諡福慶祝(시복경축)행사 有感(유감)
우리서로 迫害者(박해자)되지 말고 「巡禮(순례)의 길」함께 걷자
一個宗派(일개종파)의 행사로 看做(간주)한 政府(정부)태도
敎會當局(교회당국)의 努力不足(노력부족)에도 責任(책임)있고
병인순교복자 24위 시복경축행사는 지난 13일 서울남산음악당에서 거행된 야외미사로서 그 다채로운 행사의 절정을 이루었다. 「로마」에서 한국인 대주교에 의한 시복 대례미사집전, 「베드로」대성전에서 최초로 봉헌된 한국어 공식기도와 성가, 「매스·콤」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꼬레아」의 인식을 새롭게 한 이모든 행사들이 조국의 국위를 선양한 선열들의 위업을 현양하기에 알맞는 또 하나의 국위선양을 이룩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열들의 위업을 추모하기에 알맞는 경축행사가 국내에서도 적절히 거행되고 있고, 특히 남산 음악당 광장의 야외미사는 그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신자들의 질서와 경건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유종의 미를 걷우었다.
그러나, 조상의 제사참례나 해서 제사밥이나 먹고 헤어지고 마는 무성의한 후손들이 안되려면, 우리는 여기서 경축행사 자체에 대한 반성도 해보고, 또한 앞날의 할일도 다짐해봐야겠다.
첫째로 들고 싶은 것은, 이번기회에 1백40명의 국내 순례단이 출국하는 것을 허락해준 정부에 대해서 사의를 표하나, 「바티깐」과 대사를 교환하고 있는 정부를 대표해서, 또한 5백명의 교포가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로마」에서, 현지 대사관이 아무런 공식적 참여를 안했다는 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었고, 서울의 행사에 있어서도, 이것이 한 종파의 내부행사 또는 연례행사로 간주되고만 느낌이 있음은 유감천만이다. 기능 「올림픽」선수의 입상이나, 여자농구단의 개선에 비하여 복자 24위의 시복은 국가적으로 그다지도 의의를 못 발견하는 일인가? 또 그것을 인식시키도록 사전에 충분한 교섭과 안내가 없었던 교회당국의 일치된 노력의 결여에도 그 책임의 일단이 있지 않을까?
둘째로 이 경축행사가 거국적이 못되고 분산적인 사면한 것이 되어버린 점도 석연치 못하고, 특히 순교유적 순례나 큰 행사에 참여 할 순례단의 조직같은 것에 주교단이 배려를 안했다는데도 많은 안타까움이 있다.
이러한 반성을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제 1백3위의 복자를 모시게 되었고, 그중에 20명이 성직자, 나머지 5분의4는 한국인 평신자들이다. 전교국가에서, 그리고 1백90년 미만의 그 짧은 역사를 통하여, 이렇듯이 많은 복자를 가졌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세계적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자랑과 그 유업을 계승하고 현양하는 일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우선 제의하고 싶은 것은 사목목표의 설정이다. 전국 주교단과 사제단과 평신자가 한뭉치가 되어, 70년도 말까지는 신자수 1백만을 돌파하는 기적을 이루어보자는 보람찬 목표를 내걸자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치밀한 사목계획과 협심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순교자들의 넋을 이어받아서 순교의 꽃을 활짝 피우는 일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야 할 것이다. 조상 산소나 잘 쓰고, 기제사나 잘 드림으로써, 가문이 융성하고 후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자손들은 다 멸망하고 마는 법이고, 누군가가 앞장을 서서 선대를 이어나가려는 뼈빠지는 노력을 강행했던 집안만이 융성하게 남는 법이다.
우리가 80만을 바라보는 교세를 자랑하게된 것도 다 6·25이후 순교정신계승과 현양에 힘쓴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안일과 세속적 영화가 뒤를 따를 때에 전교를 위한 황금의 기회는 놓쳐지고 있다. 우리는 이시복식을 계기로하여 다시한번 6·25후로 되돌아 가야하며 이왕 크리스찬이면 크리스찬 노릇을 한번정신차려 해보자는 것이다. 둘째로 제의하고 싶은 것은 이 목표달성을 위한 사제들과 신자들의 신심의 재무장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면서 과연 크리스찬 정신에 살고 있고 복음화 운동의 대열에 끼어서 내가 남을 용서하듯 내 죄의 용서를 바랄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세속과 영생의 대결 속에서 「천주」와 「맘몸」의 양자택일일 때에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순교자와 박해자는 늘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또 평신자 상호간에 평신자와 성직자간에 우리 스스로가 서로 박해자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직자와 평신자간에 있던 전제군주체제는 이미 다 무너져가는데 아직도 그 장벽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우리의 재훈련은 시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의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순례운동의 전개이다. 다만 순교정신의 현양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와 우리의 문화재보존을 위해서도 우리는 각 순교유적을 미화하고 성역화해서 사람을 끌게하는 동시에 순례단조직과 훈련에 관한 새로운 크리스찬 문화를 도입해서라도 정기적인 도보행렬 횃불행렬의 성지참배운동이 전국적으로 하나의 「붐」이 되도록 이루어졌으면 한다. 순례가 가진 선심앙양과 신앙부흥의 효험은 부인할 필요도 없다.
요는 우리 전체가 이 시복경축의 시기를 각자가 가진 크리스찬 재고량의 보충의 기회로 쓰느냐 안쓰느냐는 그것뿐이다. 한국천주교회는 복자 1백3위로 그칠 수도 있다. 또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많은 시성식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고 안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들의 노력에 달렸다. 우리가 얼마나 복자들에게 매달리고 얼마나 우리가기 기도로나 실천으로나 극성을 피우고 얼마나 우리의 호소가 폭풍우처럼 하늘의 문을 두들기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다 기적을 바라기에 합당한 크리스찬이 먼저 되어야겠다. (編輯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