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6) 놀람 ②
발행일1969-02-02 [제654호, 4면]
부러운 표정대로 혜경이는 현주를 보았으나 현주의 입은 무거워 쉽게 열려지지 않았다.
『얼른… 어떻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혜경이가 독촉했다.
『어떻게냐구?』
『그래. 이거 안달이 나는구나』
현주는 새삼스럽게 결심이나 한듯이 몸과 마음을 가누어잡고
『펜팔이었어』
하고 입을 싹 다물어버렸다.
『뭐? 펜팔?』
혜경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현주를 보았다.
『그래』
『야 이거 재미있구나. 현주답지 않게 펜팔을 맺구 펜팔푸렌드와 데이트라니? 그게 처음 만나는거냐? 여러번째냐?』
무척 흥미있는 일이라는듯이 현주 앞에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꽤 흥미있는 모양이구나』
이젠 현주는 마음이 답답해짐을 깨달았다.
『흥미있지 않음…』
『그래? 그럼 내 얘길 하마. 학교때 미술반에서…』
현주는 아주 간추려 박훈씨와 펜팔이 되던 전후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거야』
『그래애?…어떤 사람이든?』
혜경이는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현주의 눈을 주시했다.
『어떤사람?』
『그래 키가커? 코는 어떻구?』
『호호호 얘는 너의 그이 코낮은게 무척 걸리는 모양이구나, 코가 무엇보다 우뚝해』
『예두. 몇살쯤 됐는데?』
『호호호 그게 글쎄 중년 신사란 말이야』
『뭐? 중년신사?』
『사십될까 말까 그런 나인데 머리가 벗어졌다 말이야』
『어머머. 사십의 중년에 대머리? 얘 너 조심해라 그런 수단으로 너를…』
『농락하려는 심뽀라는 말이지?』
『확실하지 뭐겠니?』
『나두 처음봤을땐 경계심이 생겼어』
『그랫는데 아니더라는 말이냐?』
『아직도 경계심이 그냥 남이 있긴해. 그러나 노상 그런것만도 아닌 구석이 없지 않았어』
혜경이는 입을 삐죽이면서
『얘가, 수단에 넘어간 모양이구나』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수단에 넘어가? 흥 어림두 없어』
『글쎄 그러다면 다행히지마는…』
배시시 웃고 혜경이는
『그래두 조심해라. 중년신사라는게 대체로 우롱한 동물이라는걸 명심해야 되는거야』
마치 산전수전 겪은 아낙네처럼 말했다.
『걱정마』
현주도 웃으면서 응수해주고 일어나려고 했다.
『왜 가려구?』
『너무 믖음 엄마 걱정하시지않아?』
『네 엄마 성미 안다마는…』
『또 올께』
『얘, 이삼일후에 너를 모시러 가겠어 그때두 거절함 안돼』
『함께 너의 오늘의 그이를 만나려구?』
『그래. 약속해줘야해』
『약속? 호호 그래. 가주지』
며칠이 지났으나 혜경이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 모시러 오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현주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안타갑거나 마음이 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현주는 혼자 영화구경을 갔다. C극장에서 개봉되고 있는 세계명작소설을 영화한 작품이었다.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다가 바리에서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보았다.
『이건.』
혜경이가 말쑥한 차림으로 명랑하게 웃으면서 이리로 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키가 크고 이마가 넓직하나 코가 낮다는 인상인 청년이 슬금슬금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온더다니, 아무 소식두 없구.』
현주는 약간 나무라는 투로 발음했다.
『그렇게 됐어. 그럴 사정이 있었어.』
하더니 혜경이는
『소개하겠어요. 늘 말하던 현주에요.』
뒤를 돌아보고 코낮을싸한 키큰 청년에게 말했다.
『그러세요?』
청년이 현주에게 허리를 굽혀 수인사를 했다.
현주는 혜경이의 소개가 없더라도 현주의 그이임을 대뜸 알고
『안녕하셨어요?』
마주 인사를 했다.
『한번 함께 차자 뵙는다 하면서도…』
청년은 혜경이 해야할 말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원 천만에요.』
현주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갔다.
『정말, 거의 날마다 얘기했어. 너의 집에 가야한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혜경이의 얼굴에 황홀하다고 할까 행복하다고 할, 그런 것이 함빡 떠돌고 있는걸 현주는 놓지지 않고 보았다. 둘은 구경이 끝나고 나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곧 시작할겁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역시 혜경이 대신에 청년이 말했다. 퍽으나 친절한 성격임이 들어나고 있었다.
『그럼 쉬한번 꼭찾아 갈께.』
혜경이 마랗고 나가다가 되돌아와 홀안으로 들어가는 현주를 불러세우고
『얘, 일주일쯤 후에 약혼식 하기로 했다. 다시 연락하겠지마는 그땐 꼭 친구대표로 나와 줘야해.』
그리고는 바람을 일으키면서 벌써 극장밖에 나가섰는 청년에게 가버리고 말았다.
현주는 혜경이의 행복에 겨워있는 모습과 표정과 말에 오히려 어리둥절하면서 명작소설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위에 편지 한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 박훈이 보낸 것이었다.
현주는 번에 없이 가슴이 설레짐을 깨달으면서 봉을 뜯고 알맹이를 끄집어내 읽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