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출판물보급주일을 기해 본보 애독자인 김영조(요한 · 53 · 세종로본당)씨를 찾으며 지난 1월 31일 시청앞 거리를 진눈깨비 맞으며 걸었다.
세종로 본당 본보 책임자의 소개로 찾아간 곳은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상무이사실, 바깥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스팀」 기운이 훈훈한 집무실이었다.
찾아온 뜻을 밝히자 김 상무는 『어휴! 별 말씀을… 내가 무슨 애독자가 될 수 있나요. 누가 그럽디까?』 허식없는 소탈한 인품에서 열심한 신앙도를 대뜸 할 수 있었다.
- 언제부터 구독하셨읍니까? - 이말에 말없이 일어선 그는 「코트 포켓」에서 수첩을 찾아 뒤적이더니 『글쎄 55년도에 후암동에서 세종로로 갔으니 14년째인가요. 시보뿐 아니라 경향잡지, 가톨릭청년, 가톨릭소년지 등을 모두 구독합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후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훑어보는 정도지요. 애독자라면 정독을 해야 할텐데 -. 부끄럽습니다.』
3대 신자 집안에서 종교교육을 몸에 배게 받은 김 상무는 현재 세종로본당 운영이사를 겸한 7남매의 가장이다.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 신자들은 교회출판물에 너무 인색합니다. 소설 · 대중잡지 등은 여러종 보면서도 교회 간행물에만은 인색하니, 이러구서야 어디 신자라고 하겠어요?』 기자에게 꾸짖듯 반문하는 김 상무의 말은 기자가 하고 싶었던 지당한 얘기였다.
『택시 한번 안타고, 커피 한잔, 담배 한갑만 절약하면 될 것을-.』 안타깝고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창밖 눈오는 거리를 응시하더니 가지가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쑥스러운듯, 손을 내젓는다.
- 가톨릭시보의 발전을 위해, 느낀 점이나 비평을 좀 해주시면 -.
『뭐 신문엔 백지고, 더구나 비평이라니 생각조차 못합니다. 다 좋겠죠.』
퍽 신중한 태도와는 달리, 내친김에 뼈있는 말을 던진다. 『먼저 사목중심의 글과 시골 혹은 도서지방의 격리된 본당 소식들을 실어 그들로 하여금 소외된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해야 될것 같군요. 독자가 서울이나 도시에만 있답디까? 그들도 모두 애독자 아니겠어요? 뉴스의 전달보다 사목적인 점을 강조해야 된다고 봅니다.』
- 어느 면(面)을 즐겨 읽으십니까?
『우선 3면을 들춰보고 특히 화제꺼리를 흐뭇하게 읽습니다. 「바티깐」 소식도 보긴 하지만 제가 뭐-』
- 말이 좀 빗나가는 것 같습니다만, 예를 들어, 구독을 막는 사제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읍니까?
『그럴수도 없겠고 또 그런 분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라도 혹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큰 문제겠죠. 신자의 눈 · 귀 · 입은 신자의 것이지 사제의 것이 아니잖아요. 혹 교의에 어긋난 저속한 간행물이라면 모르겠지만, 교회가 인정하고, 교회가 설립한 기관에서 내는 간행물에 있어서야-.』 (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