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8) 놀람 ④
발행일1969-02-16 [제656호, 4면]
일어섰으나, 역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현주는 얼굴만 발개졌다. 그리고 가슴이 두근거려진다.
『박수가 모자라는 모양입니다.』
사회의 말에 약간의 박수가 일어났다.
현주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성불사 깊은 밤에 들리는 풍경소리…>
목소리가 제법 곱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장내는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맥주병이 식사전에 나왔으므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중에서 현주는 크게 실수없이 노래를 끝내고 앉았다. 약간의 박수 소리….
여흥은 그런대로 흥겹고 즐겁게 진행되었고 식은 세련된 분위기 속에 막을 내렸다. 혜경이와 신랑될 청년은 둘만이 따로 어디인가 가버렸다.
(친구 대표로 불러냇으면서 함께 가면 못쓰나?)
둘이 채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린 뒤에 현주는 공연히 투덜거려짐을 어쩔 수 없었다.
혼자 그릴 골목으로 큰 길을 향해 나오는데
『아깐 실례 많았읍니다.』
돌아보니 여흥 사회를 맡아보던 청년이었다.
『뭘요.』
순간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먹음어졌다.
『무리하게 끌어 일으켜서요.』
『여흥에선 다 그런거지 뭡니까.』
『차나 한잔 대접하려고 하는데…』
그러면서 사회보던 청년은 현주의 의사는 무시하듯
『자, 들어가시죠.』
바로 모퉁이에 있는 다방 문을 밀쳤다.
현주의 발이 거의 망서림이 없이 다방안으로 들려졌다.
『뭘 드실까요?』
아무 말도 없으니, 청년은
『커피로 하실까요?』
역시 말이 없는 현주의 의사를 앞질러 레지에게
『커피둘.』
손가락 둘을 펴보이면서 부탁한다. 가져온 커피를 마시고 나서도, 커피가 오기전부터 하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혜경양 참 좋은 신랑 붙잡았읍니다.』
하면서 최호진군은 현주를 보았다.
신랑될 청년에 대한 인물평점을 묻는거라고 생각하고 현주는 대답했다.
『그분이 좋은 신불 붙잡은건 어떻구요?』
현주는 지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대답겸 물었다.
『하하 그거야 그렇지마는…』
하고 나서 최호진군은
『난 이렇게 쉽게 일이 진행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또 현주를 보았다.
『왜요?』
『주군 굉장한 신자거든요. 들건대 혜경양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는데…』
『신자? 어느?』
『카토릭입니다』
『혜경인 아니죠.』
『그랬는데 얼른 약혼이 성립된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혜경이가 입교(入敎)하기로 한 모양이죠?』
『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어지간히 신랑감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군… 혜경이 같은 아이가 그렇게 얼른…)
종교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어느편이나 모든 기성 권위에 대해 공연히 반감을 느끼고, 조소하려 하는, 현주의 눈으로 보면 좀 부박한 편이라고 느껴지는 혜경이가 갑자기 아무 고민이나, 깊은 반성을 가질 여유도 없이 신자가 되기로 하고 약혼의 정식절차를 밟았다는 사실이 현주로서는 가볍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신랑감이 마음에 들었던가?)
현주는 머리속에서 극장 라비에서와 오늘 그릴에서 본 혜경이의 신랑의 인상을 되살리면서 생각했다.
(별로…)
그러나 현주는 문득 애정과 종교와의 관계라고 할까, 그런 깊고 오묘한 무엇이 머리속을 자극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정과 종교! 애정과 종교!)
그러나 이런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럴수가 있을지도 몰라, 진실한 애정, 숭고한 애정은 종교와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니까…)
그러나 다시 혜경이의 성격과 사람됨을 생각했다.
(역시 가벼운 아이인데… 더구나, 그런 말을 친구대표로 약혼식에 참석해 달라고 끌어낸 나에게도 한마디 비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혜경이가 교인이 되기로 하고 신자인 신랑과 결혼하기로 한 것은 신랑의 생김새나 학벌이나 직장같은 외면적인 조건에 혹해 종교를 방편으로 쓴 것은 아닐까?
현주의 머리속은 공연히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런 현주의 머리속은 모르고 최호진군은 여러가지로 신랑 주군의 이야기를 했다. 대학때에는 가톨릭학생회장을 지낸 일도 있다. 집은 무척 여유있으나 자신은 신앙속에 가난한 사람, 고민하는 학생같은 것을 많이 도아왔다 … 등등 주군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나도 주군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정신적인 도움인지, 물질적인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최군은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현주의 머리속은 여전히 무거웟다. 그저 듣는 위치에서 최호진군의 말을 받아 들였을 뿐이었다.
일방적으로 지꺼리는게 흥미가 없었던지 차를 마시자는 의도가 현주와 교제나 할려고 하는 뱃속이 아니고 정말 친구 주군의 약혼을 축하하고 그 인품을 신부의 친구에게 확인시키려는게 목적이었는지 최호진군은
『자 실례했읍니다.』
그리고 이내 일어났다. 현주도 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최호진군과 갈라진 현주는 집에 돌아왔으나, 까닭없이 좀이쑤셔 지긋이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훌쩍, 집에서 나왔다. 거리를 걷다가 『참 오늘밤 일곱시에 박 선생이 도착한다고 했지?』
현주의 발은 서울역으로 향해졌다. 도착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현주는 오랫만에 서울과 그 근처의 분비는 분위기를 살피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차가 도착된 모양, 출구(出口)에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주는 마중나온 사람들 틈에 끼어 박훈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