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그 제목을 「李箱의 날개」라고 했지만 오히려 날개의 李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마땅했을 것이라고 보여 진다. 1936년도에 발표된 「날개」라는 작품(단편)의 작가인 李箱의 전기 비슷하게 그린 것이 영화의 줄거린데 작품 「날개」의 내용을 많이 소재로 인용하여 엮은 것이다.
그래서 그 작가의 생애를 완전히 그린 것도 못되고 작품인 「날개」의 주인공의 심리를 완전히 파헤친 것도 못되는 그런 영화가 되고 말았다. 한국영화로선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지나친 「에로티즘」을 노출하면서 외화를 모방한 여러가지 기교로 「캄푸라지」하여 대중을 즐기게 할려는 데만 신경을 너무 많이 쓴듯한 느낌이 있으며 무언가 기대했던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잤구나, 한번만 더 날아보잤구나』 이런 외침으로 원작품 날개는 끝나는데 미쓰고시(三越) 백화점 옥상에서 잃었던 정신을 다시 찾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그 주인공의 외침은 독후에도 누구에게나 끝없이 간직되는 어떤 인상을 남겨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딘가 조작적이라는 느낌마저 금할 수없는 화면의 변화 등으로 공연히 골치만 아프게 하면서 구심점 없이 흘러내린 느낌을 준다. 조명 색채음악 등은 하나하나를 두고 보면 그런대로 괜찮기는 하다.
그러나 주연배우 申星一의 연기는 그의 나름으로 李상의 모습을 나타내 볼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하긴 하지만 태양을 싫어하고 낮에 외출하기를 싫어한 두더지 같은 은거생활로 빠져버렸던 病弱한 李상의 「데카당」한 사생활을 그려내는데 정말 적역이었는지 어딘가 무척 힘든 역을 맡았던 것처럼만 보여 진다.
가톨릭신자로선? 글쎄? 볼만한 가치는 하나도 없다함이 좋겠다. 아마 李箱을 연구한다든가 李箱을 중심으로 그의 시대의 문학을 넓게 알아보고자한다든가 하는 사람이 영화에선 그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하는 호기심을 가지고라면 어떨까한다. 그러나 李箱을 알고 표현 한다는 것은 워낙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에선 그런 호기심을 만족시켜줄만한 아무것도 찾아볼 데가 없는 것만 같다.
兪碩鎭(베드로精神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