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기에 접어든 「빠리」의 한 「TV뉴스·캬스타」(이브·몽땅)가 「횃숀·모델」로서 「빠리」에 체류 중인 21세의 미국처녀(캰디스)와 바람을 피우다가 다시 그의 아내(안니지랄드)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퍽 단순하긴 하지만 클로드·를르슈의 감독인 이번 작품이 묘한 화면의 변화있는 편집 특히 때때로 무성(無聲)의 대화로 흘러가는 장면을 삽입한다든가 하면서 독특한 「템포」와 색조를 통하여 엮어나가는 기술이 무언가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거기에다 프란시스레이의 고유한 음악으로 「뉴앙스」가 잡혀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오락품이 될 만하다.
젊고 활기에 찬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며 목적에 돌진하는 미국처녀의 성격도 또는 기질같은 것도 잘 파헤쳐져있으며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프랑스 여인의 정숙하고 노련한 품격도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어쩐지 순진하면서 철모르는 미국의 처녀가, 능글맞고 능숙한 프랑스의 어른에게 희생이 된다는 점이 이국(異國)사람의 눈으로는 잠간 거슬려 보이게 하는 무엇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그런 것이 흥미있는 점이 될지도 모르나 그것은 흔히 어떤 정신분석가들에게 의해서도 지적되는 바와 같이 프랑스인들의 무의식적 우월감에 기인하는 「매스·노이로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연애 「섹스」등의 문제를 사 색케하는 작품처럼 관중을 이끌기도 하지만 그 실은 영화를 다 보고난 다음 무언가 변천하는 현대사회 또는 「나치스」 때문에 일어난 제2차대전 이후 아프리카의 정세변동 오늘날의 월남사태 등등 위기의식에 쌓여있는 세계정세 가운데 늙어가는 기성세대와 새로 싹트는 젊은 세대와의 사이에 분명히 가로놓여있는 어떤 정신적 알력 같은 것에 대해서도 잠간 머리에 스쳐지나가도록 다소의 여운을 남겨준다. 가톨릭신자가 이런 영화를 본다면 그와 같은 좀 더 넓은 견지에서 현실사회 또는 변천하는 현대사회가 얼마나 비그리스도교적인 과오를 범할 수도 있는 환경인가에 대해서 공부 또는 연구하는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兪碩鎭(베드로 神經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