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얼굴] 예수성심회 창설자 南(남) 루도비꼬 신부
지역개발·사회사업에 헌신한 벽안백발의 老(노)사제
“일없으면 아프고 일있으면 아픕니다”
포교앞서 생활안정 우선을 외치는「마을의 상록수」
【포항】 27세의 청춘으로 고국 프랑스를 떠나 타향살이 46년. 그동안 백발이 성성해지고 최근에는 혈압마저 높아져 경북 영일군 오천면 갈평동 한적한 산골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73세의 노사제, 南루도비꼬 신부는, 지역개발 및 사회사업에 바친 일생의 그리스도적 사랑이 빛을 보아, 이제 지방민(공익사업 옹호추진위원)들에 의해 정부에 표창이 상신되고 있다. 『일없으면 아프고, 일있으면 안아픕니다』. 떨리는 목소리는 그러나 늙음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짙은 눈섭과 길게 내려뜨린 턱수염, 그 사이로 강한 빛을 뿜고 있는 벽안의 신부는 아직도 「일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의지와 강인한 투지가 엿보인다. 우리민족이 일제하에 있을 때인 1922년 포교지로 떠난 남 신부는 그간 경북 왜관의 낙산본당, 부산진·대구 남산동 등지서 14년간을 보내고 경북 영천·포항본당을 사목하던 중, 1935년에 한국인 수도단체의 효시인 예수성심시녀회를 창설하고 그 지도신부로 오늘에 이르렀다.
이웃의 한 노파가 의지할 데 없이 병중임을 보고 수녀원으로 모신 것이 「백합양로원」의 시작이었고 나환자인 남편을 가진 부인이 버리고 간 얘기를 데려다 기르기 시작한 것이 보육사업과 「다미엔 피부병원」의 설립동기인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일생을 양로·보육·구라사업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투지와 정력도 유한했고 소속교구인 대구교구가 방인신부 사목구로 되자, 본당을 떠나 지도신부로 활동하면서 63년도에 지금의 「갈평」부락에 들어와 동 수녀원의 요양지인 「성모자애원 요양소」를 세우고 여생의 안식처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정력적인 노 사제는 즉시 또 일거리를 발견했다. 영일군내 갈평·문충·용산·진전 4개 부락민 2천여명이 가난과 무지로 허덕이는 걸 목격한 것이다. 남 신부의 가난구제·지역개발·문맹퇴치사업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사방 높은 산으로 둘려싸이고 산림이 무성하여 지나치게 비대한 하천이 마을을 점령하고 농토를 빼앗고 교통을 두절시켰다. 여기서 노 사제는 분발, 부모님의 유산과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 하천에 7개의 「콩크리트」다리를 부설하고 장장 12km의 길을 넓혀 차량이나 우마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농토를 닦았다. 그뿐 아니라 매일 놀고 있는 아동들을 학비, 교과서, 교복까지 지급, 학교로 보냈다. 현재 남 신부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학생의 수는 문충국민교·오천중학교·포항기술학교에 재학 중인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재래식 영농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주민을 깨우쳐 갈평동에 국고보조로 저수지를 만들고 수차 확장공사를 했으며 현금 70여만원을 무이자 연부대여 해주어 가난을 물리쳤다. 최근에는 5천여평의 산을 개간중인데 완성되면 영세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할 계획이다. 금년 여름 전국을 휩쓴 한해는 이곳 주민들을 굶게 했다. 이에 보리쌀 2백여 가마니를 자비로 구하고 필요량을 제때 제때에 방출하여 기근을 물리치고 있다. 이외에도 그리스도를 전파, 처음 한 사람의 신자도 없던 이 부락에 2백여명의 예비신자와 10여명의 신자를 길렀다.
『이제 우리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환자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철저한 쇄신의 도정을 걷고 있는 공의회정신의 보급자인 남 신부는 이 지방의 의사·교사·전도사·지역개발인·가난구제인 및 조국근대화의 선구자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수녀들을 동원 산골 빈촌을 찾으며 환자와 가난을 구제하고 있다. 높은 혈압 탓인지 홍안백발의 노 사제는 살아온 일생을 회상하면서 목소리가 더욱 떨려 나온다.
지금도 일거리가 없나 마을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신앙전파에 앞서 생활안정을 급선무로 생각하고 포교에 서둘지 않는 그는 신부라기보다 마을의 「상록수」다.
전국 40여 지방에 분원을 가진 예수성심시회가 국립제철공장 부지로 땅을 양보한 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신축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머지않아 완공될 수녀원 본원건물은 현대식 건물로 항도 포항입구 언덕에 그 위용을 나타낼 것이다. 이날을 기다리며 「사회 안에서」를 「못토」로 살아가는 노 사제의 눈빛은 석양의 산골 누항에서 지금도 활활 불타고 있다. (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