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미국)의 성난 젊은이들
人間性(인간성)과 科學間(과학간)의 갈등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는 절규·필연적인 反動勢力(반동세력)
기술 文明(문명)으로부터의 人間自律性(인간자율성) 회복하려는 몸부림
科學神格化(과학신격화)로 科學(과학)의 怪物化(괴물화)
黒人街(흑인가)·월남·學園自由(학원자유)란 피상적 원인
美國(미국)의 가장 개방·희망·창조적 世代(세대)
9월의 마지막 주간 거의 150만에 가까운 美國 大學生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등록을 마쳤다. 美國의 大學들은 學生들이 産業部面이나 그 밖의 分野에서 專門人으로서의 資質을 갖추는데 不足함이 없도록 모든 準備를 하여 놓았다. 有能한 社會人을 길러내는데 目標를 둔 大學의 傳統的인 槪念은 이제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러한 놀라운 變化는 韓國의 大學들이지니고 있는 「패턴」을 쫓고 있는 것이다. 表面的로는 齡年의 學園內 분위기가 다른 해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學生들은 寄宿舍, 下宿집, 그리고 자기네 社交 「클럽」이 經營하는 合宿所 앞에서 長蛇陣을 쳤고 가지고 온 짐을 整理하고는 곧 適性檢查를 하였다. 그리고는 잇달아 登錄을 하느라고 줄을 지어 섰던 것이다. 蹴球選手들은 벌써부터 體育館의 脫衣室에서 땀 냄새를 피우기 始作했고 午後만 되면 競技場 높이 공들이 치솟았다. 마치 「로마」의 劍鬪士라도된 양 건장한 蹴球選手들의 怪聲을 이 울려퍼진 것은 물론이다.
이런 平和스런 大學의 情景이 얼마나 계속될는지는 누구나 推測할 수 있었다. 지난봄에 있었던 「캠퍼스」 騷動의 反響이 아직도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學期末 學生과 警察사이에서 벌어진 暴動에 가까운 對決의 傷處가 아직도 아물기도 前에 「콜럼비아」大學에서는 이미 소요의 氣味가 엿보이고 있었다. 앤드루·코디에르 總長署理室에 새로낀 防彈窓은 學校當局이 더욱 험악한 事態에 對비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시카고」 民主黨 全黨大會 때 있었던 亂助이 左翼的인 示威者들과 「組織」 사이의 分裂에 더 깊은 쐐기를 박아놓는 結果밖에 안되었던 것은 大學의 總長에서 新入生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거기에다가 사랑의 염주구슬과 푸른 무명누더기를 걸친 젊은이들은 「시카고」소요이후 상당한 동조자와 지지자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에 대해 抗議하고 있는가? 아무도 明確한 答은 할 수 없다. 亂助者들 자신도 시원한 答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레니·데이비스는 말한다.
『우리는 政府 學校 勞組 및 企業體에 대한 우리들의 진지한 參與를 방해하는「制度」를 글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는 새로운 政治權力이 반드시 誕生해야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신念이다』 어느 退學당한 大學生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일자리가 없는 理想主義者들이다. 우리는 抗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겠다』 이러한 爆動的인 學生들의 「코멘트」에 대하여 일부 保守的 政治人들이 表示하는 걱정은 理解할만한 것이다. 下院議員 알버트·와트슨 같은 이는 『이 好戰的인 사람들이 政權을 쥐기 위해서는 무엇이나 다 하려들 것』이라고 宣言하고 있다.
하긴 『우리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여섯개 要求事項이 다 들어지면 어 떻게하나? 來日은 여섯개 쯤 더 생각해야 겠군』 하는 따위의 외침에 냉정한 反應을 보여주기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또 우락부락하게 생긴 黑人學生이 黑人醫官앞으로 으시대며 걸어가서는 『여기서 뭣을 하고 있어. 흰둥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단 말이지? 「한렘」에 오기만하면 그때는 죽여버릴테야』하며 고함을 지르는 경우는 어떠한가? 이같은 熱狂主義에 대해 지나치게 感情的인 反應을 보임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것이다.
哲學家 벤자민·드모트는 좀더 哲學的인 態度로 『지금은 言語의 濫用時代』라는 表現을 쓰고 있다.
時間이 좀 걸리더라도 이 問題를 한번 分析해보려는 이나 혹은 화려하게 펼쳐지는 言語의 濫用 誇張의 襄面에 있는 진정한 意圖를 찾아 보고자하는 이라면 누구나 즉시 黑人街나 越南問題 學園內의 自由 등이 問題의 核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亂動者들의 不滿이 이러한 問題로 부터 나오고 있는 것은 事實이다. 그들은 社會에 대한 날카로운 眼目과 꾸준한 끈기를 지니고 이러한 問題들에 變化를 가져오려고 努力한다. 그러나 問題의 核心은 오늘날 美國社會가 全般的으로 當面하고있는 「制度」에 있다.
나는 지나친 單純化의 危險을 무릅쓰고 이 問題를 이렇게 表現하고 싶다. 즉 그것은 무서운 加速度로 發展해 나가는 科學과 技術文明이 부과하는 壓力으로부터 自身을 歌해 내려는 人間의 努力이라고. 그것은 人間이 자기 자신 및 自信의 運命에 대한 支配權을 回復하고 예기치도 않은 눈 깜짝할 사이에 自身의 自律性을 앗아간 科學과 技術文明에게서 自由를 찾으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의 이 腦動은 人間性과 科學이 상충해서 빚어내는 葛藤이다. 어떻게 찢어 붙이든지 「制度」나 「組織」이 科學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들은 오늘날 美國 生活의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다. 그것은 마치 도 한마리의 거대한 문어처럼 주위를 온통 검게 물들임과 同時에 人間의 內的 靈魂을 질석시키면서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나의 强力한 反動勢力이 科學文明의 支配에 反撥을 보이며 일어섰다. 무언가 달라져야만 한다. 레니·데이비스에게 다시 귀를 기울여 보자. 『現在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重要한 基盤은 젊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격심한 權利의 침해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야말로 美國에 관한 事實을 배울 수 있는 素質을 갖춘 가장 개방된 選擧民이기 때문이다. 美國의 늙은 世代들이 그들 自身의 슬로간 가지고도 測定해내지 못하는 制度에 단단히 얽매어 있음에 反해 젊은이들이야말로 가장 希望的이고 創造的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이라도 냉정한 견해를 가진 사람치고 이러한 事態아래서 安定을 느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의 見解는 조금도 냉정함이 없다. 現事態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不安하게 하고 있으며 事實 그렇지 않다면 이글을 적는 苦生도 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文明은 極限에 處해 있는지도 모른다. 人間感情에는 불이 붙었다. 우리는 모든 側面에서 威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時期에 處해 지금까지 自身이 生活해 온 흠통 속에서 그대로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그것이 自身의 무덤으로 變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이지 無分別한 科學者들의 過誤로인해 一般大衆은 科學, 特히 社會科學의 效驗에 대해서 너무나 지나친 自信을 가져왔음은 틀림없는 事實이다. 이러한 忘想을 움추려들게 하는 것이 내가 맡은바 任務의 一部이기도 하다.
가령 經濟學者들의 경우, 끊임없이 人間을 괴롭히는 經濟問題와 우리들의 死鬪에서 기적을 낳게 한 경우란 거의 없으며 精神病에 대한 心理學者의 공헌도 그리고 未成年의 脫線行爲를 해소하려는 社會學者와 犯罪問題 硏究家들의 노력도 극히 疑問視되는 것이다. 극도로 制限된 手段에 魔術 宗敎的威力을 賦與하려 해보아야 科學을 爲해서나 혹은 社會를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일 世俗人들이 喪失한 신앙을 찾아 헤매이다가 科學을 神格視하는 날에는 오히려 그 과학을 完全히 파괴해 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특히 아직도 相對的으로 幼兒水準에 머무르고 있는 科學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幼兒를 英雄神으로 모신다는 것은 그의 道德的 知的 발달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巨大한 怪物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결코 진보를 멈추게 한다든가 幼兒를 殺害해버릴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과학과 기술을 人間 스스로가 다스릴 수 있게 하고 인간을 위해 奉仕할 수 있는 자리에 堅固히 붙잡아 두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죤·밋첼(西江大 報道藝術科長·예수會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