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가을] ④ 죽음과 동시 희망 품는 계절 이 순간 느끼는 이유없는 전율
발행일1968-11-10 [제643호, 4면]
누구나 경험해서 아는 바와 같이 가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연은 나라와 지방에 따라 모두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과 같이 이렇게 청명하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자연의 성격만은 모두 같은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을에 대해 특별한 매력을 느껴왔다. 나는 지금 내가 어릴때 단풍잎으로 뒤덮인 들길을 뛰어다니던 것을 아름다운추억으로 황홀하게 회상하고 있다.
내가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깔린 들길을 천진한 마음으로 뛰어다닐 때 그때 가을의 태양은 그의 마지막 따뜻한 햇볕을 포근히 비추어주었고 농부들은 들에서 마지막 곡식을 거두어들이기에 바빴다.
내가 조금 자랐을 때, 그때 가을은 내게 깊은 사색을 갖다 주었고 그 사색과 가을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 당시 독일에서와 같이 지금 한국에서도 매한 가지다.
가을! 가을은 풍만한 계절이며 수확의 계절, 자연이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 속에서 낙엽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가을은 겨울의 폭한에 기온을 적당히 조절하는 시기며 또 길고 지루한 겨울을 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은 또한 봄의 약동과 여름의 성장이 있은 후에 필요한 휴식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죽음의 계절인 동시에 희망의 계절이 가을이며 이 희망은 새봄에 대한 희망과 같은 그러한 희망이다.
가을은 어느 다른 계절보다도 인간존재에 대한 준비를 자극시키는 계절이다. 가을은 마치 인생의 황혼기와 같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든지 소년시절에 성장한 다음 파란 많은 인생의 기쁨과 고통 속에서 성숙한다.
그렇게 성숙한 후 일생에 한번은 자신의 만족 속에서 그의 왕성한 힘을 과시하고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최후 임종의 그 순간, 그 시간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유없는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생을 끝낸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이 지나간 후 새 봄이 오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죽음이 있은 후 새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은 죽음의 계절인 동시에 기쁨에 넘친 희망의 계절인 것이다.
이제 나는 조용히 높고 푸르른 가을하늘을 응시하며 나의 어린 시절의 가을을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