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牧(사목)과 教理教育(교리교육) ①
司牧憲章(사목헌장)=공의회의「슬로건」에 가장 직접적으로 부합되고
원칙상 융화될 수 없는 자와도 대화의 길 열어
현대=세계를 세계자체로만 관찰하려는 세계관이 등장하고
神(신)에 대한 신앙이 기술의 창조자인 사람에게 이양돼
「교회헌장」이나 「사목헌장」이 모두 「교회」에 대한 헌장이지만 전자는 교회를 교의적으로 다루었고 후자는 사목적 입장에서 본교회의 태도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서로 그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목헌장을 「현대세계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한 사목헌장」이라고도 이름하는 이유를 알아듣게 된다. 교회의 현대화내지 현실참여라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내걸은 「슬로건」에 제일 직접적으로 부합되는 헌장이 바로 사목헌장이겠다.
우리가 지금 다시한번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요한 23세의 용단으로 개최되었던 그 당시를 상기해볼 때 교회 내와 각 종교계에서는 물론 종교계 밖에서도 각계각층의 열띤 환성과 깊은 관심이 「로마」로 집중되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교회에 무엇을 기대했던가? 교회 내의 그 어떤 질서를 확립 내지 쇄신하는 것만으로써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혹은 교회의 자연법상 또는 복음에 입각한 특성이나 선교권리를 재천명하는 것만을 그들이 바랐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와는 대조적 입장에서 교회를 주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의문은 다음과 같이 종합될 수 있으리라. 즉 교회는 현대의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대망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겠는가? 변천해 가는 현실문제에 일일히 대답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현대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솔직하고 겸양한 관심을 표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며 또 그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보다 더 중대하다. 사목헌장은 바로 교회의 이와 같은 태도를 밝혔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말하자면 교회는 이 문서로써 원칙상 서로 융합될 수없는 그들과도 대화의 광장을 연 것이다.
서로 대화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결점을 알고 부족한 점을 메워 가면서 사회에 봉사하자는 것이다.(사목헌장 1~3·21 참조)
그다음 이 사목헌장은 복잡한 사태에 빠져있는 현대인과 현대세계를 향해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자 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지침은 첫째로 교회의 지체들에게 내려진 것이고 그 외에 모든 사람들에게는 지침이라기보다 환대(歡待)로 나타나고 있다. 하여간 사목헌장 전체를 통하여 교회의 양 우리 안에 있는 목자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음은 흐뭇한 느낌을 준다. 이제 필자는 사목헌장에 언급된 현대인들의 종교 이탈상과 그 시정책으로 사목헌장에 제시된 현대에 적응된 「올바로 해석된 교리」 교육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 세계적 세계관
『오늘 인류는 그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사목헌장 4) 이제까지의 세계관에 위험신호를 보내는 세계를 세계자체로만 관찰하려는 세계해석이 등장했다. 재언하면 현대인은 신성성이나 신과는 관련성 없는 세계관을 구상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한껏 성장성숙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현대인은 신의 흔적이나 작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세계 안에 파묻혀 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흔적과 작용을 더 쉽게 발견하고 인간을 세계의 중심과 그 절정에 놓기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을 어떤 사람은 속화된 세상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전에 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남겨놓았던 정신적 여유를 이제 전적으로 없애버렸고 따라서 세상은 세상 안에 있는 세상뿐이고 사람은 세상을 변천시키면서 존재하는 순전한 사람이고 더 이상 가는 것도 더 이하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같은 세계적 세계관은 대체로 기술공업화된 세계, 과학의 정신지배, 집단(集團)의 민주화 등의 견지에서 그 모습을 형성한다.
■ 기술공업화된 세계
기술발전 범위가 농업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때만해도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그 핵심의 변함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점차적으로 공업 중심으로 발전되어 거진 30억이란 인구가 이 기계공업의 기술 발전의 혜택 속에 살게되자 문제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신에 대한 신앙이 기술의 창조자인 사람에게 이양되고만 것이다. 전에는 신비 아닌 것까지도 신비롭게 보아오던 사람의 눈은 이제 기술에 매혹되어 신비스러운 것까지도 신비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생각하면 과학의 힘은 위대하기도 하다. TV, 자동차로 세계 안에 거리를 단축시킨 것은 이미 옛날이야기로 화했고 달의 주위를 빙빙돌고 또 거기서 지상에 이야기할 뿐아니라 하고 있는 행동을 우리는 침대에 누어서도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문제였던 산아조절도 알약 한개로써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며 인간생명의 변화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 외에도 심리학이나 사회학에 있어서의 기술적 발전도 같은 보조를 밟고 있다. 이런 시점에 있는 현대인의 눈앞에 인간은 위대하기만 한 것이다. 하여간 신의창조란 개념아래 보던 자연상은 뒤로 물러가고 있다. (계속)
이경우(칠곡군 신동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