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가을] ③ 꽃으로 단장한 젖소와 牧女(목녀) 행렬
「알프스」산 언저리 가을의 향수
발행일1968-10-27 [제641호, 4면]
한국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지 올들어 일곱번째가 되는가 보다. 언제고 가을이면 같은 느낌이다. 드높은 가을하늘의 푸르름 아래 빨갛게 무르익은 단풍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기쁨에 취하듯 붉은 덩굴이 검붉은 준엄한 바위를 휘감는 정취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가고 자연의 아름다움 영롱한 빛깔, 싱싱한 과일 그리고 상쾌하고 참신한 미,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룩하는 젊은이들…. 이들은 내가보는 한국의 가을풍경들이다.
한국의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알프스」 산맥 언저리에 자리잡은 내 고향, 산 많은 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껴본 적이 없다.
독일의 가을 그 자체를 두고 말한다면 한마디로 이렇다하게 얘기할 수 없다.
「라인」강가에서 그해의 포도를 추수하고 있노라면 검은 연기로 둘러싸인 중공업지대의 「루르」지방에서는 상쾌한 이른 아침에 라야만 『아 가을이 왔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북해 연안에서는 폭풍우가 파도를 채찍질하고 넓다란 토탄편지에는 「에리카」꽃이 피는가 하면 대도시에서는 가을이 언제냐는 식으로 무심히 흘러가기 마련이다. 꽃집에 꽂혀진 몇개의 가을나무가지와 국화몇송이 그리고 공원「벤취」에 앉아 별을 쬐고 있는 늙은 부인들, 이 모든 것은 독일인에게 고요하고 명상적인 비애이별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계절을 즉 가을을 상기케 한다.
「바바리아」지방(여기가 내 고향이다)과 오지리에서는 자연현상과 교회행사가 서로 얽혀 이 지방의 가을을 특징 지워주는 특유한 풍습이 행해진다.
등산가들은 이때가 되면 9월의 해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다시 한번 3천「미터」이상이나 되는 산봉우리의 관광을 즐긴다.
여름내내 산허리의 초원에서 머물던 젖소들은 이제 가을이 되어 평지의 외양간을 다시 찾아든다. 그들이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방울을 울리며 지나가면 북독일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은 이들의 행렬을 신기하고 흥겨운 눈으로 구경한다. 이 젖소들은 머리를 수관(樹冠)과 꽃줄로 장식하고 우쭐대며 행렬한다. 이에 못지않게 명절 옷으로 단장한 여(女) 목동들도 우쭐대며 젖소와 함께 행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젖소들을 살찌고 건강하게 키워 다시 몰고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추수감사절에는 수관 중에서 가장 예쁜 것을 골라 빵과 과일과 「치이즈」 덩이와 함께 「바록크」식인 고향성당의 제단에 올려놓는다. 이어서 축제미사가 행해진다. 이 미사는 농부들에게 또다시 풍성한 해를 주신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와 환호성으로 화한다. 이것이 가을을 맞이하는 맨첫번째의 큰 축제 즉 추수감사절이다.
시월이되어 날씨가 싸늘해지고 눈덮인 산봉우리의 겨울이 점점 짙어갈때 두번째의 축제가 다가온다. 아침안개는 점점 짙어만 가고 산계곡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일단 이안개가 걷히고 나면 푸른 하늘과 눈 덮인 하얀 산봉우리에 새로운 공간이 등장한다. 공동묘지에는 분주한 작업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들이 다시 다듬어지고 외롭게 죽은 자들의 무덤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나면 모든 성인의 날이 오는 것이다. 이때 공동묘지는 꽃으로 단장한 화원이 된다. 그리고는 엄숙한 신부들의 행렬이 군중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무덤을 축복하고 성인들의 영광이 내리기를 빈다. 이순간 죽음은 잠시 동안 그의 공포를 상실한다. 인간은 산이거나 죽은이거나 모두가 다하나의 가족이 되며 죽음이란 한낱 잠시 동안의 이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다음날인 위령의 날이 되면 이제 고요와 명상에 잠기게 된다.
내 고향의 가을은 아름답다. 내 새로운 고향의 가을도 아름답다. 이따금 마음속 깊이 바라곤하는 나의 소망이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풍성한 풍습이 한국교회생활과 직결되어 잘 조화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