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아동 산60번지. 성가병원 뒤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얼마쯤 가니 「小비女의 집」으로 알려진 「성가수녀원」입구. 문을 들어서면 아롱다롱 채색된 미끄럼틀이며 그네가 있는 유치원이 바른켠에 있고 위쪽엔 사제관, 그리고 대지 8천평을 가로지르는 넓은 길을 막으며 갖치장된 4층 현대식 건물이 정면으로 마주서있다. 이것이 본원 및 수련원. 총원장 고 시몬 수녀님, 지도 최민순 신부님. 응접실에 들어서자 수녀님들이 함빡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기자는 먼저 邦人수녀원의 육성 및 聖召 배가운동의 일환으로 이렇게 찾아왔다고 探訪 목적부터 밝힌 뒤, 구체적인 얘기들을 더듬어 간다.
- 우선 창설당시의 얘길 좀 들려주시겠어요? 창립년월일이라든가 창설자 기타 산파역을 맡아주신 여러분들에 대해 -
『네, 1943년 12월 25일에 창립인가를 받았고, 「빠리외방전교회」 소속인 성 베드로 신부님이 창설자에요. 은인으로 말하자면, 당시의 서울교구장 노 대주교님을 위시하여 규칙과 기틀을 잡아주신 이재현 신부님, 영적스승이었던 故 공 안또니오 신부님, 그후 계속 따스한 채찍을 아끼지 않으신 최 신부님, 초창기의 역경속에서 거름역을 해주신 고참 강 떼끌라 수녀님(샬뜨르바오로회 소속) 등 여러분이셔요.』
그러니까 학벌도 사회경험도 별로 없던 4명의 노처녀가 그야말로 赤手空拳으로 오직 하느님의 비천한 시녀가 되겠다는 치성한 願慾하에 혜화동성당 내 단간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것은 대동아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당시. 식량기근 등 각가지 어려움이 도처에 산재하고, 신음하는 환자들이 날로 급증하여 廢虛의 밤속에서 울부짖을때, 그들 어기찬 처녀들은 닥치는대로 가진 노동을 다하고 浮黃에 걸려 퉁퉁 부으면서도 시래기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반면, 이를 악물고 절약하여 식량 · 약품 등을 사들곤 지칠줄 모르고 땅굴집의 불우자들을 돕기에 여념이 없었단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요즈음도 성가수녀원에선 3명의 수녀에겐 오직 극빈자나 벽지의 환자들 방문만을 전담시키고 있다는 것.
- 말하자면 邦人수녀원 공통의 가장 중심적인 애로점이 바로 그 경제문제겠죠. 그런데 현재는 대체로 자급자족이 되나요. 아니면 아직 外援에 기대야 할 형편인가요? -
『네, 거의 완전한 자급자족이라 볼 수 있어요.』 방법은 직영사업체 경영 및 서울시내와 각 지방본당의 파견, 기타 액자나 족자 · 「카드」 등 미술품을 팔아 얻는 수익금으로 해결하는것.
직영사업체는 소명여중고 · 성가병원 · 유치원 · 여학생 기숙사 · 나자렛기술학원(양재 · 편물) 미망인 양재소와 그 「아파트」 농장이 포함된 양로원과 보육원이 있다 한다.
-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外國수녀원보다 더 좋은 어떤 점이 있을법 한데요? -
『그럼요,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니까 형제적이고 가족적인 관계가 더욱 원만할 뿐 아니라 성소보존에 강력한 힘을 줄 수 있죠』
사실 이것은 외국인과 섞여있는 수녀원 안에선 구하기 어려운 방인수녀원만의 장점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델리케이트」한 상황은 외국인에겐 어쩔 수 없는 限界 내지 거리감을 주게 마련. 기자는 다시 公議會 후에 특히 애쓰는 점에 대해 말머리를 돌려본다.
『특별히 시작한건 없구요, 다만 희생극기의 정신을 규칙이나 의무로만 여기던 그전 생각에서 탈피하여 그것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생활의 내용이 되도록 고취하는 것이죠.』 「神의 意志는 우리의 기쁨」이란 단떼의 싯귀가 얼핏 뇌리를 스친다.
- 그런데 참, 작년 성탄때 은경축을 맞았죠? 이렇게 커오는 동안 기쁘고 슬픈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겠어요? -
『6·25때 뿔뿔이 흩어져야 해서 가장 비통햇었고, 집이 좁아 지원자들을 못받았을때도 그랬어요. 가장 기뻤던 일은 지난 은경축때였죠. 손이 붓도록 자갈 · 벽돌을 나르던 이 집이 완성됐으니 그 애착과 기쁨과 대견함이란 이루말할 수도 없었어요.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모두가 「데오그라씨아스」를 합창했다니까요』 갓지난 감격이 되살아나는듯, 다소 흥분하여 눈을 빛내는 원장수녀와 김 수녀(前 수련장). 초기수녀들의 철저한 자기 卑下와 가난 · 노동이 그런 넘치는 강복의 강을 터뜨려 놓았다고.
- 얘기를 듣고나니 정말 멋진 어느 名作의 대단원을 읽은 듯한 후련한 느낌이 드는군요. -
밖을 나왔을땐 어느새 캄캄한밤. 시트에 깊숙히 몸을 던지고 明滅하는 네온들을 스쳐지나노라니, 마음좋은 시골아줌마처럼 소탈하고 큼직한 人品을 담고 있던 고 수녀님의 구수한 분위기와 전수녀원에 감돌던 그렇듯 정갈스럽고 고요한 열락의 숨기가 새삼울컥 그리워온다. (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