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7)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㉓
발행일1968-11-17 [제644호, 4면]
의사는 윤 사장을 상당히 꼼꼼스럽게 진찰한 후 응급치료인 듯 주사를 놓고는 손을 씻으며 친절히 말했다.
『상당히 위중하십니다. 우리병원에는 입원실이 없지만 시내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입원을 시키셔야 하겠읍니다.』
『무슨 병환이신가요? 아까까지도 멀쩡하셨는데요. 갑자기 충격을 받으셔서 졸도를 한거 아닙니까?』
정아가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렌트겐을 찍어 보아야 알겠지마는 암만해도…』
『무슨 병환이신가요? 원래 병환이 있으시단 말은 들었지만…』
은실이가 말했다. 회사사장이자 또 친구의 아버지이므로 그는 적지아니 근심이 되는 눈치이었다.
『원래 병환이 있으시단 말을 하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네. 보통병환이 아니고 앞으로 얼마 못사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아와 은실은 일제히 근심스러운 시선을 의사에게로 모았다. 정식이도 얼떨떨하지만 역시 근심스러운 눈치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의사는 자신을 얻은 듯이 잘라서 말했다.
『무슨 병환이신데요?』
정아가 또 물었다.
『암 입니다.』
『네? 암이라구요?』
세 사람이 일제히 놀랐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래된 것 같습니다. 한두달에는 이렇게 악화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의사는 혀를 찼다.
『암이라도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지 않을 가요?』
정식이가 한 마디 한다.
『조기 발견만 하면 고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분은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그러구 여러가지 증세로 보아서 암만해도…』
『암만해도요?』
또 세 사람의 긴장된 시선이 의사에게로 쏠렸다.
『위를 대단히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를요? 그렇다면 가망이 없을 가요?』
정아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사진을 찍어보아야 자세한 것을 알겠지만 퍽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환자를 안정시키고 가까운 사람은 빨리 다 부르도록 하시는게 좋겠읍니다』
『그렇게 일이 급합니까?』
은실이가 초조하게 또 묻는다.
『이병은 대중할 수 없으니까 급하다고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가까운 사람은 모두 모여서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게 좋겠지요?』
이어서 다른 환자가 들어왔으므로 세 사람은 윤 사장을 응접실 「벤취」로 옮기었다.
『어떻게 할가? 우리들만으로는 힘에 벅찬것 같은데 회사에 알리는게 좋지 않을가?』
은실이가 책임을 느끼는 듯이 말했다.
『글쎄. 지금 날이 어두어 가는데 회사에 누가 있을 라구?』
『숙직하는 사원하고 수위가 있을 테니까 중역이나 간부사원 한테 알리라고 하지. 서무과장 같은 이는 윤 사장님 수족 같은 분이니까 금세 달려 올거야?」
『누님 그렇게 해요. 우리들 끼리 이렇게 있다가 혹시 때를 놓쳐서 무슨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정식이도 매우 조심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이 때이었다.
『아니야, 알릴 것 없어. 공연히 떠들석 해서 남에게 폐를 끼칠 것 없으니까 서무과장이나 불러올 수 있으면 불러다 주어』
윤 사장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사장님 정신이 드셨군요. 저 은실이어요.』
은실이가 반가운 듯이 윤 사장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미스양이 왔구먼. 고마워. 내가 아마 다방에서 졸도를 했지?』
『네 그래요. 어떻게 맑은 정신이 드세요?』
은실이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이 물었다.
『괜찮아 홍콩에서도 이렇게 졸도한 일이 있었지. 그래도 며칠 지나니까 나았어, 이번에도 괜찮을 테지.』
윤 사장은 자세를 바로하고 헝클어진 옷과 머리를 만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조그만 응접실에는 그들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했읍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가 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불공스게 했읍니다』
정식이가 윤 사장 앞으로 나서서 꾸벅 절을 했다.
『괜찮아, 내가 졸도한 것은 절대로 청년 때문이 아냐. 내가 가진 병때문야. 사실은 그 때문에 모든 사업을 집어치우다 시피하고 허둥지둥 귀국을 한거야』
윤 사장은 말하면서 정아를 바라보았다. 정아는 어쩐 일인지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말이 없었다.
『정아. 미안해. 공연히 내가 정아생활 뛰어들어서 여러가지로 피로움을 주게되어 여간 미안한게 아냐』
윤 사장은 역시 말을 하면서로 머리가 무거운 듯이 고개를 「벤취」에 기댔다.
『아니어요. 잘못한건 저에요. 제가 못된년 이어요.』
정아는 여전히 깊이 고개를 수그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무어라구?』
윤 사장은 얼떨떨해서 쳐다보고만 있는데 정아가 와락 덤벼들어 윤 사장 발아래 다리를 얼싸안고 꿇어앉았다.
『아버지!』
윤 사장은 여전히 얼떨떨하여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는데 정아는 그대로 느껴 울기 시작했다. 은실이도 따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정아야 네 심경은 내가 잘 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와서 너한테 아버지란 말을 들을 수 있겠느냐?』
『아버지!』
정아는 또 한번 부르며 윤 사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윤 사장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