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4)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⑳
발행일1968-10-27 [제641호, 4면]
그러나 아무리 촌스러워도 윤 사장은 오히려 그것이 더욱 순박하고 정다워 보였다.
(이 다방에도 정아가 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초라한 다방 안이 아늑해보였다. 그때 윤 사장은 깜짝놀랐다. 다방 문안에 건장한 청년 하나가 성큼 들어섰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그 청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청년은 다방문에 들어서서 우뚝 멈춰 선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다. 눈이 큼직하며 이마가 시원스럽게 넓다. 윤 사장은 그 청년을 보자 곧 늙은 부인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기골이 장대한 대장감…)
『그 사람이로구나. 바로 그 청년이로구나.』
윤 사장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윤 사장을 긴장시킨 것은 그 청년에 대한 미묘한 인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고 어디서 오래 친한 낯익은 모습이 분명하였다.
(어디서 내가 저 청년을 보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본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보면 볼수록 사뭇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정답고 친숙한 모습이 아닌가. 윤 사장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곧장 윤 사장에게로 다가 왔다.
『실례합니다.』
청년은 윤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굵고 우렁찬 목소리었다.
『왜 그러시오?』
『선생님이 혹시 정아를 기다리시는 윤 사장이 아니십니까?』
『그렇소. 사실은 정아가 이리로 나오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오.』
윤 사장은 가볍게 웃으면서 청년을 더욱 자세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더욱 낯익고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정아는 나올 수가 없으니까 그대로 돌아가시랍니다. 그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제가 심부름을 왔읍니다.』
청년의 자세는 대단히 무뚝뚝하고 거만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청년은 대체 누구요?』
『네? 제가 누구냐구요? 저는 정아의 동생입니다. 그래서 누님의 심부름을 하는 겁니다.』
『정아의 친동생이오?』
『물론이지요. 정아는 저의 친누님입니다.』
『정아한테 형제가 있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는데….』
『글쎄요. 그거야 선생님의 자유시겠지요. 어쨌든 저는 정아의 친동생입니다. 그래서 누님의 심부름을 해드리는 거니까 그렇게 아시면 그뿐 아닙니까.』
『그야 그럴테지. 허지만 불과 조금전에 나한테 곧 나갈테니 여기와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안나올리가 없는데….』
『요컨대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더 추근추근하게 구시다가 공연히 큰 망신을 하지마시고 일찌감치 속 차리시고 물러가시라는 겁니다.』
『허어. 그 청년 말버릇이 좋지 않구먼 그래.』
윤 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여전히 가벼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뭐라구요?』
청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언성을 높인다.
『아니 그렇게 덮어 놓고 흥분할게 아니라 좌우간 여기 좀 앉으시오. 이야기는 조리있게 따져야지. 우격다짐으로 되는게 아니오.』
윤 사장은 자기 「테불」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청년은 윤 사장이 가리키는 의자를 흘겨보았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순순히 의자를 끌어내어 걸터 앉았다.
『레지. 여기 차한잔 더 가져 와요.』
윤 사장의 말에 눈이 휘둥그래서 쳐다보고 있던 레지가 다가왔다.
『무슨 차를 하겠오?』
『저는 차 싫습니다.』
청년은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아니 이야기를 하자면 맨숭맨숭하게야 할 수 없지 않은가. 다 같은 남자끼리 그럴거야 없지 않소. 아무거나 한잔합시다.』
청년은 여전히 눈을 부라리고 윤 사장과 레지를 흘겨 보다가 뜻밖에
『커피』
하고 순순히 대답하였다.
무뚝뚝하나 매우 솔직한 청년이로구나 하고 윤 사장은 생각하였다. 그 순간 윤 사장의 머리에 한가닥 빛이 번쩍이었다.
(그렇다.)
윤 사장은 비로소 매우 중대한 일을 깨달았다. 그 청년의 모습은 바로 윤 사장 자신이 젊었을 때의 모습과 방불했던 것이다.
(영낙없다. 바로 나다. 내가 저렇게 일직선이었다. 모습도 바로 저랬었지. 맞았다. 바로 그 시절 나다)
『그래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그러시는 거지요?』
자리에 비스듬이 앉은채 청년이 역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나 윤 사장은 그의 불손스러운 태도 같은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하려던 말은 어디로 사라지고 청년의 모습만 자꾸 훑어보았다.
그것을 몸으로 느낀듯 청년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선생니은 연세도 많으시고 그만한 지위에 있으신분이 나이 어린처녀를 만나셔서 무얼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러지 않아도 저의 누이 정아는 어느 회사에 다니다가 짓궂은 사내들 때문에 최근에 그만두고 곤경에 빠져 있읍니다 이 이상 쓸데없이 나이어린 여자를 괴롭히지 마시고 그대로 곱게 돌아가 주셨으면 선생님을 위해서나 저의 누이를 위해서나 피차에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청년은 제법 이치에 닿게 윤 사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 청년이 무엇을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설마하니 청년의 누이를 여자로서 탑을 내고 있다는 말은 아닐테지?』
이 말에 청년은 턱을 치켜들고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왜 이렇게 시침을 땝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회사 복도에서 만난 후로 추근추근하게 따라다니는 겁니까?』
『청년은 누님에게서 그 말만 들었는가?』
『그럼 그밖에 무슨 말을 들을게 있단 말입니까.』
『그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인걸 사실은 그런게 아닌데….』
『무엇이 대체 그렇지 않다는 거요?』
청년은 갑자기 「테불」을 주먹으로 탕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