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식 參席記(참석기)] 敎皇(교황), 金(김) 대주교에게 황금성작도 전달
교황성하를 보고 금방 울어버린 부인들
「바티깐」궁에 메아리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0월 7일
「로마」의 하늘은 서울의 그것처럼 푸르기만 하다. 도착한 이래 오늘까지 구름 한점 없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침 8시에 있을 馬山 張 주교의 섬성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울바노」대학의 성당. 5백여명의 한국인이 들어가니까 더 이상 자리가 없다. 옛날 울바노 교황이 전세계의 낙제 신학생을 특별지도하기 위해 세웠다는 이 대학은 오늘날에는 포교지방의 수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다. 아가지아니안 포교성성장관의 주례로 성성식을 모두 마치고 일로 「바티깐」으로 향했다. 일행이 「바티깐」 동편 건물 5층에 도착한 것은 교황성하의 특별 알현이 약속된 12시20분 보다 한시간 40분이나 빠른 10시40분. 기도하는 사람, 옆사람과 소근거리는 부인들, 교황성하가 앉으실 중앙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의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 교황성하를 기다리는 마음들은 기대와 초조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이윽고 성당문이 열리면서 두분의 「바티깐」 고위성직자를 대동한 성하의 모습이 나타나자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다.
어떤 부인의 눈에는 금방 이슬이 맺힌다. 맨 앞줄 특별석에 자리잡은 김수환, 노기남, 장병화 주교와 로똘리 교황대사에게 악수를 나눈 성하는 이들과 함께 단위로 오르신다. 박수는 아직도 우뢰와 같다. 중앙에는 성하, 좌우로 한국의 세분 주교 및 「바티깐」의 세분 주교가 나란히 앉았다.
앉으라는 성하의 손짓에 따라 일동이 착석했다.
성하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대전교구 천안본당 백디오니시오 신부가 통역을 맡았다. 어제 오후 10만군중 앞에서 보이신 한국교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거듭 표하셨다. 당신의 애정에 대한 표시로 한국교회에 선물을 하나 하신다고 하면서 금빛 번쩍이는 커다란 성작하나를 金 대주교를 통해 전하신다. 당신의 애정을 보이시기 위해 특별 기념촬영을 허락하신다면서 한국의 주교님들을 일으켜 「포즈」를 취하신다.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성하께 선물을 드린다. 커다란 병풍을 받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병풍을 열고 다시 한번 기념촬영을 하시겠다는데에 이르러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南총삼의 후예 11명을 대표한 南공우 수녀님의 기념품 증정도 있었다. 유례없이 길고 유례없이 애정에 가득찬 알현이었다. 극동의 한국교회를 위한 성하의 따뜻한 마음을 모든 참석자는 확인했다. 기념 「메달」을 참석자전원에게 주신 것을 끝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드물게 길었던 1시간20분의 알현은 전원이 함께 부른 아리랑으로 끝났다. 「바티깐」에 메아리치는 아리랑. 교황 성하의 모습은 싱그러우시기만 해진다. 한번의 아리랑은 족하지 못했다. 다시 부르는 아리랑 아라리요…. 다시 조그만 성당이 떠나 갈듯한 박수를 받으시며 천천히 퇴장하시는 성하, 그 옷단만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손들이 허공을 맴돈다.
세분 「바티깐」 고위성직자는 경호원이 되어버렸다. 손, 손, 손. 그리고 아우성. 그들은 허공을 휘적이던 손들을 뒤로 젖힌다. 성하는 미소로써 이 광경을 목도하신다. 말리는 손을 만류하시면서 일일이 당신의 손을 허락 하신다.
이때 돌발사가 일어난다. 서울 흑석동에서 온 어느 부인이 감격에 넘쳐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신 성하께서 되돌아서셔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신다. 다시 터지는 환호. 성하의 발길은 이 부인에게서 떠나지를 못하신다. 가시면 길을 세번이나 되돌아서셔서 위로의 쓰다듬질을 하신다. 이 광경을 보면 눈들이 하나 둘 습기를 머금는다. 한 부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로 향한 애정의 심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1968년 10월 6일과 7일은 정녕 잊지 못할 한국교회의 날이었다. 『교황 성하만세 만세』 멀어지는 성하의 모습에 5백명의 한국신자들은 진정한 축원을 보냈다. (계속)
趙炳雨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