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모든 것을 오로지 천주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를 뿐이다.
그 정하신 바가 도리에 부합되고 그 정하신 뜻에 감명하는 신자로서는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을 덕행으로 믿어왔으니 다시 더할 말은 없다.
그러나 天主敎信者의 집에서도 私私로운 禮節은 역시 一般에 따르게 된다. 그래서 婚姻이나 葬禮가 있을 때마다 다 世俗을 따르는 일이 있다. 이럴 때마다 역시 망서린다. 옛法은 허물어져 가는데 새法은 미처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모두가 갈팡질팡이다. 구식대로 하자하니 모르기도 하거니와 준비가 힘들다. 그렇다고 신식은 제정된바가 없으니, 도무지 어째야 좋을지 망서리게 된다. 우리는 解放以後 오늘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말하자면 좀 창피한 일이다. 관혼상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숭상해야할 것이고 소위 東方禮義之國이라고 존경을 받던 일을 생각하면 낯이 붉어진다. 天主敎에서 問題가되는 점은 結婚에 있어서는 約婚式과 幣帛이며 葬禮에 있어서는 喪服일성 싶다.
첫째 약혼식은 반드시 할 것은 아니다. 兩家의 어른들이 만나서 合意를 보고 當者들이 찬동을 하면 그것으로 約婚은 이미된 것이다.
約婚式을 結婚式 못지않게 차리는 것은 結婚式을 無色하게 하는 弊端이될가 걱정이 될 지경이다.
게다가 約婚반지에 結婚반지를 거듭 끼워주게 되니 그러면 約婚반지는 假契約證이요, 結婚반지는 正式契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正式契約이 끝나면 假契約은 休紙化되는 法인데 約婚반지는 어떻게 處置하여야 될지 아리숭해 진다. 우리는 于先 그 約婚式부터 整理를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葬禮式에 있어서는 喪服이 問題다. 그런 옷을 왜 입어야 하는지 까닭도 모르고 입는 喪服이라면 너무나 서글프다. 게다가 입을 줄을 몰라서 입고나선 꼴이 말이 아니다. 門中에 老人이 계시면 多幸한 일이지만 젊은이들이 그런 것을 알리가 없다. 게다가 喪服은 집에서 몸에 맞게 지은 것이 아니다. 葬儀社에서 莫내온 것이니 그것이 몸에 맞을 리가 없다. 이것은 분명 喜劇이다. 게다가 服쟁이(近親)들은 행전(行전)에 포건만 쓰는데 洋服바지에다가 行절을 치고 나선모양은 정말 딱해 보인다. 新舊合作인지 古今折衷인지 진정 눈꼴사납다. 왜 이렇게 차리고 나서야 하는가? 여기서 새로운 儀節의 公式的인 制定이 要望되는 것이다. 절(拜)만해도 그렇다. 舊習을 지키려면 옳게 지키고 잘 모르거든 배워서 옳게 하는 것이 當然 하련만 形形色色이다.
우리의 先人들은 禮로써 國是를 삼고 無禮한 者에게는 刑罰을 加하기도 했다. 그분들이 요사이 어지러운 꼬락서니를 보면 아마 氣絶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르는 일, 行하기 힘드는 일을 억지로 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朴正熙 大統領도 아마 보다보다 하도 딱해서 婚·喪·祭祀의 簡素化를 提唱하신것 같으나 내 생각으로는 簡素化하기에 앞서서 그간 우리가 行해온 가지各色의 混亂된 禮節을 一端數理하고 나서 그 다음 할 일이 簡素化이라야 할 것 같다. 잘라 말하면 舊習을 놓고 그것을 簡素하느냐 새法을 制定함에 있어 簡素하게 꾸미느냐가 先行되어야 한다고 본다.
李瑞求(劇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