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制回勅(산제회칙)에 관한 神學的(신학적) 考察(고찰) ③
물(성경말씀)이 나오지 않을 때라도 수도(敎導權(교도권))꼭지를 틀면 소리는 난다
□ 避姙(피임)을 斷罪(단죄)한 敎父(교부)는 5세기까지 단 두명뿐 □
受胎(수태) 後(후)의 性行爲(성행위)는「殺人(살인)」?
眞理規定(진리규정)은「多數決(다수결)」아니라「同意(동의)」로
지난 호에는 산제문제에 관한 하느님의 계시가 성경에는 없다는 사실을 다루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같으면 여기서 논증을 일단락 짓고 더 이상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신학자는 성경 이외에 교회 초창기부터의 전통도 고려해야 한다. 가톨릭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특별한 의의를 가지는 이 전통을 성전(聖傳)이라고 한다.
(가) 성전(聖傳)
성경과 성전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신학파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보수적인 「로마」에서는 성전이 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준비할 때에 이러한 사상을 반영시킨 「계시의 원천들에 관한 헌장」이라는 헌장 초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많은 주교들이 이 헌장 초안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하였기 때문에 교황께서 새「텍스트」를 작성하도록 명하셨다. 그리하여 처음의 초안에서는 성경과 성전을 둘 다 「계시의 원천」이라고 하였었지만 뒤에 반포된 「계시헌장」에서는 성경을 「계시」라 하고(제1장) 성전은 「하느님 계시의 전달」이라 하였다. (제2장) 이렇게 구별함으로써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 양자간에 권위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실상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이지만 성전은 계시가 아니라 그 계시의 전달」이다. 그러나 「성전과 성경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있고 상호 공통되는 바가 있다.」(계시헌장 제9조) 한편 공의회의 지시에 의하면 『신학은 성전과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영구적인 기초로 삼고 거기에서 강한 힘을 얻어 항상 젊어지며 신앙의 빛을 받아 그리스도 현의에 포함된 모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계시헌장 제2조). 이 원칙에 따라 지난 호에 필자는 산제문제와 관련시켜 성경의 가르침을 고찰하였다. 이번에는 성전 즉 초대교회의 전통에 의거한 논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나) 교부들의 저술과 초대교회의 보속(회개)
-성사-교부들의 저술은 성전의 가장 중요한 앙금(침전물)이다.
그래서 과거 모든 공의회에서 어떤 신앙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먼저 성경,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하여 교부들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연구 하였다. 여기서 CONSENSUS(同意)란 유명한 신학 원칙이 생겼다. 즉 거의 모든 교부들이 해당되는 가르침을 확실히 전달된 진리라고 일치된 증언을 하였을 때, 이를 성경의 유권적 해석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교부들은 산제문제에 대하여 무엇을 말했는가? 일부 신학교과서에서는 이 문제를 「동의(同意)의 전승(傳承)」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동의의 전승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교부들의 저술을 철저히 연구하지도 않고 그냥 기계적으로 무책임한 필사(筆寫)를 했었다.
1962년에야 프랑스의 신학자 듀바톨이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끝에 5세기까지의 교부들 중 단 두사람만이 피임을 명백히 배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성 아우구스띠노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가 피임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밖에 몇몇교부들도 이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피임을 뜻하는지 인위적 유산을 뜻하는지 문제점이 모호하다.
다른 대부분의 교부들은 가끔 부정(不貞)의 죄나 창세기 38장을 자세히 주석하면서도 피임문제에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성 아우구스띠노의 사상에 대해 약간 부연해야하겠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에 소위 마니교(敎)에 심취하였는데, 영세한 후에도 마니교의 사상을 완전히 씻어버리지는 못했었다. 특히 마니교의 소극적인 성 개념(性槪念)을 그대로 간직하여 저술에 반영시킴으로써 오늘날까지 일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성(性)자체를 악한 것으로 단정하고 번식(자녀 출산) 목적 이외의 성행위는 일절 허락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주기법까지 포함한 모든 피임을 배격하고, 심지어 피임은 매음 보다 더 나쁘다고까지 주장했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이러한 피임 배격은 그의 사상적 배경에 비추어볼 때 그 논거가 의심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언이폐지하여, 수많은 교부들 중에 명확하게 피임을 배격한 이는 단지 두 사람뿐인데, 이를 가지고 피임을 단죄하는 「동의」라 말할 수 있을까?
초대교회의 고백성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초대교회의 전례도 성전 연구의 중요한 원천이다.
특히 그 당시의 고백성사가 어떻게 집행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때 어떤 행위들이 죄악으로 간주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6세기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고백은 없었고, 일생에 오직 한번, 그것도 공개적으로 엄격한 보속을 한 뒤에야 이 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때에 가장 중요시된 것은 보속이었으므로, 그것은 고백성사라 하기보다 차라리 보속(혹은 회개) 성사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당시 이 성사에서 보속해야 할 죄중에 피임행위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6세기에 카이사리우스·아래라텐시스란 교부가 피임은 소죄(小罪)라고 했을 뿐이다.
여기서 교부시대에는 피임을 규탄하는 성전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다) 중세기
희랍문화시대에 「살인 가설(假說)」이라 부를 수 있는 교설(敎說)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교설에 의하면 정액(精液)은 이미 「작은 인간」이므로 성교중 이외의 은 사정(射精)은(예컨대 창세기 38장의 오난의 경우나 수음을 가리키는 듯) 살인과 같은 죄악이라 하였다.(이러한 논법으로 따지면 수태후의 성교도 살인과 같다.) 이 가설이 중세기에 다시 문제되어 성토마스·아퀴나스를 비롯한 몇몇 신학자들의 사고를 혼란케 하였다. 그들은 물론 피임을 살인과 같은 죄로 간주하였다. 오늘날 이 주장의 생물학적 근거는 이미 없어졌는데도 아직까지 「대죄」라고 고집하고 있다.
(라) 결론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계시헌장에 의하면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위탁된 하느님의 말씀의 거룩한 위탁물이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신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며 성실히 진술하고 또한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제시된 모든 것을 신앙의 이 단일 위탁물에서 알아내는 것이다』(제10조) 요컨대 피임을 명백히 배격하는 성경 말씀도 없고 또한 「동의의 전승」도 없다. 어떤 신학자들이 그래도 피임은 죄악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신학적 권위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철학적 권위에만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이 공포된 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반대물결을 비꼬아 교회에서도 민주주의사회에서처럼 진리를 다수결로 규정해야 하는가하고 힐난하였지만 문제는 다수결문제가 아니라 「동의」의 문제다. 그리고 피임문제에 있어서는 과거나 현재나 「동의」가 없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물이고 성전은 이물이 흐르는(傳達) 오래된 강이며 교도권은 이물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공급하는 수도이다. 물이 나오지 않을 때라도 수도꼭지를 틀면 소리는 난다.
교도권이 성경과 성전에 의거하지 않고 다만 중세기의 한 신학파의 교훈을 가르치는 경우에는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계속)
白쁠라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