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사랑으로 맺어 주면서 인류 역사에 깊이 간섭한다고 했다. 따라서 교리교육은 사람들을 한 「사랑의 가정」에 모으는 힘을 발휘해야 하겠다. 즉 신의 말씀으로 교육된 사람은 타인안에 신을 발견하면서 그에게 봉사하고 「내」 안에도 신이 작용하고 「네」 안에도 신이 활동한다는 생생한 신앙을 생활로 드러내야 한다.
이런 생활이 초대교회에서는 실현되었고 중세기 중반까지 그런 기 풍을 우리교회안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종교개혁 이후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오늘에 와서는 교리교육과 사회생활간에는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교리교육이 사람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신앙의 생활화가 이룩되지 못하고 있는 이 실정에서는 냉담자와 「스캔달」이 증가는 필연적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현대인으로 하여금 종교를 외면하게 하는 큰 원인중의 하나가 된다.
이제 우리 교회에서는 위와같은 현실성을 감안하여 신앙의 생활화와 실천교리교육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초대교회시대는 전례를 통해서 신앙의 생활화가 이루어졌었다. 전례행사가 곧 교리교육이었고 교리교육은 처음에는 전례를 통해서만 실천되었었다. 예를들면 말씀의 전례는 신의 계시 말씀을 듣고 해설하고 묵상하면서 받아들였고 또 이 말씀에 대답한다는 의미에서 찬미와 감사의 경신례를 올렸던 것이다. 여기서 교리교육과 전례행사의 혼연일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같은 행사가 그대로 생활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리교수법 발전사상에 한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금세기초부터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교리교수법 쇄신운동은 각 방면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거니와 결국에 가서는 전례가 종교교육을 위해서 의미심장한 구실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교리교수론자들이 애써서 연구해낸 소위 새 교리교수법은 전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상 실천되어 오던 것이었음을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례와 교리교수는 동일한 기반 위에서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전례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모든 진리와 기본규범이 산행동으로 종합되어 신에게로 향한다. 교리에서 취급되는 재료는 전례에서 다루어지는 것과 하나로 다를바 없다.
전례는 교리교수의 본시의 형태다. 교리교수의 형식이나 내용이 전례와 일치할수록 교리는 실제화된다. 왜냐하면 전례는 성당 안에서만의 행사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행사가 되는 연고다. 이와같은 전례를 통하지 않고서 어찌 신앙의 개성화 내지 생활화를 기대할 수 있으랴. 물론 여기서 전례의 현대화와 토착화를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교리교수의 전례화는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서로 연구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 우선 강의식 교리를 지양하고 되도록 전례적 교리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예컨대 교회를 사랑의 단체로 해설할 때에 미사와 관련해서 교리시간에 사랑의 잔치인 미사를 잘 준비한 다음 실제로 함께 드리면 어떨까? 기도에 있어서 과히 치중하고 있는 청원기도를 좀더 기도의 본정신으로 이끌어 계시말씀에 대한 대답의 형식으로 바치도록 하기위해서 기도에 대한 교리시간에 말씀의 전례를 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요새와서 각처에서 교리강습이 성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만 지식의 전달에 끝나면 대단히 아까운 일이다. 예비자나 신자들의 교리 역시 실생활 지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면 교리교사들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강습에서도 모범적 생활 훈련이 실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교리경시대회도 전례나 실생활에 그 무슨 자극을 주는 방향으로 시행되어야 하겠다. 경시대회서 우등한 사람이 사회인으로서의 생활도 반드시 우수하다고 본다면 큰 오산일 께다. 이웃에게 봉사하는 생활을 해가면서 사랑의 계명이 해설되어야 하겠다. 하여간 얼마든지 더 연구할 수 있는 문제다. 교리교육이 실생활에 그대로 반영될 때에 현대사람들은 우리안에 신의 흔적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사목헌장에 지시된 「올바로 해석된 교리교육」의 실현을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성경 중심의 교리」와 「교리의 전례화」에서부터 시작해야 되겟다는 의견을 적어보았다. 물론 이외에도 더 깊이 새혁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으나 우선 이 두가지가 가장 중대하고 또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며 또한 이 두가지만 완전히 실천되면 우리나라의 포교 판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지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이제 필자는 이글을 끝내면서 우리 주교회의에서 「한국 교리교육 지침서」 정도 하나 발표해 주기를 감히 건의하는 바다. 한 나라의 주교회의는 그 나라의 포교 최고 지도 이원회이니만큼 포교상 가장 중요한 교리교육 지침서 하나쯤은 이미 사목하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어야 될 일이라고 본다. 하여간 이와같은 일은 「로마」에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주교회의 직접적 의무에 속한다고 보기에 이에 진언해 본다. (끝)
이경우 (왜관 신동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