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冠婚喪祭(관혼상제) 어떻게 간소화 할 것인가 - 各(각) 宗派(종파)의 입장에서 본 의견] 기독교
制約(제약) 以前(이전)에 思考方式(사고방식) 改造(개조)
儀禮(의례) 簡素化(간소화)로 人間價値(인간가치) 저하 안 되도록
정부는 가정의례를 간소화 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위원회를 만들고 시안을 기초한다고 한다. 우선 이러한 운동을 과거의 진부한 허세허식을 일소시키고 현재는 거의 사치성에 흐르고 있는 관혼상제 등 의식절차를 제약하고 절제시키자는 의미로는 합당하게 이해된다.
특히 최근에는 권력기관이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극히 개인적인 혼례나 상례에 있어서 그것을 하나의 사회화하려고 선전하고 광고하여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화환소동은 큰 낭비이며 그런 의식을 빙자하여 변태적인 뇌물까지 증수회된다는 풍설이 사실화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어떤 간소한 규범을 제정하여 지도적인 시정을 꾀하려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와 사회적 부작용은 그러한 제약수단으로써만 제거되지 아니한다. 결국 그것은 국민의 사고방식이 문제요, 그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는 근본적 작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고방식의 형성은 두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본질적 이해로서 인륜의 가장 엄숙한 의례에 대한 종교적 의미요, 또 하나는 인간의 사회적 상호관계에서 작용되는 현실적용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관혼제 등의 의례는 그것이 곧 인간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이기에 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 인간가치가 소멸 된다. 지금까지 의례에 있어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오직 공산주의자들만이 일부러 감행했다. 그러나 오늘날 소련 안에 5천만의 정교회교도를 헤아리고 있다는 사실은 벌써 거의 모든 관혼상제 등은 교회적의식에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부가 시도하는 의례절차가 얼마나 인간의 깊은 종교적 의미로서 표현될는지 또 그렇지 아니한 것이라면 얼마나 국민의 생활에 적용되는지 많은 의심을 가진다. 벌써 우리나라의 대부분은 어떠한 형태의 종교라도 가지고 있으며 사실에 있어서 무종교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의례는 각기 그 기성종교단체들이 인간의 본질적 의미를 충분히 부각시키면서도 가장 근대화된 합리적 의식을 가져서 민중의 선도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경우에서 보면 지금까지 신교는 너무도 의식무시의 경향으로 흘렀으며 가톨릭교회의 경우 너무도 현실소외의 의례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체 기독교계에서 의례의 개혁운동이 줄기차게 일고 있으며 원리적인 면에서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본래 교회의 성예전이란 그 어원이 생활의 규범이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에 가장 중대한 행사의 종교적 의미를 부각하는 상징적 표현이 의식이다. 교회가 좀 더 일찌기 교회의 모든 의례를 교회 의례만의 의례로서가 아니라 전체국민의 의례로서 자기 체질을 개혁하고 선도적 사명을 다하였으면 제절로 전체국민이 그 길을 뒤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천국백성이고 비신자는 물론 심지어 타교파마저도 지옥백성으로 보는 우리나라 교회의 보수주의, 독선주의, 타계주의적, 반복음적 신앙형태가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세계 안에서 제사장이된 사명이 있음을 잊었던 것이다.
나는 국가가 제정하려고 하는 의례가 제2경제운동의 일환으로 생긴 것이라고 보이나 그것이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혹시 성공한다고 한다면 결국 인간가치의 저하만 결과할 것이다. 나는 이 기회에 교회는 이 국민들의 인간된 그 본질을 표현하는,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행위를 종교 신앙에 결연되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의 의례가 전체국민의 의례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개혁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조항록(서울 草洞敎會 牧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