. 아 정말 훌륭했어요. 처음 보는 순간 천주님의 위엄과 승리를 느꼈읍니다. 이런 것에 비하면 우리 것은 너무 빈약해서 낙심하고 그냥 돌아갈 것 같습니다.
▲司會=과거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해 주십시요.
▲吳=43년전 79위가 시복됐고 이 시복을 계기로 시복 후에 현양회가 발족했읍니다. 윤형중(마테오) 신부님이 1933년 경향잡지사를 맡으면서 서울교구만이라도 복자를 현양하기 위해서 발족키로 합의하고 만들었읍니다. 새남터나 절두산도 사들일 계획을 했지요. 1931년 주교회의서도 현양회창립을 논의 했지요. 그러다가 일제하라 한때 해체됐지요. 천황이 유일한 神인데 천주교가 순교자를 받들고 신을 숭상한다니 말이 안된다는 거에요. 그러다가 1947년 6·25동란 때 현양회는 또 잠시 동란을 당해 임시중단 됐읍니다. 이러는 동안(6·25때) 유물분실이 더러 됐답니다. 절두산에 가 보니 윤 신부님이 보관 중이던 것 중 안보이는 것이 있었어요.
◆司會=다행히 지난 8월에 있은 시복경축 전국위원회 때 평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현양회전국기구의 부활을 다시 제의했읍니다. 앞으로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 것인지 혹은 과거의 현양회를 소생시키는 것이 더 좋을지 김 박사님 어떻습니까?
◆金=과거의 현양회를 부활시키는 것이 좋겠지요. 부활시켜 전국기구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吳=그렇게 되면 주교님들도 사람인데. 예컨대 치명자가 많은 충남지방에 기념시설을 하는 문제 등을 결정하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金·韓幢그것은 어려울 것 없읍니다. 전국적으로 하되 연차적으로 돌아가며 시설하면 되지 않습니까.
■ 海美에 순교 碑
◆吳=충남 해미(海美)란 곳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많은 선열들이 웅덩이에 함께 생매장 됐어요. 해미 밖에서도 도리께 질로 바윗돌에 쳐서 박살을 시켰는데(일동 소름이 끼친다) 기념비도 세우고 그들을 서산성당에 옮겼읍니다. 그것도 현양회서 지출했습니다. 이런 것을 모든 신자들이 이해하면 전국적인 기구로 되어도 잘 되어나갈 줄 압니다.
◆韓=교구적인 기구보다는 전국적기구로 만들어야 좀 더 힘있게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은 힘으로는 큰일 못합니다.
◆司會=사실 원칙적인 말씀들인데 서울이 중심이 되니 일도 많고 서울에서 많이 하게되고 그러니 지방에서는 서울 좋은 일만 시킨다고 협조가 적을 것 같습니다.
◆吳=서울은 한국교회의 얼굴아닙니까?
◆韓=서울에 치명자도 많고 서울이 수도이니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요. 순교자수효나 유적지도 많고.
■ 시복·諡聖준비 永久的 과업 돼야
◆司會=전국적인 기구로하되 이 기구가 다목적적인 것이나-기술적인 면에서도-지금까지 현양회가 성지확보나 기념탑건립 같은 일로 그쳤지만 시복이나 시성같은 영구적인 것도 해야겠지요. 79위 24위 시복도 불란서신부들이 했으니 아무래도 그들 위주가 되고 따라서 여러가지로 유감된 일들도 있었어요. 그러니 시복에서 누락된 분들의 시복이나 복자가된 분들을 전세계가 존경하는 성인품으로 올리는 운동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吳=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1801년의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서 정하상등 한국교회 거성들이 순교했으나 한분도 시복되지 못했지요. 명부에 오르지 못한 분들도 재조사해야지요.
■ 주문모·정약종 等 巨星 시복 못되고
◆金=신유교난의 정약종 선생 같은 분들 복자가 됐읍니까?
◆司會=신유년은 한분도 안되고 기해년과 병오년 병인년만 됐읍니다.
◆金=정약전 그분도 훌륭했읍니다.
◆일동=예. 정말 훌륭했지요.
◆金=정약전 그 양반은 7년이나 귀양살이하다 돌아가셨읍니다. 이것이 바로 순교지요.
◆일동=예. 훌륭한 순교지요.
◆吳=그런데 예전에 비해 지금 사람들은 복자나 성인에 대해 너무 공경심이 부족해요. 옛날에는 공소나 첩첩산중에서도 어디서나 애들까지 순교자 찬미경을 술술 외우는데 요즘은… 우리도 신학생때 많이 들어서 지금도 그때일이 기억에 생생한데. 후대들의 머리에 남게 이번에도 일을 해놔야겠어요.
◆韓=오 신부님은 환갑지난 노인인데 너무 너무 젊으셔.(일동폭소) 많이 하십시다.
그런데 제가 어릴때 삼촌으로부터 충청도의 한 순교자의 순교 장면을 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읍니다. 제가 입교하기 전이지요. 그때 작은 아버지께서 어려서 하인 등에 업혀 어른들 몰래나가 순교장면을 보신 장렬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래서 저는 순교가 얼마 나 잔학하고 어려운지 실감있게 느낍니다. 그때는 외교인들도 순교장면을 봤고 그 용감함에 감동되어 관심이 깊었는데…
■ 순교, 기적의 一種
◆司會=순교정신을 어떻게 본받는가에 이야기가 무르익었읍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본받고 실생활에서 생활화해야 할지? 옛날과 같은 방법도 있겠고 현대적 의의에서 현대생활 가운데서 순교적인 것을 많이 例示할 수 있지 않읍니까? 현대생활 가운데도 많습니다. 그런데 공의회 교령 중 가장 중요한 그 「교회헌장」에서 순교를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잠간 인용하겠읍니다. 『순교자는 사랑을 최대로 증거 한다』바로 그것이랍니다. 그리고 형제와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바친 가장 용맹한 자입니다. 그러면서 순교는 특별한 은총 없이는 할 수없는 것. 그러니 우리는 피를 흘리는 치명은 못할망정 믿음의 유지, 선포, 증거를 위해 용감해야겠고 이 길을 걷는 동안 겪는 뭇 시련, 바로 이 시련의 길이 순교의 십자가의 길 아닙니까? 순교자를 따르는 길은 우리생활 가운데서 사소한 시련이라도 감수하는 것 아니 겠읍니까.
◆韓=제가 구라파 여행 중 한성당서 십자고상의 그림을 봤는데, 그 그림에서 피흘리는 예수님을 보고 정말 순교를 실감했읍니다. 무명의 한 화가의 그 그림을 보고 전에 없는 것을 실감했읍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뼈아프게 느꼈읍니다. 그런데 저는 순교를 못할 것 같아요. 이 손이 의자에 조금만 부딪쳐도 정말 아픈데 예수님처럼 저렇게 피를 흘리고 못 박히다니 얼마나 아플까? 순교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金=「헌장」의 말씀처럼 신앙이 있어야 순교도 할 수 있지, 그러니 믿음이 있어야 순교정신도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吳=순교는 기적의 일종이지 우리 본능으로는 도저히 할 수없는 것입니다. 유대철(베드로)같은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 처절한 형고를 겪고 이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었겠어요? 불과 15세 소년이. 이번에도 19세난 소년이 최연소자인데. 또 72세의 노인도. 유체칠리아라는 할머니는 옥에서 3백20대의 매를 맞고도 안돌아 가셨어요.
◆ 시청각적으로 신앙심 注入해야
◆司會=김 박사 말씀처럼 종교생활 중 가장 귀한 것이 믿음이며 희망과 사랑인데 지난 6월 29일로 「믿음의 해」도 마지막 보냈읍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생의 과제이지요. 우리 믿음과 결부시켜 이야기해 볼까요.
◆吳=지금 박해가 나면 순교자가 과연 몇명이나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오늘날의 안일·개인주의·인간 중심주의 등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시청각으로 신앙심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위해 성지나 유물보존이 중요한 일입니다.
◆司會=오 신부님이 지금 후배 교육에 힘쓰자고 하셨는데 한 선생님은 작가이시고 작가의 세계에서 순교를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 좀. 그리고 듣건 데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납치돼간 쥬리아 옷다 이야기를 쓰실 예정인 것으로 들었는데 어렇습니까? 또 일본의 遠藤周作(신자)이라는 분의 최근의 유명한 작품이야기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 日本의 순교소설 「沈黙」
◆韓=저의 작품은 구상이 아직 정리도 되지 않아서 말씀드리기엔 이르고 遠藤씨의 작품을 잠깐 소개하겠읍니다. 「沈黙」이란 제목입니다. 한국인 2명도 포함한 일본의 26위 성인을 낳은 「기리시단」(切支丹=그리스도교) 박해이야기입니다. 일본서도 많이 순교했지요. 그 처절한 형벌과 고역·학대와 공포에 신음하면서 죽어간 순교자들. 이들 앞에 예수님이 계속 침묵을 지킨다는 이야깁니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 아닙니까?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런데 예수님이 침묵을 마지막 순간에 가서 깨뜨립니다. 왜냐하면 「마카오」에서 선교 중이던 한 선교사가 그 당시 일본서의 박해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심이 적고 비겁한 신자들이라고 분격해서 자기가 직접 일본에 건너 왔읍니다. 그 신부도 체포되어 순교장으로 이끌려갔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십자가를 짓밟고 배교하든지 순교하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그도 공포에 떨고 신음했읍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협박이 더 지워졌읍니다. 『만약 네가 그 십자가를 밟지 않으면 네가 돌보고 있는 마을의 신자는 물론 신자아닌 온 마을 사람까지 몰살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어떻게 할지를 망서리는 순간 예수님은 침묵을 깨뜨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저 십자가를 밟아라』 그리고 온 동리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배교를 하고 십자가를 밟았지요. 이에 이은 수모는 이를데 없이 그에게 괴로운 것이었고 또 다른 순교였읍니다. 『신부가 배교했다.』 『배신자다.』하여 신자아닌 사람까지 그의 의롭지 않음을 매도했읍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배교자가 아님을 자신에게 타이르며 수난의 생활을 끝내 지켰다는 것입니다.
■ 신앙의 大衆化는 「매스·콤」으로
◆司會=우리나라에는 아직 무게 있는 순교작품이 없었는데 요즘 「매스·콤을 통해 간혹 나오더군요. 신자는 아니지만 박도원씨의 「새남터의 북소리」 같은 것. 「매스·콤」에서는 그렇게 무거울 필요도 없겠지요.
◆金=순교정신을 대중화하는 것이 생활화하는 것이지요. 불교 순교사는 많이 들었지만 가톨릭 것은 아직 「매스·콤」을 통한 PR이 절대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으로 보면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바라기 힘들지요.
◆吳=대중화 하는데는 역시 「매스·콤」입니다. 순교정신을 위한 잡지나 만화는 참 좋습니다. 어린 마음에 좋은 씨를 뿌릴 수 있지 않습니까.
◆韓=네, 제가 바로 그 이야길 하고 싶었읍니다. 어릴적에 순교이야길 퍽 좋아했읍니다. 구약성경의 동화같은 것 참 좋지 않습니까? 그러니 순교 동화나 만화를 만들어서 전국 방방곡곡에 배포시키고 지금 어린이들 만화라면 어쩔줄 모르니 만화로 재미있고 흥미롭게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인간적인 면을 강조해서 만들면 순교자도 인간이었기에 고민하고 死鬪했음을, 그리고 성실하고 용감했음을 보여주어야겠지요.
■ 순교 만화·순교 동화 필요하다
◆吳=악한만화를 배척하자는 요즘운동에 발맞추어 참 좋은 일입니다.
◆司會=순교정신 생활화에 대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막지막 문제인 교회문화재를 하루속히 수집하고 보존 전시하는 문제, 더 나아가서 과거현양회가 일은했으나 벽돌중심이었지 사료에 대해서는 등한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교회문화재뿐 아니라 교회가 근대화에 이바지한 문화재수집·보존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참 여기 김상기 박사께서 지난 9월 15일 귀한 사료 다섯점을 주셨읍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쓰시던 칼(종이짜르는)을 비롯 안중근 의사의 엽서·정약용 선생 문필 등 다섯점을. 여기에 대해 말씀들을 해주십시오.
◆金=유물 수집은 일반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서 하고 순교자 후손을 찾아서도 해야 합니다. 예컨데 남상철씨(복자 남종삼 승지 후손) 같은 명문집에는 있을 것입니다.
유적지인 제천·강경·지산이나 윤씨(尹持忠) 권씨(權哲身) 집안에도 말입니다. 이외에도 유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발전의 중심지에 기념탑이나 기념관도 건립하고 서울에도 많을 것입니다.
◆吳=김 박사님 그 칼 수집경로를 들려주십시오.
■ 유적·유물 찾고 유물수집 힘써야
◆金=잘은 모르지만 제집에 다니는 그런 취급하는 상인이 있읍니다. 군산지방서 나온 것이라는데 김양선 목사(숭실대학 종교박물관장)님이 와보고 아주 놀랍디다. 자기에게 있는 것과 꼭 같은 것인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칼은 칼 몸(刀身)이 약간 뒤틀려진 것이랍니다. 군산은 김 신부님이 몰래 상륙한 내포와 가깝지요.
◆司會=그 칼 아주 훌륭한 사료입니다.
◆吳=그 말씀을 들으니 생각납니다만 작년 12월 15일 제가 충남 강경을 갔을때 찾아가 봤는데 1845년 10월 12일 김 대건신부님이 중국서 신부가 되며 가지고 몰래 귀국 상륙하여 숨어있던 그 집이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그 집을 그곳 본당신부에게 『사라. 사라.」 권했지만 力不足으로 안돼요. 그러니 현양회를 하면 현양회가 그런 집도 살 수 있지 않아요. 다행히 그 집에 지금 사는 분이 장로교 집사인가 장로되시는 분인데, 그이 말씀이 『우리는 아주 복된 집에 산다』하며 『순교자가 살던 집에 산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해요.
◆金=일본은 몇해전에 작고한(이름은 모릅니다만)한 과학자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플라스틱」 케이스로 아예 집을 덮어 싸서 보존 한대요.
◆韓=오 신부님 그 집이 초가집 이지요.
◆吳=예, 그때는 초가집인데 이젠 읍내가 돼서요. 지붕만 기와로 바꾸고 다른 것은 그대로 보존돼 있어요. ㄱ자(기억字) 집인데요. 몇십만원 안들여야 살 수 있을 겁니다.
◆金=「매스·콤」의 힘을 이럴 때 빌려야지요. 예컨대 영국인 배설씨 집산 이야기처럼 김대건 신부님이 계셨던 곳이니 또 어떤 유물도 찾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르고…
◆吳=예, 그 당시 집주인의 증손이 지금 서울 대방동본당 신자지요.
◆司會=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순교사료를 보존하며 유덕을 현양하고 생활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좌담에서 몇번 되풀이한 숙제인데 한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신자들로 하여금 사료들을 바치도록 할 수 있을까요. 통 내놓지 않을려거든요.
◆韓=서반아가 한때 세계를 제패하지 않았읍니까. 그것을 거기 가서 보고 알았어요. 예컨대 교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세계도처서 모은 산호로 만든 보물 조각을 한 것, 금은보석 등을 바쳤어요. 이것은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아요? 제 생각엔 이런 것을 바친 이유가 그런 보물은 너무 너무 귀한 것이기에 우리 인간이 가지기에 너무 귀하고 천주님밖에 소유자가 없다고 생각하여 일종의 신공처럼 바쳤어요. 그런데 교회와 관계가 있는 것. 그것을 바치지 않고 자기가 갖는다는 것은 순교정신이 아니겠지요.
◆吳=그건 이기심이지요.(웃음) 순교정신으로 내놔야지요. 그러다가 잃어버리면 어떡합니까?
◆金=그러다가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영구 보존도 되고.
◆韓=기증자가 누구라고 쓰세요?
◆司會=예, 씁니다. 누구라도.
◆吳=김 박사님이 다섯점이나 내셨다니 저도 하나 내야겠어요. 정약용 선생의 친필을 한점 가지고 있어요.
◆司會=예, 저기 녹음(좌담내용)돼 있으니 안낼 수 없게 됐어요.(웃음) 부끄럽습니다마는 우리는 사료보존 등 사업을 너무 늦게 시작하였읍니다.
■ 七寶십자가 대흥寺서 保管
여기서 누구라고 이름을 밝힐 수는 없읍니다마는 남에게 뺏겼거나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중 가장 아까운 것이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남기고간 七寶십자가가 전남 대흥사에 있읍니다. 구경을 가도 잘 내놓지 않습니다. 지금 보존되어 있는지요?
◆金=서산대사의 유물중 얼마가 비구 대처승간 분쟁으로 분실되었는데 그 십자가는 보존돼 있읍니다. 아주 허술히 보존돼 있어요. 그래서 단단히 보존토록 조처했어요.
◆司會=그것 정말 아깝습니다. 우리가 보존해야 할 것인데.
◆金=그것 서산대사 유물이라서 잘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후퇴하던 왜군이 사천에서 떨어뜨린 것인데, 서산대사가 그것을 종교적인 물건으로 보고 남긴 것이지요.
◆吳=금으로 된 십자가라지요?
◆韓=어디 제품입니까?
◆金·司會=예, 아주 화려하고 훌륭한 것입니다. 스페인 것입니다. 스페인 것 같은데 당시 일본에 와있던 스페인의 제 스페스 신부를 거쳐서 나온 것일 겁니다.
소서행장 부대에는 신자가 많아 군종신부가 나왔었지요.
◆司會=그런데 이번 교구순회사료 전시회가 있는데 광주서 10월 24일 있읍니다. 어디 그때 그 칠보십자가를 광주전시회에서만이라도 찬조출품을 해주시면. 가깝기도 하고 하니.
◆金=그건 불교 총무원에 교섭한시면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문화재 관리위원회의 힘이 필요하면 돕겠읍니다마는 종교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대화의 분위기로 좋고 하니.
최 신부님 우리나라 근대화에 가톨릭이 많이 공헌했고 특히 서구문화도입에 있어, 서양의 서적 과학 등 모두가 들어왔는데 가톨릭과 관계가 없더래도 말입니다. 잘 수집 보관해야 겠지요.
■ 안중근 義士의 순교설…
◆司會=그런데 이번 김 박사가 기증한 하나인 안중근 의사의 엽서도 귀한 것인데 모두들 안 의사가 신자라는 것이나 본명이 토마스라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이런 유물이 증명하지 않겠읍니까?
신학생들도 「리포트」를 통해 「안 의사가 순교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신앙을 버리지 않기 위해 고백성사까지 받았다지 않아요.
◆吳=안 의사를 돌보던 홍 신부님이 안 의사를 찾아가기 전까지는 아주 난폭했답니다. 그러나 홍 신부님이 두번 다녀온 후 아주 돌변해서 양순해졌다고 일본인들도 종교의 힘에 놀랐답니다. 그 후는 문도 잠그지 않았답니다. 죽는 시간까지 순하게.
◆韓=저도 프랑스 「아미안」성당에 가니까 거기 한 기념패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바로 한국서 순교한 한 프랑스신부의 순교기념폐랍디다.
◆司命=절두산 성당에도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때 그곳 일본 군 최고사령부로부터 홍 신부에게 고백성사 주러 오시라는 전보가 있읍니다. 벌써 시간이 됐읍니다. 그동안 해주신 귀한 여러 말씀으로 순교현양운동을 새롭게 하고 유덕이나 유적을 잘 보존하며 신앙생활을 굳건히 하는데 이바지할 줄 믿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記錄=劉載洪
68년 9월 24일 하오 2시
場所-서울 明洞女學生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