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지난 1년간은 물론 오랫동안 「가톨릭시보」에 특별히 많은 집필을 해주신 몇몇분께 새해인사 겸 다음과 같은 설문을 드립니다. 앞으로 「시보」가 보다 충실한 지면을 마련하고 또 지난날의 미숙을 반성하는 의미에서도 누차 擧論된 문제를 새삼 제시하고서 특히 집필자의 苦言을 듣는 바입니다. (편집실)
①지난해 시보에 많은 집필을 하시면서 느낀소감?
②새해 집필 계획은 무엇입니까?
③「시보」에 충고하고 싶은 말씀은? (到着順)
■ 金達湖(慶大敎授 · 本社 論說委員)
①또 한해가 저물어가는데 나의 온 신경은 「아폴로」 8호에 매달려 있읍니다. 세 사람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의 문전에 겨우 들어서서 그 무한대 그 무변대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읍니다. 그 어디에 천당도 있을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계실 것이니 더욱 신기합니다.
소위 우주인들은 수억불의 내력과 강대한 국력, 기타 정치라는 괴물의 힘을 빌어 우주의 일각을 날을 수 있고 옛날 파우스트 박사는 마귀의 힘 즉 지옥의 행동대장 「메피스트」의 힘을 빌어 역시 우주의 일각을 비행할 수 있었는데 나의 우주비행의 뒷받침은 오직 「죽음」 하나 뿐입니다.
단한번의 인생 단한번의 나의 우주비행. 「죽음」만이 그 추진력이라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집니다. 기가 막힙니다. 나의 시간이 없는 영원한 세계 속에서 나의 우주여행을 위하여 초속을 어기지 않고 「카운트 다운」이 한창입니다. 이 마당에 어찌 가톨릭시보 따위가 눈에 보이겠읍니까.
②아무것도 없읍니다. 나의 머리 속과 손끝은 전천후 농토가 아니었읍니다. 이 황무지에 이젠 잠초도 자라지 않습니다.
지하수라도 개발해야겠읍니다. 나 혼자의 우물파기운동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그러나 파보았자 과연 물이 나올까.
③「가톨릭시보」에라기보다 1년엔 한번 출판포교주일이 오면 자명종의 기계처럼 「매스콤」의 의의와 필요성만을 되풀이 강론하시는 분들에게 먼저 충고해야겠읍니다. 이제 강론은 그만하시고 입고계시는 세무쟘바니 TV, 냉방기, 세단차, 주교댁들 또 있을 것입니다. 있는대로 팔아서 시보사 주간 박 신부에게 주어 보십시오. 「가톨릭시보」 잘 도리 것입니다. 평신자는 아직 「청빈」을 허원한 적이 없읍니다.
시보도 지대를 받습니다. 상품입니다. 상품답게 만들어야 願賣者가 있는 법입니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양품처럼 외래품처럼 세관도 국세청도 또 합동수사반도 못막는 그 시각적이요 실용적인 상품을 말입니다.
『교회사업이요 신부님이 만든 물건이니 교우들은 다 사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 바보같은 소리가 어디에 있읍니까? 다른 충고할 말은 없읍니다. 국내의 그 많은 출판물과 시보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헛점들이 많으며 초라하고 허수룩한지. 진리도 좋은 그릇에 잘 담아야 잘 먹히는 세상입니다. 망언다사.
■ 具常(詩人)
①「가톨릭시보」가 가톨릭 언론의 구실을 보다 훌륭히 하는 것으로 압니다.
②「가톨릭시보」에 작년에는 「일요한담」을 20회 연재했는데 금년에는 깊이있는 「信仰隨想」을 하나 寄稿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금년에는 기어코 「金大建傳」(시나리오)을 꼭 하나 쓸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단편이나 詩도 쓰겠는데 이 모든 것은 일반작품들이라 할지라도 물론 나의 삶과 인격을 바탕으로 하고 이젠 신앙에로 한데 묶는 것들이 될 것입니다.
③편집 · 정리면에서 미숙한 점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국내 여러 주간지 특히 종교신문들 중에서도 제일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정리기사들을 좀 훈련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외로 오자 투성이고 사진도 바뀌어 실리고 하는데 이것을 나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시보」도 公器이니 애교로만 넘길 수만 없을 것입니다.
문제를 제시하거나 전달하고 촛점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편집의 기초 「툴」도 제대로 소화 못한 것 같습니다.
■ 金泰寬(西江大 哲學敎授)
①②별다른 소감이나 집필계획이 없읍니다.
③체제를 쇄신하고 「스타일」도 바꿔 매력있게 꾸며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계 가톨릭의 「뉴스」를 토막토막이라도 또 다른 문예 등 모두 없어도 「시보」만이 해야하거나 할 수 있는 소식들을 풍부히 그리고 자세히 전해주었으면 좋겠읍니다.
■ 具仲書(文學評論家)
①작년 1년간 제혼자서 문학월평을 「시보」에 썼읍니다마는 가톨릭문학이론가가 한국에는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찾으면 계시지 않겠읍니까? 가톨릭 작가가 희소하고 이론가도 적고 하니 가톨릭문학의 사회참여가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선 몇분 안되는 현역작가들이 사명의식을 절감하고 한데 뭉쳐 가톨릭문학셩성작업에 착수하는 공동노력을 해야할 줄 압니다.
②집필계획은 따로 없고 쓴다면 월평같은 短文을 좀쓰고 순수 · 본격적인 평론을 할까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도 글을 쓰는 분들이 「참여문학」을 하지않고 사회적 의식없이 글을 쓰는 인상입니다.
③종교적인 신문이긴 하나 일반문학과의 대화나 의사소통이 아주 약한 것 같습니다. 금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대화를 위해 먼저 우리의 자세도 가다듬고 적극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교량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한국문학에 참여도 하고.
■ 南郁(한국일보편집부국장)
①글을 쓴다는 것이 얼핏 생각하기에는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감」은 똑같아 쫓기우곤 했읍니다. 그래서 부지런해졌읍니다.
②새해 계획이 있읍니다마는 개인집필계획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직 없고 신문사의 것을 쓸 계획이나 이것은 밝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③너무 전문적인 것 같고 독자와이 거리가 먼것 같은 인상이었읍니다. 촌티가 나고 때물을 벗지 못한듯하 인상은 우선 공장사정으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읍니다.
■ 李文熙(大邱大敎區 액숀 指導神父)
①큰 애착은 가지면서도 두려운 마음은 素人의 對話 장소로는 다소 분위기가 어려웠다고 느낀것. 亞流의 어려운 글보다 전문가의 쉬운 글은 본시 귀한 것이지만(띄어쓰기 조심)
②나의 계획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계획.
③우리와 또 이사회 내의 좋은 일 아름다운 마음을 더 찾아 주시면 숨어서 솟는 맑은 샘물로 모든이의 목을 적시도록. 現地 「루포」 等, 또 外信의 整理와 方向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지표를 -
■ 金南祚(女流詩人)
①우선 청탁받은 원고를 다 써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느낌부터 납니다. 사실 청탁의 범위를 좁게 잡아 너무 집중적 청탁을 하신다고 여겨졌읍니다. 같은 필자인 경우 되도록 이를 피하고 더 광범한 시야에서 더욱 풍부한 필진을 찾아 붓을 잡게하면 가톨릭시보가 더 빛을 내게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②근래에 책을 좀 많이 낸 것 같습니다. 허(虛)하지 않은 글이 되려면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많은 시간을 바쳐 모색해야 할듯 싶습니다.
글을 쉬고 오히려 사색을 다지는 편이나 자신의 성실이 될지도 모르겟는데 불행히도 전작수상(全作隨想) 한권의 계약을 맺었으니 연초(年初)부터 이 일거리에 손을 대어야 하겠읍니다.
③「읽을꺼리」로선 충실한 것 같지만 현대의 신문이란 볼꺼리로서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을듯 합니다. 말하자면 내용이 대체로 무겁고 체재도 둔중한 느낌을 줍니다. 활자도 좋지않고 교정도 불충분하다고 여깁니다. 가령 지난호의 구상씨의 성탄시중에도 「한 마리 짐승」이 「한 마디 짐승」으로 되어있었는데 이런 점이 시정되지 않으면 필자들은 다소나마 불안감을 아니 가질 수 없읍니다.
■ 申相祚(대구 바오로수녀원 지도신부, 본사논설위원)
①지난 한해동안 집필을 많이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보에 나온 글을 읽은이가 몇분이나 되겠으며 또한 안읽힌채 물건포장지로 사용되고 심지어 화장실에 굴러다니는 것을 생각할 때 쓰고 싶지 않습니다.
②공의회 이후의 신학 및 여러가지 교회지식을 다루는 서적 잡지 등을 더 많이 읽고 현시대가 요구하는 글을 쓸 계획입니다.
③「매스 메디아」에 관한 교령 11번에서 「매스콤」 종사자들의 의무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가톨릭 「저널리스트클럽」도 결성되어 있으니만큼 일반신문윤리위원회가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하고 있는것처럼 가톨릭시보사가 「이니시아티브」를 취해가지고 가톨릭윤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가톨릭신문 집필자 혹 편집자가 직업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참여를 해주시고 또 독자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 짐작되기 때문에 건전한 오락과 정상적 향상을 도모하는 글을 더 많이 다루어주시면 집필가로서의 사명감에 더 민첩한 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