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制回勅(산제회칙)에 관한 神學的(신학적) 考察(고찰) ②
救援史(구원사)의 背景(배경)은 人間(인간)의 극단적 부패
産制方法(산제방법) 보다 動機(동기)가 問題(문제)
창세기⇨女性(녀성)의 존엄성 保障(보장) 이기주의 斷罪(단죄)
2. 聖經에 의한 論證
대표적인 신학적 논증은 성경에 의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바로 하느님의 계시를 탐구하고 해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거하지 않는 신학적 논증은 마치 밥없는 점심식사와도 같다. 그러므로 산아제한에 관한 신학적 고찰에 있어서도 먼저 성경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죄악의 열거」
신구약 성경에는 소위 「죄악의 열거」가 있고, 그중 특히 다음 대목들에서는 이른바 「부정(不貞)의 죄(罪)」를 지적하고 있다.
레위기 18·1-30, 20·9-24, 신명기 27·20-23, 지서 14·24-26, 로마서 1·26-32, 꼬린토전서 6·9-10, 갈라띠아서 5·19-21, 띠모테오전서 1·10.
이상의 귀절들에 「부정의 죄」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산아제한문제와 직접으로 관계되는 말은 없다.
레위기 18장 19절, 20장 18, 에제키엘 18장 6절에서는, 소위 주기법에 따라 불임기(不姙期)의 중심인 월경기의 부부관계를 금하고 있는데, 이 금령(禁令)의 근본 의도는 여인의 존엄성을 보장하려는데 있다.
(나) 창세기 38장
신학교과서는 대개, 인공적 산아제한을 금하는 논거(輪據)로 창세기 3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 귀절의 근본 의도를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귀절은 다음과 같다.
『그 후 유다가 자기만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얻어주니, 그의 이름이 따마르더라. 그런데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야훼의 눈에 언짢게 보이게 되어 야훼께서 저를 죽게 하시매, 그 때 유다가 오난에게 말하기를 「네 형의 아내와 함께 살며, 시동생의 의리를 그 여인에게 베풀어, 너의 형에게 후손을 일으켜 주어라」하니, 오난은 그 자손이 제것 되지 않을 줄 알므로, 자기의 아내에게 들어갔을 때, 자기 형에게 후손을 일으켜 주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에 흘려버리니라.
그가 한 이일이 야훼의 눈에 나쁘게 보이게 되어 그도 죽게 하시니라』(창세기 38,6-10) 이 성경 말씀의 참뜻을 옳게 파악하려면 38장 전체를 읽어야 한다. 『그 때 유다가 자기 며느리 따마르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너는 너의 친정에서 과부로 머물러 있거라」하니 제 친정에서 머무르니라.
세월이 많이 지나간 후 …유다의 아내가 죽으니라. 유다가 곡하기를 마치고 자기 양떼의 털을 깎으려고… 「띰나」로 올라갔더니, 그 때 따마르에게… 시아버지가 「땀나」로 올라오는 길이라는 소식이 전하여지자 그녀가 과부의 복색을 벗어버리고 너울(面紗布)을 쓰고 잠옷을 입고서 「띰나」로 가는 길목 「에나임」 어귀에 가서 앉아있었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하였어도 저에게 그가 아내로 맞아들여지지 않음을 본 까닭이 없느니라. 유다가 그들 보자 그가 제 얼굴을 가리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창로 여겨 저가 길에서 그 여인에게로 발을 옮기며 말하기를 『제발 너의 몸을 나에게 허하여다오』하였으니 이는 그 여인이 자기 며느리인 줄 저가 몰랐기 때문이니라…
저가 그 여인에게 내주고 그 여인에게 들어가니 그 여인이 저에게서 수태하니라…
…그 후 그 여인이 해산할 때가 되니, 보라! 그 뱃속에 쌍동이가 들어있더니…』(창세기 38, 11-30)
많은 성경주석학자들은 이 38장의 제목을 「유다지파의 기원」이라고 붙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다와 따마르이다. 유다라는 사람은 거만하고 타 민족을 업신여기며 자기들만이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선민(選民)이라고 주장하던 유데아 백성의 시조이다. 물론 유다뿐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이 다같이 하느님의 약속을 받았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유데아 백성의 조상들의 부패상을 나타내고 있다.
유다는 율법으로 금지된 이교도와의 혼인을 했고. 에르라는 맏아들에게도 그런 결혼을 강요하여 따마르라는 이교 여인을 아내로 얻어주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맏아들이 후사(後嗣) 없이 죽었을 경우, 둘째 아들이 형의 아내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아서 형의 대를 잇게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은 「이기주의자」였기 때문에 이 의무를 정직하게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따마르는 자식을 가지고 싶은 집념(執念)에서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이 엄히 금한 근친상간과 매음으로 태어난 ㅛᅟᅡᆼ동이가 바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추축(樞軸)인 유다 지파의 조상이다.
이를 테면 한 이교 여인의 불륜(不倫)의 씨로 말미암아 유데아 백성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최고의 「아이러니」이다. 이 이야기의 신학적 의미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인간의 이러한 극단적인 부패를 배경으로 전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근본 목적은 인위적 피임의 단죄가 아니라 인간의 부패와 하느님의 자비를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유다와 따마르이고 오난은 단역(端役)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오난이 벌을 받은 것은, 일정한 피임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동기가 이기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을 낳아도 자기자식이 아니라 죽은 형의 자식이 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아조절의 동기는 오난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상기(上記) 성경귀절을 산아제한 문제에 적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오난이 절제나 주기법 등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이루었더라도 그 같은 벌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동기가 나쁘기 때문이다. 문제점은 바로 이 동기에 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이번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에서 위의 성경귀절을 인용하지 않으셨다. 그럼으로써 귀절들이 산제문제와는 직접관련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이상 고찰한 「죄악의 열거」와 창세기 38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아제한 문제에 대해서 한 가지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즉 이기주의나 질투 같은 동기는 나쁘다는 것이다. 신학자가 이 이상의 것을 말하게 되면 자기의 한계를 넘게 되는 것이다.
「敎法이 아니더라도 敎皇의 통상교도권에 의한 지시는 이를 받들고 따리야 한다. 이번 敎皇 산제회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白쁠라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