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 古宮(고궁)의 뜰에서 ②
발행일1969-01-01 [제650호, 4면]
『나두 데이트해.』
『뭐?』
『바루 두시 같은 시간이야.』
『핑겐 아니겠지!』
표정에 변화가 민감한 혜졍이 금시 새침해지면서 말했다.
『핑계라고 단정해 말하는 것보다 더하구나』
『상대는?』
새침한대로 혜경이 물었다.
현주는 우물쭈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비밀… 얘기할 날이 있을거야』
혜경이 꼭 입을 다물고 있다가
『좋아. 너를 믿는다.』
그러더니 얼른 밖으로 나가 구두를 신고 나가버렸다.
혜경이의 뜻밖의 내방으로 현주는 흥이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도 부풀었던 가슴에서 김이 빠진 셈이었다.
(하필…)
그러나 원체 침착한 성미다. 현주는 매만지다만 얼굴에 이번엔 여느때보다 대담하게 짙은 화장을 했다.
혜경이의 지나치리만큼 한 화장에서 자극을 받은 탓이었다. 옷을 갈아입은뒤 래디오의 스위치를 비틀어 끄고 현주는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전에 없이 묻는다
『잠깐…』
그아래 말은 못하고 현주는 얼른 대문밖으로 나갔다.
「버스타는 곳」에 닿으니 이무렵 이시간엔 기다리는 사람이 두엇밖에 되지 않았다. 팔목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 새삼스럽게 여유있는 심정을 맛보면서 현주는 회수권을 사라고 내미는 아주머니로부터 돈을 주고 한장을 바꾸었다. 될 수 있으면 현주는 표파는 아주머니들로부터 사주기로 하고 있었다. 오직하면 표장수를 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오늘은 더욱 선심(善心)을 쓰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루에 몇장이나 팔리죠?』
묻지않아도 좋다고 하면서 물었다.
『몇장 안팔려요.』
『그래도…』
하는데 빨간테의차가 와닿았다. 현주는 천천히 올랐다. 이마이크로버스는 바로 중앙청앞을 지나간다. 거기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장소는 경회루(慶會樓)앞. 벤치에 앉아 있으라고 지정해 보냈다. 국전(國展)이 열렸을 동안 두어번 전람회장에는 가본일이 있었으나 바로 인접한 경복궁안 경회루 주변에는 발이 돌려지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까 경회루를 못본지가 퍽으나 오래된 셈이었다. 매년 국전에는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경복궁안, 그의 편지에서 경회루 앞을 지정해 보냈을 때 현주는 와락 그 건물이 그리워짐을 깨달았다.
(경회루도 볼겸…)
「펜팔」로 사귄 사람이었다. 「펜팔」이라고 하나 신문광고를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는 아니었다.
현주가 대학졸업 일년전 그러니까 작년가을의 일이었다. 학교미술부의 전람회가 있었다. 공보관화랑을 얻어 연 전람회에 현주는 작품 한점을 출품했다. 미술이 물론 전공이 아니다. 과학도(科學徒)의 여기(餘技)로서 그림을 그린 거라고 할까? 그렇더라도 현주는 고등학교때까지는 미술방면으로 나갈까 생각하리만큼 그 방면에 소질과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진학때 아주 반대방향으로 키를 돌린 셈이었다. 공대(工大)였다. 4년동안 원체 두뇌가 명석한 현주는 소질인 미술재능의 힘도 있었다고할까 건축설계에 남달리 취미를 느꼈고 그게 전공이 되어 버렸다. 여성설계가로서 교수들은 현주의 장래를 촉망해마지 않았다.
해외 유학의 길도 트이도록 마련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현주가 그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은 전공인 건축설계도가 아니었다. 일종의 추상화라고 할까?
전람회가 있은 두 주일 뒤었다. 대구에서 편지가 날아 온 일이 있었다.
마침 서울에 볼일로 갔다가 전람회를 구경했다. 과학도들이 미술작품전이라 색다른 감명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당신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작품에 대해 구체적인 평까지 간단히 적혀 있었다.
『…앞으로 정진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끝맺았을뿐 발신인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편지의 문체가 어리거나 장난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간결하면서도 정중한 필체였고 그러면서도 건방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