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사도직의 날 좌담회 參觀記(참관기)
自主性(자주성)없는 곳에 권위의 횡포가…
평신자의 무관심은 권리포기
갈수록 심각한 신자 교육문제
평신자 운동,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 없고
공의회 정신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제와 평신자들
한국 주교단은 지난 10월 14일에 열린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구세주 대림 첫주일(올해는 12월 1일)을 「평신 사도직의 날」로 정하고, 한국교회에 「신자들의 교회」의식을 고취시키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도록 했다. 이에 발맞추어 대구 가톨릭 액숀협의회는 이날을 며칠 앞두고 조촐한 좌담회를 마련하여 평신사도직의제 문제를 방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좌담회의 내용이 독자여러분들의 신자생활에 도움이 될가하여 이 「좌담회 참관기」를 엮어 여기 소개한다.
■ 좌담 하신 분
蔣柄補 신부(대구대교구尙書局長)
金達湖 교수(本社논설위원·慶北大교수)
尹光宣씨(曉大司書主任)
黃基錫 博士(慶北醫大교수)
李文熙 신부(대구가톨릭액숀指導)
鄭達龍 신부(桂山洞보좌)
■ 한국의 現實은 神學的 貧困
이번 좌담회의 첫 화제는 「공의회 정신이 평신도 활동에 얼마만큼 침투돼있는가」였다.
이점에서 좌담자들은 한국의 평신자나 사제, 그 모두가 공의회 정신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는 현실과 공의회에 대한 평신자의 무관심을 지적, 이를 평신자의 「권리포기」로 보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이제 겨우 공의회 문헌이 번역됐으나 해설책이 전혀 없으므로 해설서가 빨리 나와야 사제나 평신자는 『평신자의 권리가 무턱대고 강화됐다』는 착각(?)에서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렇지만 남(사제)의 덕분에 구령하려는 해묵은 습성과 신학의 어려움 때문에 책이 있어도 보지 않고, 신학을 대중화할 능력도 없는 요컨대 신학적으로 빈곤한 한국에서는 사제에게 무조건 맹종하는 평신자가 가장 훌륭한 평신자로 보여지며, 평신자운동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신념이 있을 수 없고,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소신이 없기에, 신부의 눈치만 살피게 됐으며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가장 잘하는 것인 줄로 아는 습성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화제는 대번에 평신자 교육문제로 넘어가기 마련-.
■ 平信神學者 就職길 밝다
성세준비 때와 견진준비 때, 그리고 일반 교리시간에 사도직교육을 실시하고, 신부나 지도자는 평신자가 공부하도록 자극을 주어 질적 향상을 꾀하며, 나아가 평신자 신학부 같은 교육기관을 신설하여 미국이나 구라파와 같이 평신도 신학자를 많이 배출시켜야 한다는데 까지 언급되자 『신학을 전공하면 취직이 문제 아니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현재 대구 대건중고교 교장직을 맡아있는 장 신부는 학사학위를 가진 교리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가톨릭 중고교의 고충을 얘기하며, 평신자 신학자가 있다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여러 가톨릭기관에 많이 채용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학사학위를 가진 교리교사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한다.
■ 平信者의 權威意識
여기서 사회자는 「주교와 신부, 신부와 평신자의 대화가 왜 안되는가』하고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대화를 막는 권위의식에는 사제들의 권위의식도 있고 신자들의 권위의식도 있단다. 신자가하는 일을 ①성직자들도 와서 하는 일과 ②세상에서 세상을 위해 하는 일로 나눌 수 있는데, 성직자를 도와서 하는 일에 대한 것은 성직자가 평신자보다 더 잘 아니까 성직자가 명령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서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은 성직자가 인정해주지 않는데 문제가 있단다. 「봉사자」로서의 사제는 봉사 받으려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법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그러니까 대화가 필요하지』 한다.
② 自主性없는 한국평신자
신부가 성당을 어떤 모양으로 짓든지 평신자는 말이 없다. 마치 그것이 신부의 성당인 것처럼…. 받기만하는 신자, 자주성이 없는 신자, 일은 신자들이 만들어 놓고 돈은 신부가 부담하는 본당, 신부가 하는 것 모두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신자들의 본당에는 횡포에 가까운 권위주의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읍니까』라는 강론신부의 절규를 신자들은 『신부를 위해서 무엇을 했나』라는 말로는 듣는 버릇까지 생겼고, 본당운영위원회가 마련한 예산서도 휴지화되어 본당신부 마음대로 예산이 집행되기도 한단다. 도대체 한국 평신자들은 참여의식이 없고, 사회 안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함으써 내가 발전되고 완성된다는 정신, 한마디로 사회성이 지극히 적단다. 하여, 성당의 기둥 뒤에서 외로이 고민하는 모습으로 미사에 참례해야 미사를 드린 것 같은 만족을 느끼는 백성이란다.
② 평신자에 參與의 機會를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대주교님이 하루는 미술대학 학장님을 전화로 급하게 불렀다. 허겁지겁 달려온 학장님에게 대주교님은 『내 방을 새로 도배하려는데 어떤 색깔로 했으면 좋겠읍니까?』 어처구니없는 말씀에 학장님은 그만 환하게 웃어버렸단다.
신부는 신자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해 여러모로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주교와의 대화가 없는 신부는 신자들과의 대화도 막혀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돼있지 않는가.
가톨릭이란 「게토」 사회 탈피는 물론, 교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게토」정신도 제거돼야 한다. 평신자들이 강론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需·佛연구로 토착화돼야
사도직은 본질적으로 대외적이며, 비그리스도교적인 문화를 그리스도교화 하는 것이기에, 교회의 토착화문제가 화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가. 우리나라의 정신적 유산인 불교와 유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만 한다고 모두들 힘주어 말하고, 『비그리도교와의 대화를 회피하는 것은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 낙하산 組織 名分에 급급
평신자 사도직의 조직문제에 화제가 미치자, 처음부터 불만이 대단하다. 연합회부터 먼저 조직하는 낙하산식조직, 명목상의 조직이 한국교회의 통상관례가 돼있다는 것이다. 산하에 조직이 없는 머리만의 조직을 구성해 놓고는, 그 명분을 살리기 위해 실속없는 행사를 떠벌이기가 일쑤고….
이어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없애줄 가톨릭운동의 필요성도 언급되었는데 농촌에서는 사도직을 수행하려면 「낙도의 裵처자」 처럼 지역사회의 우수한 지도자가 돼야함을 강조한다.
■ 농촌신부는 좌천인가
신부가 농촌으로 발령받으면 좌천당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지양돼야하며, 교회당국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사회 사목정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촌 사람들에 전교해야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여기서 다시 평신자 교육문제가 대두되었다.
하느님이 말 한마디로 될 것을 인간이 되어 인간사회로 들어와 행동으로 신앙을 가르친 것으로 보아, 전교를 하려면 사회 안으로 파견돼야 하며, 이 점에서 볼 때 진짜로 전교하는 것은 평신자란다.
그러기에 평신자 교육은 수강생 숫자에 구애없이 지금부터 계속 실시할 필요가 있으며, 문제중심의 강의, 시사성이 있는 강의로 흥미를 돋굴 것을 다짐한다. (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