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논술한 바에서 성경이 교리교육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느정도 부각되리라 믿는다. 그리싀도교는 신과 도덕에 대한 교훈을 세상에 알려 줄 뿐 아니라 신은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의 정점임을 가르친다. 신은 사람을 불렀으며 이에 사람은 대답했다. 신은 그의 민족을 수호하며 인도했다. 이렇게 하면서 신은 인간역사 안에 깊이 개입했다.
마침내 신은 사람이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신적 생명에 참여케 했다. 사람은 신과 일치하는 사랑의 생활에 초대된 것이다. 신의 이와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계획의 근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사목에 있어서 성경은 그 중심임을 수긍하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갈파한다.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요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의료교육하는 유익한 책임입니다.』(띠모 후 4 · 16) 구원의 소식은 애당초부터 그 어떤 체계적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 역사적 사건으로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이 구원의 역사를 선포함으로써 현재의 구원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진리와 근본적 교리는 모두 성경에 실려있으며 그 진리와 교리들은 또한 모두 역사성을 지닌 만큼 현금에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성이 없는 것이 없고 또 이와 관련 없는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초대교회에서는 강론이나 교리나 그 어떠한 선교방법이든 성경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 졌었다. 그러던 것이 종교개혁시대부터 차차 성경은 이론화된 신학을 뒤에서 비추어주는 구실을 하게되어 현세기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경을 교리시간에 취급한다면 어떤 명제를 증명하는데나 아니면 그리스도교 역사 이야기로만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얼마나 주객이 전도된 처사인지 성경의 본 가치를 따져볼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1924년 독일 주교단에서는 그때까지 국민학교 초급반에 국한하여 실시하던 성경 교리를 상급반까지 연장실시토록 결의하는 한편 언제나 성경을 구세사적 관점에서 다루면서 교리교육과 병행하도록 규정했다.
사실 지금 구라파에서는 성경교리와 이론교리가 서로 제휴하면서 실시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 두가지가 셜국 하나로 병합되리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교리교육에 있어서 본위치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편 성경해석학이 현재과학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전개됨으로써 신과 인간과의 대화적 관계를 밝혀 부각시키면서 성경중심의 교리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교 2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교회가 아직도 모국어판 성경전서를 가지지못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기 보다 미안스럽고 원통하기도 하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협동하여 신 · 구약성경 번역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희망으로 위안해 준다. 그러나 우리말판 성경전서가 우리 손에 쥐어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해설서, 주해서 등이 속속 나와야 한다. 해설서 없이 성경읽기운동은 실제에 있어서 우리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추진해야 할 것은 성경교리이 보급 운동이다. 여러가지 여건이 구비되지 못해서 성경교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듯하다. 교리선교이 핵심 부분이 빠져있는 셈이다. 성경을 가르치자. 예비자에게나 신자에게나 성경교리를 실시할 때에 올바로 해석된 교리를 가르치게 될 것이며 포교의 기동력을 구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경 보급은 자동적으로 이루어 질 것은 물론 현대인들이 외면하는 종교이 형태를 벗어 버릴 것이다.
여기에 한두마디 덧붙여서 말한다면 지금 추진되고 있는 신 · 구약 공동 번역사업에 전 교회의 후원과 협조를 아낌없이 보내자는 것이다. 정신적 격려와 물질적 후원이 없이는 그 사업이 또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그리고 성경에 관한 유익한 해설서나 주해서를 저작 혹은 번역하는데 출판사나 이 방면에 깊은 조예를 가진 인사들의 열의가 표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방면에 유능한 인재양성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특히 현싯점에 더욱 서둘러야 하겠다.
특히 우리 주교단에서도 이러한 문제 의식을 높여 효과있는 방안을 연구하여 앞으로이 대계를 세워주었으면 한다. 성경은 교리의 중심이다. 따라서 어떤 회칙을 받아들이고 호소하기 보다는 성경교리보급을 호소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더 유익한 일이다. (계속)
이경우(왜관 신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