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着化(토착화) 摸索(모색)하는 修道會(수도회) ㊤
아세아 凡(범) 베네딕도 수도원 長上會(장상회) 參加記(참가기)
開幕(개막) 벽두, 佛敎(불교) 大僧正(대승정)께 長上(장상)뜰 꿇어 尊敬(존경) 表示(표시)
명상 · 修道(수도)의 본거지는 東方(동방)
土着化(토착화) · 수도정신고취 · 時代要求對應(시대요구대응)이 目的(목적)
佛敎式(불교식) 默想方法(묵상방법) 등 土着化(토착화)에 적극적
종래에 있어 거개의 수도원은 세속을 등지고 깊이 은둔하여 觀想과 그들 나름의 수도적 계율을 통해 신앙을 모색해 왔다. 2차 공의회 후 쇄신의 역풍은 이 피안의 無風地帶인 묵은 수도원의 풍토를 일신하여 수도자들도 이제 사회참여 토착화 등 보다 실생활을 통한 그리스도적 사랑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12월 아세아 駐在 베네딕또회 · 씨토회 · 트라피스트회의 장상들의 모임이 「방콕」에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 애석히도 이 회의도중 급서한 토마스 머턴을 비롯한 세기적,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왜관 베네딕또 오도 아빠스와 대구 베네딕또 수녀원장 에델투루트 수녀, 그리고 이 글의 필자인 베다 수녀가 참가했다. (편집실)
1968년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에 걸쳐 아세아에 있는 베네딕또회, 씨토회, 트라피스트회의 장상들이 「방코크」에서 모임을 가졌다. 씨토회나 트라피스트회는 모두 좀 더 엄한 생활을 위하여 성베네딕또회에서 분파된 회이며 분파된 후에도 성베네딕또의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이번 아세아 범베네딕또수도원 장상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방코크」에서?… 그것은 아마 「방코크」가 지리적으로 아세아의 중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인구의 90%가 불교를 신봉하고 불교가 국교이며 거리마다 동리마다 사원 없는 곳이 없는 불교국 타일란드의 수도에서 회합을 갖는다는 것이 역사적이며 선교적인 의의를 배가시켜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불란서의 풀로리 아빠스님(베네딕또회)과 벨기의 돌랑 아빠스님(베네딕또회)을 위시하여 몇몇 조력자들이 약1년간 준비한 것이다. 이분들은 회의를 개최하기까지 아세아에 있는 여러가지 난문제에 대하여 문의서를 발송하고 그 문의서에 대한 답을 정리한 후에 다시 각 장상들에게 보내는 등 시간과 수고를 아까지 않았다.
참석한 인사들은 「로마」에 계시는 성베네딕도회 총아빠스님인 렘버어트 위클래드와 아깝게도 「방콕」회의에서 고인이 된 미국 제세마니 트라피스트수도원의 토마스 머튼 신부님을 비롯하여 특별 초청으로 오신 연사들까지 약60여명이나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관 성 베네딕또 대수도원의 오도 하아스 아빠스님과 대구 포교 성 베네딕또 수녀원의 에델트루트 와이스트 원장수녀님과 필자가 참석하였다. 참가국은 인도 · 세이론 · 캄보디아 · 인도네시아 · 월남 · 대만 · 홍콩 · 필립핀 · 호주 · 뉴질랜드 · 일본 · 한국 등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아세아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가 참가한 셈이다.
이 회합의 목적은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이 거의 고립되어 있던 아세아 베네딕또회 장상들이 서로 알게 되기 위한 것, 수도생활의 토착화, 수도정신의 고취,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업과 문제점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갖는데 있었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살림을 난 베네딕또회가 아세아에서 이렇게 한데 모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으로 좀더 유대를 긴밀히 하기 위하여 이번 기회에 아세아 범베네딕또 수도원 장상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회장에는 왜관 성베네딕또 대수도원의 오도 하아스 아빠스님이 임명되었다. 앞으로 이 모임은 2년마다 한번씩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수도생활은 본래 동방에서 시작되었다. 벌써 그리스도게서 강생하시기 수백년 전 인도의 석가모니의 입산수도나 또 가까이 우리나라의 원효대사나 기타 수많은 승려들의 불교적 수도역사는 불문에 붙이고 그리스찬 수도자들에 관해서만 언급한다 하더라도 그의 요람은 서방이 아니라 동방이었다.
동방인들은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천부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고,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나아가려는 불굴의 인내도 있었다. 하여 거기에서는 깊은 예지가 나왔다.
그러나 역사가 바뀌어 동방이 물질문명의 침체와 함께 정신문화마저 그 빛을 잃고 정치적 불안정으로 굶주림과 헐벗음에 허덕이고 있을때 서방은 그와 반대현상으로 활보하게 되었다. 서방인들이 동방에 왔다. 동인도회사가 그대표이지만… 그것은 그렇고 동서의 교류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동방에 심겨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해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회와 함께 서방적 수도생활도 들어왔다. 동방에서 가져간 수도생활이 서방을 통해 다시 동방에 왔다. 그러나 그것을 동양적인 사상 위에 접목해야 하겟다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채 역사는 흘렀다. 그래서 벌서 서방적 수도생활양식에 젖어 있는 필자에겐 정좌하여 참선을 한다거나 목탁을 두드리는 불교 스님들의 기도양식이 이해는 될지언정 그의 채택 여부 같은 것은 논의 대상도 되지 못했는데 이번 회합에서는 불교에 관한것들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동경의 성 「소피아」 대학교 라쌀 신부님은(독일인) 강연중 불교식 묵상의 좌세를 취하여 보여주는 등 토착화에 대하여 오히려 서구인들이 더 적극적인 것을 보고 감개무량하였다.
본격적인 회의로 들어갔던 12월 9일엔 타일란드의 불교 대승정 성하를 모셨다. 그것이 개막의 첫 「프로」였다. 대승정 성하는 외모로 보아선 조금도 보통스님들과 다르지 않았다. 발은 맨발이었고 주황색 목면으로 몸을 감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가톨릭에서 교황에게 성하라는 존칭을 붙이듯이 타일란드에서는 대승정께 성하라는 칭호를 붙인다. 총아빠스님을 비롯하여 주 타일란드 교황사절까지 그 앞에 꿇어 교황께와 같은 존경을 드렸다. 키가 큰 서구인들이 「페이건」(미개인, 이교도)이라고 멸시하던 지난 세대와는 너무도 달리 주황색 법이의 이 자그마한 유색인에게 이런 종경을 드리다니… 이것이 바로 「에큐메니즘」의 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또한 수도생활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가톨릭 수도자들이 토착지의 수도원 대승정께 드리는 경의의 표가 아니겠는가 (계속)
김 베다(대구 성베네딕또수도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