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年 내가 아내와 더불어 羅城에 2개월쯤 체류한 적이 있었다. 때마침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作 엘리어 카잔 監督인 映畵 「애기人形」(BABY DOLL)이 上映되었다. 故 張勉 博士의 아드님인 張克 博士가 우리가 묵고있던 호텔 가까이에서 新婚의 보금자리를 이루고 계셨기에 같이 구경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거절 當하고 말았다. 理由인즉 聖堂에서 「애기人形」의 觀覽을 삼가라는 주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내외는 信者는 아니었지만 張克 博士의 말씀을 듣고 다시한번 테네시 윌리암스를 注目했다.
영화 「애기人形」뿐이 아니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作品들은 대부분이 가톨릭敎理로서는 수긍치 못할 点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가톨릭에 入校해서 지금 世界의 耳目을 모으게 되었다.
「아이오와」(IOWA)州立大學을 나온 윌리암스의 첫 戱曲은 「天使들의 싸움」(BAYYLE OF ANGELS)이었지만 그 作品은 성공치 못했고, 그의 文名을 世上에 넓힌 作品은 그 다음인 「유리動物園」(GLADD MENAGERIE) 1945年 作이였다. 그후 그는 1947年에 「慾望이란 이름의 電車」(STREET CAR NAMEDDESIRE) 1948年에 「여름과 연기」(SUMMER AND SMOKE) 1951年에 「장미의 紋身」(ROSE TATTOO) 1955年에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1962年에 「도마뱀의 밤」)THE NIGHR OF THE IGUANA) 等 世界的인 名聲을 누린 戱曲들을 連打하여 美本國은 勿論 世界 各國의 上演目錄을 빛나게 했다. 美國의 世界的 新進劇作家 아더 밀러(ARTHUR MILLER)의 뒤를 이어 혜성과 같은 存在로 추앙받게된 것도 이때였다. 내 기억에 틀림없다면 그의 作品으로 우리나라 舞臺에 소개된 것은 「慾望이란 이름의 電車」 「유리動物園」 그리고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밖에 없지만 이 모두가 韓國極壇에 새로운 問題点을 제시했었음은 事實이다.
1955年에 「욕망이란 이름의 電車」를 演出한 바 있는 나는 그 익년인 1956年에 渡美할 기회가 있었기에 美國에 간 김에 윌리암스를 한번 만나보려 한 일이 있었다. 「뉴욕」의 한 演劇人들은 지금 그의 人氣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어 도저히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내게 忠告해주었다.
그는 그때 作品을 쓰러 歐羅巴에 여행중이었다. 나는 그와의 面談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즐겨 官能的이요 病的인 「性」 문제를 다루었으며 추잡한 쌍소리와 욕설로서 그의 作品의 매력을 누렸었다. 그것들이 그의 作品世界이기도 했고 戱曲의 特徵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今年正月初에 「훌로리다」州 「키 웨스트」에 있는 自己집 近處인 「씨 처취」의 「聖 메리 스타」에서 가톨릭敎에 入校했다. 윌리암스는 入校의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착한 面을 되찾고 싶었다.』 (I WANTED MY GOODNEDD BACK)라고.
요즘 外信의 報道에는 美州뿐이 아니라 歐羅巴까지도 日常生活에 性(SEX)이 너무나 노골화되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裸體가 興行界는 물론이요 학구적인 大學의 舞臺에도 등장하고 있고 공공연히 큰길에까지 闊步하게 되어 테네시 윌리암스가 作品에서 追求했던 官能의 世界는 벌써 日常化되고 상식化 되어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現實은 어느새 윌리암스를 멀리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即 윌리암스는 그가 즐겨 그리던 官能의 世界에서 발을 씻지 않으면 그의 설 자리를 찾을 수 없게끔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肉의 世界에서 그의 反對편인 靈的인 面에 눈을 돌려 거기에서 人生의 참을 찾으려 함이 아닌가? 人生의 심오한 問題는 肉에서 보다 靈에서 - 「겉」에서 보다 「안」에서 - 찾아야 함을 그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고 하겠고 그러자면 가톨릭에 歸依하는 수 밖에 없음을 그가 깨달은 것이다.
어려서 「호텔 보이」로 映畵館 심부름군으로 靴工으로 자라온 今年47歲인 테네시 윌리암스는 본시 新敎의 하나인 英國 聖公會敎徒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外할아버지는 그 敎派의 신부였다. 윌리암스는 지금 天主께서 自己를 가톨릭으로 인도해주셨다고 믿고있으며 쉬 「로마」로 가서 直接 敎皇을 뵙고 個人的인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外信이다. 그의 다음 作品을 기다리고 있는 이는 나 한 사람뿐이 아닐 것이다.
유치진(劇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