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실]
발행일1968-12-01 [제646호, 2면]
⑤信仰의 權威와 榮光
㉮신앙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앙은 모든 성덕과 덕행의 기초이다. 환언하면 우리의 초자연생명의 모든 활력의 근원은 신앙이다.
㉯열심하고 굳은 신앙은 우리를 많은 과오와 무지에서 구출해주며 우리에게 천상적 초연한 사고력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천상적 초연한 사고력은 교회 안에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교회건물들을 수많이 건립하게 했고 천주의 영광과 성스러움을 찬미하기 위해 존엄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작곡하게 했다.
천상적 초연한 사고력은 세기적인 그림·조각·시 등을 창작케 했다. 세기적인 대음악가 대화가들은 대개가 가톨릭신자들이었다.
이 신앙은 교회 내에 숭고하고 존엄한 교회 예식을 창작 가능케 했으며 교회에게 풍부한 상징을 가지게 했다.
㉰『나 또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나 이 반석위에 내성교회를 세울 것이며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하리라』(마테오 16·18) 예수께서 豫言하신 그대로 천주교신앙은 교회창립초부터 오늘까지 2천년 동안 무수하게 혹독한 박해와 시련을 겪어왔다.
성도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바오로사도가 「로마」인들의 칼날에 죽음으로써 시작된 「로마」의 신앙박해는 그 후 3백년 동안 계속됐는바 이 3백년간의 대박해에도 신앙을 끝내 고수하고 천주교진리를 두호하다 순교한 순교자수는 부지기수이다.
가톨릭신앙은 세계 어느 국가, 어느 민족에게 전파되든지 포교시초는 거의 반드시 그 나라위정자들이나 잔악한 사람들한테서 무서운 박해를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천주교회 역사를 다소 연구한 사람은 즉시 발견할 수 있으며 잘 이해할 수 있다. 2백년전 우리 한국 땅에 천주교신앙이 李승훈(베드로)을 통해 중국 땅에서 들어왔을 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박해가 시작되었고 이 박해는 백년을 계속했으며 수만명의 순교자를 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천주교 신앙은 2천년을 통해 혹은 외부에서, 혹은 내부에서 오는 많은 혼란과 박해와 무서운 시련을 겪었다.
인간의 간악한 지혜와 악마의 흉악한 간계는 이 신앙을 이 땅위에서 완전히 말살해 버릴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 거대한 반석위에 세우신 교회는 지금도 굳건히 제위치에 서있고 5억의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다」라는 금언과 같이 가톨릭신앙은 박해하는 자들의 탄압과 박해가 심할수록 반대로 더 전파되어 오늘날 보급되지 않은 국가나 민족이 없으며 5억 이상의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으며 세계 전 인구의 약4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가톨릭信仰이 그 모든 시련과 迫害에도 屈服하지 않고 굳건히 있으며 오히려 더 傳播됨은 금력도 아니요 어떤 기만적인 일시적 기교도 아니다. 오직 힘이요 수단이라 한다면 신앙 그 자체의 진실성이며 천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의 신앙전도를 위한 꾸준하고 열렬한 노력과 간단없는 기도이다.
⑥信仰의 實踐事項
5억의 가톨릭 신자 수는 세계 전인구에 비하면 4분의1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각자는 6명중에 1이라는 큰 비율로 천주님의 사랑과 성총 또 마지막으로 천주님의 천상적 생명으로 귀한 초대를 받은 셈이다. 이 막중한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스스로 머리가 숙여지며 무릎 꿇고 천주님께 감사해야하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잘 받들어 남의 구령사업에 전력을 다해야겠다.
『무릇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이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성부의 뜻을 준행하는 자 들어가느니라』(마테오 7·21)
이렇게 예수께서는 갈파하셨다. 예수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간단히 요약하면 말로만 신앙생활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며 참다운 신앙생활은 가르치심을 직접 실천하는데 있다는 말이다. 실천이없는 신앙생활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할 뿐아니고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바 『소리만 요란스럽게 나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꽹과리는 두들기면 요란스럽게 소리는 나지만 안을 들여보면 속이 텅 비어있다. 그래서 바오로사도께서 미리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하는 자를 『소리만 요란스럽게 나는 꽹가리』에 비했으며 세상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인간으로 단정하셨다. 다음 실천성있는 신앙생활은 「사람의 생활」을 의미한다. 즉 사랑의 실천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앙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며 사랑의 실천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즉 사랑의 실천이 없이는 신앙생활이 존재할 수 없다.
결론으로 천주를 많이 아는 사람이 천주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천주의 가르치심 즉 신앙의 진리를 많이 또 열심히 배워 이해할 것과 열심한 신앙생활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