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색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엔 사실이 아니므로 지금 내가 원고지 위에 펜을 달리고 있는 이 방은 서재 자체가 아니라서 서재의 구실을 한다고 하는 편이 온당할는지 모른다.
벌써 여러해 전의 얘기지만 어느 신문에서 「새해의 소망」이란 短文을 청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단적으로 새해엔 맘에드는 서재를 갖고 싶다고 썼었다. 훗날 그걸 읽은 어떤 젊은 주부독자가 내게 하는 말이 『글 쓰는 이가 여지껏 서재가 없으세요. 그걸 읽으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苦笑하지 않을 수 없었다. 實情은 實情이고 독자의 해석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
침실 식당 응접실 거실 그 모두를 겸한 2칸반의 온돌방은 실상 서재의 구실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엿이 여기가 나의 서재라고 내놓기엔 실상 그렇지 못하다. 그래도 한때 茶房의 한귀퉁이에서나 남의 사무실이나 아니면 外界 어느 나무 아래에서도 執筆生活을 한 기억은 결코 낭만적인걸 택했다는 얘기만은 아니다.
平生 소원이 기분에 맞는 서재를 마련한다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욕심도 아닌데 말이다. 번화속의 한적한 방이라도 좋고 한적 속의 한적한 방이라도 좋다. 모든 서적 모든 재료를 한눈에 살필 수 있게 둘레에 書架나 整理臺를 마련해 놓고 내가 갖고있는 재료를 마음껏 정리해 놓고 내가 갖고있는 재료를 마음껏 정리해 놓고 一目瞭然하게 재료를 살피며 活用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한옆엔 커튼 같은 것으로 가리운 침대있는 휴식처와 테이불은 이구석 저구석에 여러개 있으면 좋겠다. 의자 역시 딱딱한 것, 푹신한 것, 때로는 한귀퉁이에 온돌방의 구실도 할 수 있는 中國式의 걸터앉는 半坪정도의 온돌인 코너도 필요하겠다. 겨울철 난방을 위해서다. 흔히 北向이 서재에 적합하다지만 西向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 그방에 들어가면 고였던 想이 터져 흐르게 執筆을 촉구하는 분위기의 造成이 아쉽다. 새벽일찍 어느구석에서나 써야될 일이면 쓰기마련이지만 하다못해 귀여운 고양이의 방해라도 당해야 되는게 실정이고 보면 「완전도피」의 시간과 공간이 아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더 공부가 잘되고, 잘 써지리라는건 지금의 생각이고 실제 그런 환경, 그런 시간이 온다고 해서 지금의 소망대로 되리라는 확증은 없다. 다만 사람의 通念으로써 좀더 作業이 쉽고 바도 효율적일 것이라는 상상일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未來의 혹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꿈은 모르지만 「마음에 드는 서재에의 꿈」은 이루어지거나 말거나 현재의 조건을 보다 活用한다는게 나의 生活信條이므로 이 空間, 이 時間을 所重해 하지 않을 수 없다.
南으로 뚫린 창에선 햇빛을 받고 싶으면 받고 아니면 무거운 커튼을 드리우고 문을 닫아 걸고 나의 시간을 마련하고 거기 앉으면 마음조차 같앉는다.
따로 想을 기다릴 것은 없다. 길을 걸으면서 혹은 남과 대화하면서 또는 독서하면서 그리고 바느질하면서 無時로 明減하던 思索의 餘蓄은 이런 執筆時間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기에 構成에 애먹는 단계를 거쳐 일단 펜을 원고지 위에 달리기 시작하면 누에가 실을 뽑듯 그다지 막히는 법은 없다. 건강상태나 좋으면 이런 시간이야말로 내가 진심으로 사는 시간인 것이다. 진실을 말하고 美에의 慾求가 熾烈하기 때문인 것이다.
으리으리한 장서보다도 내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雜書다. 팜푸렛 종류나 雜書나 畵帖이나 낡은 노트 등이 필요한 참고가 되는 수가 있다. 붓배기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아놓고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나의 서재(?)는 그러나 마음편한 生活處이기도 한 것이다. 조그만 整理장 하나와 전축 한대가 방 한구석을 점령하고 南窓 밑에는 벽돌로 만든 장식대가 있어서 시원한 外界를 느끼게 한다.
좁은 空間에 앉아서 깊고 넓은 세계를 느끼는 것은 제한된 서재이상의 꿈이있기 때문인 것 같다.
좁고 답답할 때가 있어도 이 방에서 길들려 온 나의 生理는 좀체로 딴곳에 더 좋은 곳을 향해서 보따리를 쌀 생각도 없으니, 그런대로 나의 처소는 내가 살기에 알맞는지 모르겠다.
요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는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조그만 나의 인생관은 그러고 보면 나의 서재는 최선의 서재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나는 나의 인생을 말하고 꿈을 설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즐겁게 작업할 수가 있는 것이다. 茶 한잔의 휴식이나, 휴식삼아 手藝도 즐기고 스크랲도 하면서 나의 小宇宙에 담겨 있는 성 싶다.
林玉仁(作家 · 建國大 女子大學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