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5)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㉑
발행일1968-11-03 [제642호, 4면]
청년이 테불을 갑자기 탕치고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윤 사장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벌렁 자빠질뻔 했다. 마침 차를 들고 오던 레지도 눈이 휘둥그래 져서 저 만큼 멈춰 섰다.
『청년, 아마 무엇을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야기를 차근차근듣고 나서 무슨 일이든지 행동을 해야지 그렇게 성급하게 굴어서는 못쓰는 법야.』
윤 사장은 조금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어서 청년을 점잖게 타일렀다. 청년은 테불 옆에 우뚝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대체 오해는 다 무엇입니까. 나이어린 처녀를 늙은이가 주책없이 뒤를 줄줄 따라 다니면서 오해라고 하면 누가 곧이들을 줄 아십니까.』
『허허. 그건 청년이 일의 진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야. 그래 누님한테서 참말로 그렇게 아무 소리도 못들었단 말인가?』
『못들었읍니다. 윤 사장인가 하는 늙은이가 주책없이 자꾸만 따라 다녀서 난처하다는 말만들었지요. 그 이상 들을게 무엇이 또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공연히 이 이상 더 길게 끌다가 점잖으신 체면에 망신하시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십시오.』
청년은 입가에 조소하는 빛이 완연하였다.
『자리에 좀 청년, 어쨌든 자리에 좀 앉으라구. 차를 가져왔으니 그거나 우선 마셔야 할게 아닌가. 레지, 차 여기 갖다가 놓아요.』
『네.』
레지는 조금 겁이 나고 근심스러운 눈치였으나 그런대로 가져온 차를 테불에 놓았다. 다방에는 몇패 앉았던 손님들이 나가고 마침 한가로웠다.
『청년, 그러지 말고 어서 여기 와서 잠시 앉으라구. 내가 그러지 않아도 물어볼 일도 있고 하니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고 이리로 좀 앉으란 말야.』
윤 사장은 간곡하게 청년을 달래었다.
그것은 달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그만큼 말씀을 드려도 제 말을 못 알아 들으시겠읍니까?』
청년은 저 만큼 물러섰다가 다시 테불 앞으로 큼성성큼 다가 왔다.
『알아 듣고 못 알아 듣고가 있나. 청년은 지금 전혀 얼토당토 않은 딴청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을 앉아서 자세히 들어야 할게 아닌가.』
『아니, 그럼 선생님이 우리 누님의 뒤를 줄줄따라 다니지 않았단 말입니까?』
청년은 다시 노기에 차서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야 따라 다닌건 사실이지. 현재도 그 처녀를 기다리고 여기 앉아 있으니까….』
윤 사장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 봉변을 하고 있건만 그는 조금도 불쾌한 마음이나 괘심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청년의 사나이 다운 씩씩한 모습이 마음에 든든하고 대견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청년의 마음은 딴판이었다. 화를 내도 도무지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입가에 침착한 미소를 짓는 윤 사장이 얄밉기 짝이 없었다. 화가 치미는 대로 하면 그대로 테불을 뒤집어 엎어버리고라도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벌이나 되는 노인에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울분을 겨우 참으며 두 주먹을 부르쥐고 윤 사장의 입가에 가볍게 떠오른 미소를 노려보았다.
『그래 어째서 나이 젊은 처녀를 짓궂게 따라 다니고 나중에는 집까지 찾아와서 불러내는 거죠?』
『글쎄 거기에는 깊은 이유가 있단 말이지. 설마하니 내가 청년의 누이를 탐을 내서 그럴 것 같은가.』
『말은 좋구먼요. 이유가 무슨 이유란 말이어요. 있으면 말해 보아요.』
청년은 윤 사장에게 가까이 대어 들었다.
『그런 깊은 이유를 이렇게 거치른 분위기에서 이야기 하라는 건 너무 무리가 아닌가. 내가 그러지 않아도 청년에게 꼭 할말이 있으니까 이리로 앉아서 우선 차를 마셔요.』
윤 사장은 어린애를 달래듯이 맞은 편 의자를 가리키었다.
「싫어요. 이 이상 더 들을 말도 없고 더할 말도 없어요. 우리 누님은 아직 나이도 젊을 뿐 아나라 윤 사장님 처럼 그렇게 한가한 처지도 아니어요. 그러니까 이대로 돌아가서 다시는 못견디게 굴지 말도록 하세요. 이건 그래도 윤 사장님을 대접해서 이만큼 해두는 거니까 그쯤 아세요. 앞으로 만일 우리 누님을 더 괴롭힌다며는 그때는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줄 아세요.』
청년은 말을 마치자 눈을 한번 부릅떠서 윤 사장을 사납게 흘겨보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청년. 청년 잠간만…』
윤 사장이 허둥지둥 청년을 불렀다. 그리고는 청년이 댓구를 안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가서 옷깃을 붙들었다.
『청년, 제발 여기와 앉아서 내 말을 들으라구. 내말을 들으면 금세오해가 풀리고 모든 것을 자세히 알게 될 거니까…』
청년의 옷깃을 잡은 윤 사장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었다.
『놓세요. 나는 이 이상 더 들을 말도 없고 할 말도 없다고 그랬지 않아요.』
『아냐, 청년. 이 늙은 사람의 낯을 보아서 내말을 잠시만 들어 달라구. 이렇게 헤어지면 나는 다시는 어떻게 또 정아를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제발 내 말을 좀…….』
윤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은 몸을 사납게 뿌리치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 서슬에 윤 사장은
『!』
하고 뒤로 쓰러져버리었다.
『어머니나! 이게 웬일야.』
레지가 달려 왔다. 청년도 정신 모르고 뿌리치기는 했으나 윤 사장의 쓰러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서 주춤하고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일어나세요. 어디 다치지나 않으셨나요?』
레지가 일으켰으나 윤 사장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