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수녀로는 처음으로 미지의 나라, 검은대륙 「케냐」에 선교의 사명을 띄고 떠난 여사도가 있어 화제. 선교 뿐 아니라 의술(醫術)을 동시에 펼 이 검은 「베일」의 여사도는 메리놀 소속 유 루치아(도금) 의사수녀이다.
아직도 전교지방의 딱지가 덜 떨어진 우리 한국교회에서 남의 나라에 선교사를, 그것도 남자가 아니고 여성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화도 「그리스도왕의원」에서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교리교사로 살아온 유 수녀는 부산출신. 55년도에 우석의대(友石醫大)를 나와 미국 「오하이오」주 「구두사마리딴」병원 「인턴」코스를 밟던 중 뜻한 바 있어 성세입교하고 메리놀에 들어가 68년에 첫서원을 마쳤다.
- 어떤 동기로 가게 되었읍니까.
『나는 수녀지만 또 의사입니다. 인종차별의 물결 속에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아프리가를 인술(仁術)로 도와야 겠다고 느꼈읍니다.』 그래서 인력수출(人力輸出)을 자원했단다.
62년, 「위스컨신」주 「밀워끼」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유도금 여의사는 환자들이 의술이나 약보다도 다른 정신적인 귀의처를 믿고 있음으로써 병세회복이 빠름을 보고 감격, 64년에 그곳 병원에서 성세입교했다. 이듬해인 65년, 필립핀으로 건너간 그는 이제 메리놀수녀원 문을 두드리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의 육신을 고쳐주는 의사이긴 하지만 사람의 영신적인 병은 결코 약물요법으로는 불가능함을 깊이 느끼고 조용히 수련생활에 들어갔다. 67년 귀국하여 착복식(着服式)을 가진후 강화읍 「그리스도왕의원」에서 인술을 펴기 시작했다.
오느 모로 보나 사회적으로 선망의 적이되고 더욱 유명해 질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갖춘 그녀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팽개쳐 버리고 67년 서원을 했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도로 인술 뿐 아니라 영신의 의사로 온몸을 바치게 된 것이다.
불과 4년의 짧은 신앙생활이지만, 수녀로서의 정결과 겸양과 청빈의 덕은 「인테리」로서의 그를 더욱 완전한 의사로 만들어 왔다. 유 수녀의 「케냐」 파견 임명을 축하하는 미사를 집전한 최석호 신부는 강론을 통해 『유 수녀의 모범적인 행위는 충분히 국위선양에 도움이 될 것이며, 그의 신앙은 선교사로서 넉넉하다』고 말했다. 비록 4년의 신자지만 마음은 태생교우와 다름이 없었노라고 그 자신 힘 주어 말한다.
떠나면서까지 자기가 지도해 오던 예비신자들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꼭 성공하기를 빈다고 마라는 유수녀는, 비행기 「타랍」을 오르면서 이 한마디를 남겼다.
『어디서나 참된 신앙을 갖고 우리 조국을 위해 일하겠읍니다. 그리고 모든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참고 도와야겠읍니다. 이제 저는 수녀로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먼곳으로 떠나갑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약한 저를 항상 돌봐 주실겁니다.』 (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