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실]
발행일1969-02-09 [제655호, 2면]
<承前>
둘째문제 역시 어려운 문제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성경중 어떤 말씀은 일반인들은 물론 신학자나 성경학자들도 잘 이해할 수 없어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것을 베드로 사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그 서간에는 가끔 깨닫기 어려운 곳이 있어 배우지 못하고, 견고하게 되지 못한 자들은 다른 성서를 곡해(曲解)함과 같이 이를 또한 곡해하여 스스로 멸망함에 이르나니라』(베드로후서 3 · 16) 이렇게 성경해석이 극히 어렵다는 것과 그릇된 해석을 하면 구령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멸망을 초래한다는 경고를 하셨다.
또 『너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의 예언은 그 어떠한 것이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니라』(베드로후서 1 · 20) 말씀함으로써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자기나 자기가 믿는 교파에 유리하도록 성경해석을 자기마음대로 하는 것을 경고하셨고 장차 그렇게 할 프로테스탄트들을 미리 예언 경고하신 것이다.
말띤 루터가 『비천한 村婦도 三尺童子도 성경해석을 쉽게 할 수 있다』고 豪言壯談했으나 그의 의견을 따른 결과는 無數한 프로테스탄트 敎派가 새로 생기고 많은 이단파(異端派)가 일어났으며 결국 1525년 성경 個人 해석 및 자유해석으로 인해 종교적 무정부상태가 약기(躍起)되자 그는 통탄하기를 『이제 사람의 머리 수대로 종파(宗派)나 신조(信條) 수가 많어졌으며 이사람은 세례(洗禮)를 거부하며 저 사람은 성사(聖事)를 부정한다. 또 다른 사람은 이세상과 저세상(천당) 사이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주장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한다. 참으로 처참하고 가련한 甲論乙駁이다.
『모두 스스로 꿈꾸고 空想한 것을 聖神의 感導하심으로 인해 된 것이라고 妄想하는 野卑한 시골놈들이다』 이렇게 말했다. 셋째 ㉢문제 역시 프로테스탄트 敎派들의 주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 즉 성경이 모든 신조(信條)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앞에 미리 말하였지만 가령 프로테스탄트 敎派가 성경을 믿음의 唯一한 지침이요 규범이라고 주장하는 자체도 성경이 성신의 감도하심으로 인해 기록된 책이라는 「성신의 감도성」이 인정 됨으로 비로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신의 감도성」 자체에 대해 성경은 전혀 말이 없다. 이것은 오로지 성전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면 프로테스탄트敎派들은 『日曜日을 主日로 거룩히 지내자』하고 신조중 신조로 많이 역설한다. 主日을 거룩히 지낸다는 것은 가톨릭敎會도 同感이나 성경에 지금의 日曜日을 聖스러운 주일로 또 日曜日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는 義務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경만이 신앙의 唯一한 지침이요 규범이 될 수가 없다.
지금의 日曜日을 主日로 定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 日曜日이요 또 천주성신이 강림하신 날이 바로 지금의 日曜日이었기 때문에 부활과 성신강림을 기념하기 위해 사도전래(使徒傳來)의 敎會(가톨릭敎會)가 日曜日을 主日로 定했을 뿐이다.
上記한 문제들을 더 자세한 理解와 說明을 듣기를 願하는 讀者에게 尹亨重 神父 著 詳解天主敎要理 上卷 五三 · 五四 兩 페이지를 읽기를 권해둔다.
3, 성전의 신빙성(信憑性)
교회가 언제나 가르치는 진리를 계시(啓示)된 진리임을 우리가 확신(確信)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조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있을뿐 아니라 교회는 그가 가르치고 지도하는 신앙진리와 윤리도덕(倫理道德)에 대해 그르칠 수도 없고 불변임을 확신할 수 있다.
A, 앞에서 이미 말한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오직 설교함으로 백성들을 가르쳤다. 또 『너희는 보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르꼬 16·15)하시면서 당신 사도들과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때 그들 손에 성경을 들려보내시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라 하시면서 파견하셨다.
역시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첫성경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리스도 사후 10년경이요 다른 성경들은 훨씬 그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교회초기는 오늘과 같이 73권의 성경들이 한권의 책으로 교회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B, 우리는 성전에 대해 이해하기가 곤란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가령 국가간에 국제적인 큰 문제가 생기면 예컨대 지금 빠리에서 개최되고 있는 월남 미국 월맹간의 빠리 協商은 삼자간의 공식서한(公式書翰)을 통해 協商을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고 각국은 직접 특사(特使)를 파견해서 진행하고 있다. 이유는 서한을 보내는 것보다 특사를 직접 파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는 여러가지 들 수 있다. 가령 어떤 대학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학교 교풍이나 전통이 그 학교문서철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선배로부터 후배학생들에게 내려가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줄타기놀이는 수십년 수백년간 전해지고 있다. 또 우리에게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부터 400년 이전 임진왜란때부터 유래했다는 「강강수월래」같은 춤은 해마다 8월 보름이 오면 특히 저라도 지방에서 아낙네들이 단체로 즐겨추는 춤이며 우리나라 미풍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책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까지 전해왔다는 것이 아니고 이사람에게서 저사람에게, 선조때부터 후손에게 구전으로 전해온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