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실]
발행일1969-01-19 [제652호, 2면]
2, 성전의 필요성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기적들, 또 그때 그때 일어난 직접 간접으로 예수께 관계되는 모든 사건 등이 전부 성경에 수록된 것이 아니다.
①성경은 학생들이 학과를 배우기 위해 쓰는 교과서 같이 편찬된 책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행벅을 기록한 전기(傳記)도 아니다. 오직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기적(奇蹟) 등을 복음사가(福音史家)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 가기들 기억에 떠오르는대로 기록했을 뿐이다. 각 복음은 불과 「팜프렛」보다 좀 더 양(量)이 많다.
그리고 각 복음 안에 에수께서 하신 말씀은 약8천단어이며 8천단어를 낭독한다면 약45분가량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예수의 공적(公的)생활은 3년이었으며 그 3년간의 공적생활을 통해 하신 말씀이나 행하신 모든 업적이 불과 45분간의 낭독분량인 8천단어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②요한복음과 성경의 최후편인 묵시록을 쓰신 요한 사도께서 『예수 그 문제들 앞에서 과연 다른 영적을 많이 행하셨으되 이 책에는 다 기록치 못하고…』(요한복음 20장 30절) 하셨으며 『예수 행하신바 다른 행적이 또 많이 있으니 만일 다 낱낱이 기록하려면 그 기록할 바 책을 이 세상에라도 다 능히 담지 못할 줄로 여기노라』(요한 21 · 25) 이렇게 복음을 맺었다.
복음사가 요한이 말한 이 두 귀절만 보더라도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행적을 복음사가들이 전부 성경에 수록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실제 전부 수록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③예수께서는 당신의 3년간의 공적생활을 통해 직접 글을 써서 후대사람을 위해 남기셨다는 사실이 없으며 그리고 스리스도의 사도들 중 마테오와 요한 두 사도만이 각각 복음을 썼으며 또 베드로 · 바오로 · 야고버 · 유다(혹은 타대오) 사도들이 서간문을 쓰고 요한묵시록도 썼다. 그러나 다른 일곱 사도들은 전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글로 써서 전파하는 것 보다 오히려 직접 말로 전파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고, 사도들이 복음이나 서간문을 쓰게된 이유나 동기를 보면 사도들이 직접 현지(現地)에 가서 설교 즉 구전(口傳)으로 복음전파를 할 수 없을 때 택한 수단이 성경을 써서 현지에 보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도들의 이 글을 읽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사실 모든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렇게 해왔으나 만일 그들이 갈 수 있는 현지는 직접 가서 친히 설교하고 지도했으므로 성경을 써서 보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르침이 주로 설교로서 전파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기록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르꼬 16 · 15)고 말씀하셨읍니다. 』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가르침이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것으로써만 보전되고 전파되기를 바라셨다면 왜 그리스도 자신이 그것을 기록하지 않으셨겟읍니까? 그리고 왜 모든 사도들이 기혹하지 않고 다만 몇사람의 사도들만이 기록하고, 더구나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야 기록하였겠읍니까?』 (적원황 著 金正鎭 編譯 가톨릭敎理解說 157)
오늘 우리가 믿는 진리 가운데 많은 신앙진리가 성경에 암시되고 내포돼 있으나, 그러나 어떤 신앙진리는 전혀 암시돼 있지 않다. 가령 일요일(日曜日)을 주일(主日)로 지내는 것, 유아성세(幼兒聖洗) 미신자(未信者)도 세를 줄 수 있다는 것, 성경은 성신의 감도하심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 천주교회만이 귄위와 그르침 없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 또 성사(聖事)의 수는 일곱이라는 등이다. 이러한 신앙교리는 전혀 성경에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성전에 의해 교회는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