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情萬理(여정만리)] ① 聖地(성지) 이스라엘의 오늘
救世主(구세주) 待望(대망)에의 집념 여전한데
예수성탄 성당들어서자 희열에 차고
발행일1968-11-10 [제643호, 4면]
이글은 지난 10월 6일 병인순교자 복식에 참석차 「로마」로 떠났던 詩人 金南祚 女史의 구라파 巡廻記입니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 文學晋씨의 삽화를 곁들여 女流詩人의 多感風雅한 異國情趣를 싣기로 합니다.(편집자)
「로마」를 떠나 세시간만에 이스라엘에 닿을 수가 있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니 심해의 물빛깔인 이곳 옛 성지의 야경은 수천 수만의 등불이 금빛의 수실을 꽂아 박은 듯 현요하여 마치 하나의 거대한 보석함 같이 보였다.
현지시간으로 8시30분이라고 말해 주었고 「로마」와는 한시간의 시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짐을 한꺼번에 다 싣고 보니 그 중량이 과했던지 세대로 분승한 이스라엘의 밤 「버스」는 한없이 느리어 한시간반의 거리라는 구「예루살렘」의 고풍한 「호텔」까지 다달으고 보니 거의 자정이나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리스도의 성적이 담겨있는 구 「예루살렘」은 바로 작년에 아랍·애급·율단의 세 나라를 불과 엿새 동안에 무찔러 전승한 이른바 육일전쟁의 값진 승리품으로 「예루살렘」이 탈환된 후 겨우 우방민족에게 여로가 열린 것이라니 요행으로 우리 순례단은 이곳을 찾아 남김없는 배례를 할 수가 있었던 셈이다.
아침에 보는 「예루살렘」은 그러나 피폐한 돌산이요 살벌한 아랍 토착인들의 법없는(?) 천지 그것이라 여겨졌다. 물이없는 땅, 그건 곧 죽은 땅이나 같았다.
천리 사방에 물줄기라곤 뿜어나지 않는 불모의 사토(砂土)! 그래서 저들은 지하수를 찾아 땅속 35「미터」까지 파고 2「미터」 폭의 철관을 묻어 천리까지 물을 공급한다는 것이었고 이 비길바 없는 지하의 생명수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배치하고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선 중포장에 속으로 겹겹이 「비닐」을 씌워 철저를 기한다고 들었다.
아랍인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스라엘 민족자체가 국교로서 유대교를 신봉하고 심지어 대학의 강의도 구약시대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통례로 쓴다는 정도이다.
저들은 성서도 구약만을 읽으며 아직도 구세주 이전의 그 목마른 대망을 가슴 가득히 채우고 있다고 알고는 그들 나름의 아류의 집념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은 공학이요 병역도 남녀에게 모두 부과된다고 한다. 다만 남자가 3년인데 비해 여자 6인의 복무기한은 1년 6개월인 점이 다를 뿐이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해있으면서 사고의 방정식(方程式)은 대체로 유럽풍이며 심지어 사회주의적인 풍습도 적지 않다는 것이니 예컨대 저들이 자랑삼는 대규모의 농장기업에 있어서도 민주적체제의 것이 있는 반면에 개인의 수당이 전혀 무시되는 무보수주의 근로제공 형식의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유대교도인지라 토요일은 모든 업이 중단되고 도시는 마치 자고 있거나 죽어있는 상태로 된다.
그 대신 일요일엔 학교도 병원도 은행도 관청도 모두 열린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일행의 눈엔 어색하고 낯설어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지만.
「예루살렘」에서 첫밤을 보낸 우리 순례단은 아침에 우선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성당을 찾았다. 여기도 큰 회당안에 세가지 종교가 세가지 교리와 세가지의 종교양식을 병립시키고 있는 곳이어서 처음엔 감개가 기이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톨릭 외에도 희랍정교와 아메인교라는게 그곳 한울타리 안에 있었긴 했지만 천정에 황금별 모양을 수없이 박고 제단정면 높은 곳엔 눈도 부신은빛 「파이프 올갠」을 볼 수 있는 아기예수 성탄의 기념성당으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땐 우리들 모든이의 얼굴에서 희열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로마」의 여러 대성당에 비해선 훨씬 소박한 소당이긴 하지만 천주의 성탄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신 일을 생각하면 더 없이 숙연한 감동이 전신을 줄달음 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