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인」 위에 「가톨릭」이란 빈사(賓辭)가 붙었을 때, 그의 책임을 특정지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톨릭인으로서 가지는 신앙이다. 즉 가톨릭신문인이라면 건전한 언론의 창달을 위한 자신이 모든 활동이 신앙의 정신으로 지배되도록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대화의 방법이 필요한 것으로 되었다.
그래서 보다 넓고 보다 자유로운 대화의 광장이 마련돼 가고 있고, 여기에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이 신문이다. 가톨릭신문인의 책임을 말하려 함에 있어서 특히 「대화」를 끄집어 낸 것은 이것이 우리교회 안에서는 지난번 공의회 이후로 교회쇄신의 뚜렷한 한가지 방법으로 새롭게 나타난 것이요, 이에 따르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보기 때문이요, 또 가톨릭 신문인의 책임을 특히 이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에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화는 집단적 사고의 방식이라고 하겠다. 즉 어떤 보편적 진리 또는 어떤 구체적 판단을 생각해내려는 집단적 사고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릇 진리의 탐구는, 다만 대화만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은 먼저 각 사람의 자주적인 연구와 그리고 교육과 전달의 방법으로써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오늘날 교회내에서 그처럼 필요한 것으로 요구되는 대화가, 오히려 권위의 붕괴와 또는 신앙의 약화와 교회내의 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이러한 위험은 진리의 탐구와 보다 나은 계획을 위해서 대화의 역할을 지나치게 떠받들고, 또는 대하에 임하는 책임감 보다도 거기에서 누리는 자유의 쾌감만으로 만족하고 교만하게까지 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자신의 연구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의 대화교육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대화 현실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화 더구나 책임가 결핍한 사람들의 대화는 건설과 발전을 위해 덕이되지 못하고 오히려 회의와 실망과 분열과 파괴를 초래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의 쇄신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가톨릭신문인은 무엇보다도 건전한 대화의 바탕이 될만한 것을 풍부히 제공해 주며 자유롭지만 또한 책임있는 대화를 촉진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의 교권이 너무나 전제적이었고 신자들이 지나치게 굴종적이었다면 이제 천주의 백성안에 원만한 대화를 붇돋우기 위해서 교원에 대해 어느정도 지나친 비판도 좀 더 너그럽게 봐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교도권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잃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유기성을 파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신문인은 신앙의 정신에 투철하여 천주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누림과 아울러 진리와 사랑으로써 모든 사랑을 한 백성으로 모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자기가 받은 재능으로써 이바지하여야 할 책임을 항상 절가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내용은 깊이 연구하여 천주의 계시에 대한 바른 해석을 식별하는 표준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해야할 것이요, 그리하여 보다 계몽적이고 건설적인 기사를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무분별한 취미만을 자극하거나 만의 일이라도 인기주의나 상혼(商魂)에 유혹되어, 「센세이쇼날」하고 선동적인 기사를 쓰거나 취급함다면 그것은 너무나 한탄스러운 타락이 될 것이다.
또 보도에 있어서도 언제나 사실을 성의껏 알아보고 그것을 진실하고 공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일반 모든 신문인의 양심의 문제일 것이다.
교회내에는 오늘날 무슨 보도관제가 어격하다고 하기보다도, 공보활동을 위한 훈련이 부족해서 충분한 보도 거리를 주지 못하는 수가 많다. 더구나 신문보도가 너무나 추측과 선입견에 의해서 사실을 왜곡해서 전하는 것을 가끔 볼때에는 알려 주고 싶은 보도까지도 내놓기를 꺼려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언론인들은 『언저 전달될 사건들의 내용을 각 「매스 미디어」의 특수성을 따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전달에 수반하는 모든 환경, 즉 목적, 인물, 장소, 때 등을 참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전달의 윤리성을 변경시킬 수도 있고 아주 새로운 윤리성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 5)
요새는 교회내에서도 알 권리에 대해서 많이 말한다. 알 건리는 보도의 권리가 따른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보도의 내용은 언제나 진실해야 하며 또 정의와 사랑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보도의 방법에 있어서도 윤리적이어야 하며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즉 「뉴스」의 취재나 전달에 있어서 윤리 법칙과 각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특히 교회의 교도권에 대한 존경이 철저해야 한다.
『모든 지식이 다 유식한 것은 아니고 오직 건설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상 6참조)
尹恭熙 主敎(한국 주교회의 의장 · 수원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