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 순교자 시복경축행사 중 절두산 기념관서 있을 예정이었던 사료전시회가 준비관계로 「3일~15일」이 「6일~13일로 연기됐다.
■ 절두산 기념성당 순례
▲서울 도림동 본당서
【서울】 영동포구 도림동본당 신자 6백명이 9월 29을 20리길을 걸어 한강변 절두산 순교자기념성당을 순례 참배했다. 서요셉본당 신부와 오요셉(보좌) 신부의 인솔로 붉은 옷차림의 복사단을 선두로 한 동 순례단은 하오 2시 도림동성당을 출발, 2시 30분 문래동 입구서 대기중이던 나머지 신자들과 합류, 영등포시가를 거쳐 제2한강교 →절두산 「코스」로 20리 길을 순례했다. 본당기·레지오 단기·성 돈·보수꼬기를 앞세우고 묵주신공과 복자찬가를 노래하며 1백년전 선열들이 신앙을 증거코자 피로 물들인 한강에 이르렀다.
제3차 순례단을 이끌고 온 서 신부는 미사 중 강론에서 『우리가 여기 추앙하고자 찾아온 순교자들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상기 하자고 하고 선열들이 그토록 힘겹게 극복한 어려움을 상기하고 『우리들은 생활 가운데서 오는 순간순간의 괴로움을 이김으로 순교정신을 생활화하자』고 강조했다.
■ 계성여고서도
【서울】 계성여자중고교교장 조마리아·안젤리까 수녀와 교사 한학윤씨는 9월 26일 동교학생 전원에게 순교정신과 한국가톨릭의 박해사를 강연했다.
복자축일인 이날 계성여중고교는 동교 중3년에 재학중인 남기민양(병인순교자 중 6일 시복되는 남종삼 순교자의 고손녀)에게 십자가와 꽃다발을 증정, 남양의 고조부께 경의를 바쳤다.
세시간의 수업을 단축하고 순교자 현양행사를 한 동교서는 강연후 신자 및 예비자, 교사·학생 4백명은 한강변의 순교성지 절두산성당을 순례 참배했다.
■ 순교지 한티 묵상순례
▲대구학련서
【대구】 순교지 한티(경북 칠곡군 동명면 동명동)까지의 묵상순례가 9월 29일 대구대교구학련 주최로 열렸다.
이문희 지도신부 외 4명 신부와 지도교수 7명 학생회·학사회·간호원회 등 4백여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룬 동 순례단은 이날 오전 9시 30분 흑다리(순교지)에서 출발, 총28km를 행군했는데 도중 3차의 강론과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주제로 토론회도 가졌다. 오후 4시에는 무명의 순교자 무덤에 둘러서서 미사를 드렸으며 박병원(가톨릭시보주간) 신부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순교정신으로 바치자』고 강조했다.
오후 5시에 복자찬미가를 부르며 폐회했는데 특히 선발대들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길목마다 안내표지를 붙였던바 순례 중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좋은 묵상재료가 되게 했다.
■ 수원 양지서 현양 대회
▲꽃수레행렬, 콩쿨대회도
【수원】 수원교구 복현현양대회가 예정대로 9월 29일 양지에서 수도성직자 및 일반신자 약4천5백명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 복자들의 고귀한 뜻을 높이 찬양했다.
11시, 성지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양지성당에서 신자들 행렬이 시작, 안양 안법중고등학교 「밴드」에 맞추어 안법고등 학생들의 휘호로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실은 꽃수레행렬, 뒤이어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 그리고 다시 일반신자들의 순으로된 행렬이 복자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12시 20분 성지에 도착한 유해를 김 신부 기념석제에 옮기고 교구장 윤 주교와 장크리소스또모 부주교 외 5명의 신부가 공동으로 미사 집전했다.
윤 주교는 미사강론에서 『우리선조들은 거의 1백년 동안 박해를 받고 목숨까지 바치면서도 하님을 원망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며 교회를 사랑했다. 현대의 우리들도 선조들의 뜻을 본받아 좀 더 교회와 형제를 사랑하기에 노력해야 겠다』고 말하고 『더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들어 내기위하여 쇄신되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깊은 뜻을 알아듣기에 힘쓰는 것이 복자들 후손인 우리 신자들이 할 본분』이라고 강조했다.
■ 코메디안 곽규호 사회, 은방울자매도 출연
미사 후 유해친구와 수원교구 각본당별 대항(가톨릭시보사 주최) 「콩쿨」대회가 「코메디안」 곽규호(요한=아현동본당)씨 사회로 열렸는데 여기엔 발안본당과 경안본당을 비롯한 12개 본당에서 13명의 대표가 참가 열연을 보였다.
한편 초대출연으로 가수 「은방울자매」, 안선본당의 신헬레나양의 고전무용, 「코메디」 등으로 5천여가까운 신자들이 즐겁고 흐뭇한 한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