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아빤 공부를 할테니 너흰 밖에 나가 노는 거다』-어쩌다 原稿를 쓰는 날은 이렇게 어린놈들을 달래어 밖으로 내쫓는다.
그러면 이놈들은 싫어하는 氣色이지만 할 수 없이 금숙이네 집으로 광섭이네 집으로 혹은 외할머니 집으로 슬금슬금 나가기가 일쑤다. 그러나 이것은 봄철부터 가을철까지의 일일뿐, 추운 겨울철이 되면 좀체로 나가려들지 않는다. 그래 찬바람이 불고 눈이 쌓이는 겨울철의 休日은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방안에서 뒹굴기가 예사다.
그래 책한권 제대로 읽지못하고 原稿몇장 제대로 써내기가 힘들다. 이런 가운데서도 혹 급하게 읽어보아야 할 책이나 꼭 그날로 써내지 않으면 안될 原稿가 있는 날이 생긴다. 이런 날은 이들을 강제로 건너 방으로 내쫓거나 방한구석에 놀자리를 만들어 주고는 일을 强行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놈들의 극성은 오래 참아지질 않는다.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곁으로 다가와서는 質問을 계속하거나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아빠 쓴 것 좀 읽어줘』 『그 책 큰소리로 좀 읽어줘』, 혹은 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해줘』-내가 읽는 책의 내용, 내가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을 몇백번 읽어줘도 그들은 물론 알아차릴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왠 質問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른다. 일곱살배기, 다섯살배기인 이들은 한말로 말해서 疑問符號(?)의 덩어리인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거역할 수도 없고, 거짓뿌렁으로 대답할 수는 더욱 없다. 그래서 항상 쩔쩔 매기 마련이다. 헌데 그들의 질문보다도 더욱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읽고 있는 책을 무조건 큰소리로 읽어달라는 命令이다. 詩集이나 비교적 어려운 論說 隨筆類를 읽고 있을 때는 차라리 편하다. 그런 것은 아무리 큰소리로, 아무리 천천히 읽어줘도 그들은 아예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도 어렵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小説의 경우는 도무지 읽어줄 재주가 없다. 혹 큰소리로 읽다가 난처한 대목같은데가 나오면 일곱살배기 딸의 질문은 맹랑하기 때문이다.
그래 할 수없이 이런 경운 차라리 童話冊을 꺼내다 읽어주고 만다.
총각시대의 書齊는 물론 컴컴한 下宿男이었다. 몇십권 안되는 冊을 선반위에 얹어놓고 休日이면 그것들을 꺼내 읽기도 하고, 밤새워 글을 쓰기도 했다. 이제 家庭을 갖고, 어린것들을 거느린 나의 書齊는 겨우 툇마루로 발전을 했다. 쓸모있는 冊은 별로 없으나 그래도 이것저것 4권 내외의 책을 툇마루 書架에 꽂아놓기도 하고, 아무네고 빈 구석에 쌓아 두기도 했지만 冊을 읽을 장소와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래 의례 아내와 어린것들이 잠이든 깊은 밤이 아니면 冊을 뒤적일 수가 없고 原稿를 쓸 수도 없다. 小說家라면 더욱 큰 不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時間이 쓰는 시간보다 많아야 하는 詩人인 나의 경우로는 그것은 다행이랄 수 있다. 出·退勤의 긴 시간을 合乘이나 列車속에서 보내며 되도록이면 詩를 많이 생각해서 짧은 시간에 써내기로 한다.
朴成龍(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