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㉒ 신앙, 經驗(경험) 아닌 先驗的(선험적)인 것
위로 · 용기 · 신념 줄 신앙 갖고 싶어
발행일1969-01-01 [제650호, 4면]
아직 7 · 8세의 어린 나이었을 때 나는 예배당에 나가서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믿은 일이 있었다. 그무렵에는 밥먹을 때에도 기도를 드렸고 잠자리에 들어섰을 때에도 기도를 드렸다.
밥상 앞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렸고 이불속에서는 그날 하루 무사히 지낸 것을 감사드리고 하루를 반성하며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진정으로 뉘우쳤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어느날부턴가 하느님 앞을 떠나버렸다. 아마 나르 ㄹ이끌고 예배당에 나가주시던 누님이 멀리시집가버린 후 나도 그만 교회로부터 발을 끊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느님을 떠난 후 나는 다시느 지금까지 하느님을 찾은 일이 없다.
아는 완전히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유물론적인 이론의 체계를 세워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의 존재라는 것이 이론적인 증명에 의해서 확인될 성질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 존재가 제시되기 전에 이미 우리가 선험적(先驗的)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신이 존재를 믿지 않는 것도 이론적인 증명에 앞서서 이미 나는 그것을 부인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결국은 이것이 나의 정신생활에 있어서 불행이면 불행이요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나도 종교를 갖고싶다.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불교든 또 무엇이든 내게도 만일 신앙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기쁘리라 생각한다.
죽은 뒤의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종교 내게 괴로움이 있을 때 나를 위안해 주고 내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종교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 양심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그로 말미암아 내가 무슨 일을 해나가더라도 신념을 잃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종교 이러한 종교를 나는 갖고 싶다.
신라시대의 향가(鄕歌)의 명수요 괴리의 명수였던 월명사(月明師)는 어느날 자기 누이동생을 잃었다.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인생이 무상(無常)을 새삼스레 통감했다. 그 심정을 월명사는 시의 형태로 표현했다.
『나는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너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태어나서 어디론지 알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리는구나』
하고 처절한 슬픔을 읊었던 것이다. 그러나 月明師는 슬픔을 슬픔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보고저 내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신앙의 세계로 돌아가 그의 슬픔을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 이렇게 헤어졌지만 언젠가는 저 세상에 가서 다시 만날ㅇ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그는 그날까지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종교를 통해서 그의 슬픔을 인생의 처절한 고독을 그 허무감을 극복했던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인간에게 이같은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꼭 종교를 갖고싶다. 시인 월명사의 경우에 있어서 그의 종교는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고민을 해결해 주는 숟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소멸되고 만다. 아니 죽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주의 고아나 마찬가지로 고독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혼자와서 혼자 돌아가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추구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많은 슬픔을 경험해 나가야 된다.
진실한 생활에서 고귀한 행복을 얻으려 할 때 그에게는 너무도 많은 부당한 모멸과 학대가 가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이런 슬픔을 겪어나갈때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끝가지 진실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어떤 절대자(絶對者)를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이러한 종교를 찾고 있지 않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생리의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