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2)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⑱
발행일1968-10-13 [제639호, 4면]
『네?』
부인은 기가막힌 듯이 멈춰서서 윤 사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입가에 웃음을 함빡띄었다.
『나중에는 별말씀을 다 하시는 군요. 죽어서 땅에 묻어 썩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온단 말씀입니까』
윤 사장도 굳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렇게 된다고 치면 말입니다』
『글쎄요. 살아난다면 그 위인이 나한테 빌게 어디 있겠어요. 또 어느년 하고 놀아나서 못된 바람이나 피울테지요.』
『말씀하시는게 암만해도 용서하지 않으실 눈치갑군』
윤 사장은 넌즈시 부인의 마음을 떠보았다.
『용서구 말구 그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 한걸요. 그런 위인은 오히려 잘 죽었지요. 혼자서 자식들하고 살아가기는 고달퍼도 지금이 마음은 편한걸요』
『그래 자녀분들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잘나나 못나나 친아버지니까 아주생각을 하지 않을 수야 있나요. 죽은날 제사지내주고 한식과 추석에 성묘만은 걸르지 않지요』
이 때 부인은 언덕을 넘어서자 발아래 오른쪽으로 보이는 집 한 채를 손까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집입니다. 이놈의 언덕만 아니면 가깝기도 하고 물건 사가지고 다니기도 그렇게 힘은 들지 않을텐데 이 마을은 꼭 이 언덕길 때문에 말이어요.』
『부인 힘이 드실텐데 잠간만 더 쉬었다가 내려가실까요.』
윤 사장은 늙은 부인이 딱하기도 했지마는 정작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자 마음의 불안이 일어났다.
(그렇게 쌀쌀하게 나를 회피하는 정아가 이렇게 짖궂게 찾아온 것을 달갑게 맞이해 줄 것인가?)
이런 생각이 갑자기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동남아를 주름잡으며 능난한 솜씨로 활약하던 윤 사장도 나- 젊은 한 처녀 앞에서는 마음약한 소년처럼 할바를 몰랐다.
『글쎄요. 내려가는 것은 힘이 들지 않는데 바쁘시지 않다면 허리나 좀 펴고 내려가지요.』
부인은 짐을 머리에서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그런데 손님 혹시 정아 처녀의 취직이 되어서 알려주려고 오신건 아닙니까?』
부인은 알아듣지 못할 질문을 불쑥하였다.
『취직이라니요? 정아가 취직을 하려고합니까?』
『모르시는군요. 그동안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만 두고 벌써 두 달째 놀고 있지요.』
『무슨일이 있었나요?』
윤 사장은 귀가 번쩍 띄어서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 처녀가 원체 인물이 예쁘니까 뭇 사내 녀석들이 침을 삼키고 덤비거든요. 그 제약회사에서도 그런 놈이 있었던 모양이어요』
『그래 혹시 연애라도 했나요?』
『원 연애가 다 뭡니까. 그 처녀가 얼마나 얌전하고 매서운데요. 그래서 결국은 그 회사를 그만둔 거지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윤 사장은 또 그 부인의 속을 떠보았다.
『시집갈 처녀니까 그렇기는 하지요. 그 회사에서 정아 처녀를 귀찮게 따라다니던 청년은 독일유학까지 갔다 온 아주 유망한 청년이라고 정아 처녀의 친구들도 교제를 하라고 권했으니까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던가요?』
『결국은 그 회사를 나오고 말았어요.』
『어째서 그렇게까지 한답니까?』
『글쎄요. 아마 그 처녀가 신자가 되어서 그러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어요』
윤 사장은 또 깜짝 놀랐다.
『신자라니요?』
『모르시나요? 정아 처녀는 성당에 나가는 아주 열렬한 천주교 신자지요. 그 처녀의 어머니는 목포에 있는 무슨 수도원에 계시대요.』
『수도원에요?』
윤 사장은 너무도 놀라서 하마터면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그럼 정아 처녀의 어머니가 수녀라도 되었나요?』
『그런게 아니구 거기있는 서양신부님한테 일을 보아주며 얹혀있었나봐요. 그런데 그 서양신부님이 지난번에 세상을 떠나셨다지 뭡니까. 지금까지는 그 서양신부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는데 그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로 갑자기 모든 것이 어려워진 모양이어요. 그러나 저러나 정아 처녀의 취직이 빨리 되어야 할텐데 큰일이어요.』
『그 제약회사에 있는 독일유학생은 요새도 그래 정아를 찾아옵니까?』
『처음에는 편지를 하고 찾아오고 하다가 인제는 지쳤는지 뜸하고 있어요. 그 청년하고 결혼을 했으면 그저 모든게 다좋겠는데… 글쎄 그 청년의 집이 큰 부자인데, 결혼만 하면 목포에 계신 어머니까지 모셔다가 생전한 집에 살겠다고 한다지 않습니까』
『그렇게 좋은 자리를 어째서 거절을 하는 건가요?』
『글쎄 말이지요. 정아 처녀는 무슨 까닭인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그래요.』
『네? 결혼을 하지 않아요?』
『생전 혼자 살겠다는 거에요. 남자란 다 믿을 수없는 사람들이니까 혼자 살겠다는 거에요.』
부인은 말하면서 웃었다.
『아직 나이 젊은 처녀가 어째서 그렇게 남자를 나쁘게 보았을 가요?』
『그걸 알수가 없어요. 통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윤 사장은 마음속으로 회한의 정이 또 솟아 올랐다.
(나 때문이 아닐까? 이 못된 아비가 그 애의 젊은 가슴에 깊이 못을 박아준 것이나 아닐까?)
『그만 가시지요. 너무 수다를 떨어서 정아 처녀가 알면 야단할 거에요』
부인은 다시 짐을 이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윤 사장도 꾸레미를 들고 따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