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市 NC·RNS】 11월 19일 「성 베드로」대성전에서 거행된 베아 추기경의 추도식에는 전세계의 비가톨릭교회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25명의 추기경들과 자리를 함께한 각 교파 대표들을 보면, 「이스탄불」의 정교회 대표와 러시아 정교회, 영국 성공회, 세계 교회협의회(WCC), 세계 루터교 연합회, 개혁교회 세계연맹, 세계 감리교 협의회,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 유태교 및 이태리 프로테스탄트 연합회대표 등등이었으며 성청주재 각국 대사들도 참석했다.
장례미사는 「바티깐」 그리스도교 일치촉진 사무국장 빌레브란즈 주교 주례로 집전되었다. 미사가 끝난 후 교황 바오로 6세는 각 교파 대표들을 특별히 접견하고, 『베아 추기경은 항상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모든 크리스찬의 일치를 위해 기도드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 했다.
11월1 6일 87세를 일기로 서거한 베아 경은 1881년 5월 28일 독일 「바텐」의 「리드보링겐」에서 태어나 「프라이불그」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02년에 예수회에 입회, 1912년에 사제로 서품됐다.
그 후 독일에서 예수회장상직을 거쳐 1924년에는 성청 「그레고리안」대학교 교수로 임명됨과 동시에 성서학회의 일도 보게 되었다. 이어 그는 성서위원회와 연학(硏學) 성성, 검사(檢邪) 성성, 예부(禮部) 성성의 자문으로 활약했으며, 교황 삐오 11세와 12세의 고해신부이기도 했다. 성서연구에 일생을 바친 베아 경은 8년전 그의 나이 79세 때 교황 요안 23세에 의해 「바티깐」 그리스도 일치촉진사무국장으로 임명되자 세계를 놀라게 한 일치의 선풍을 일으켰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 때는 진보파의 대변인이 되어 「계시헌장」과 「그리스도교 일치율령」 「종교자유」 「대(對) 유태인선언」등에 강력히 작용했다.
그는 공의회가 반포한 일치율령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1965년 2월에 스위스 「즈네브」의「세계 교회협의회(WCC)」에서 연설했고, 그해 4월에는 「이스탄불」에서 정교회 총대주교와 토론했으며, 영국을 방문하여 성교회 지도자를 만났고, 「코펜하겐」에서는 루터교 지도자들과 대화했다. 또한 그는 1960년과 63년 65년에 미국을 방문하여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앞에서 교회일치를 부르짖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