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0) 놀람 ⑥
발행일1969-03-02 [제658호, 4면]
넷은 서울역 구내 다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넷은 앉았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 것은 혜경이었고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여기 요세요』
하고 손짓한 것도 혜경이었다. 그 행동이 그냥 명랑하고 경쾌했다. 현주는 새삼스럽게 혜경이의 행복에 흥분해 있는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혼하면 저렇게 좋은 것인가?)
빈자리로 가면서 박훈씨를 힐끔 보았다. 박훈씨는 현주의 마음속은 모르는 모양 역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뒤 차를 청한 것도 혜경이었다. 차가 오기 전에 혜경이는 다른 사람은 끼어 들여주지를 않고 혼자 지꺼리고 있었다.
『오늘 둘이서 맘껏 드라이브 했지 뭐냐? 스피드라는거 실감했어…케투악인가 거비닉 작가 있지 않아? <노상(路上)에서>라는거, 그걸 읽은거 얼마되지 않거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자동차를 타고 마구 달리고 째즈에 열중하고… 그러는걸 그저 책으루만 그러니까 그림 보듯이만 느꼈는데 오늘을 그 스피드라는걸 실감한 셈이야…』
현주를 향해 하는 말이었으나 박훈씨가
『이거 부러워서 못견디겠군요. 어디, 신혼…』
했다가
『그렇지 약혼여행 가는 길인가요?』
둘이 정거장에 나온 까닭이 궁금해서 묻는 모양이었다.
『약혼여행? 호호. 박선생 참 재미있는 말씀 하시네. 약혼여행, 약혼여행…』
하더니 혜경이는 주군을 힐끔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고-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이가 『노』라는 거얘요. 절대로…』
그리고 금시 수줍은 태도로 변했다.
『절대로?』
박훈씨가 그리 되뇌이자 혜경이는
『이이말이 신혼여행은 있어도 약혼여행이라는 건 없다는 거얘요. 그것보다도 여행이라면 숙박(宿泊)을 해야 하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있어도 약혼여행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거얘요.』
아주 의젓한 어조로 말했다.
(젊은이답지 않게 완고한데 있군. 여자쪽에서 여행하자고 하는데 잡아떼다니…)
박훈씨는 주군에게 은근히 시선을 던지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역에는?』
그렇더라도 박훈씨는 둘이 역에 나온데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다시 물었다.
『대구에 출장할 일이 생겼다는 거얘요』
헤경이의 대답이었다.
『대구에? 하필 오늘?』
『좀 좋은 핑계얘요? 다른사람 보내두 될건대 이인 그걸 못하겠다는 거얘요. 꼭 자신이 가야 될 일이라나요. 그래서 저하구 약간 싸왔어요. 내가 더 중하냐? 회사일이 더 중하냐고… 결국 제가 졌어요. 하필 약혼날에 출장가는게 저를 소홀히 여기는 것 같지마는 남자란 또 그래야 쓴다고 생각했거든요. 일이 중요하거든요. 약혼한 사이라는건 영원한거고 이이가 가지 않아서는 안되는 회사일이라는 것은 이 한때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꼭 제가 생각한 것 같이 말하는군.』
잠자고 있던 주군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미스터 주가 그렇게 설명했지마는 내가 공감(共感)하지 않음 무슨 소용 있어요. 공감했다는거 그 의견에 동의했다는 자체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지 뭐얘요』
혜경이 주군을 흘길 싸하게 보았다. 주군은 시물시물 웃기만 했다.
『참으로 건실한 청년이다.』
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아까 다방에서 최호진으로부터 들은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혜경이는 참으로 좋은 신랑을 구했다고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차가 들려왔다. 마시면서도 이야기는 수다장이 혜경이가 끌고 나갔다.
『모래쯤 올라온다지마는 그동안 이별이 아쉽거든요. 그래서 나온거얘요. 전송이지마는 전송 이상의 뜻두 있어요. 시간을 넉넉히 잡은건 사실 이 다방에서 싫것 이야기를 하다가 태워 보내기 위해서 였어요』
혜경이는 수다스럽고 가벼운 성격이지마는 좋은 점이 많은 여자다. 이런 말까지 했다.
『그럼 우리가 방해를 놓은게 아니야?』
지금까지 아무말이 없었던 현주가 말했다.
『천만에. 둘만이면 무슨 재미가 있어? 누가 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신명날게 아니야?』
『하하하』
박훈씨가 느닷없이 웃었다.
『왜 웃으세요?』
혜경이 눈이 뚱그래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분을 위해 뭐랄까. 미끼가 되는 셈인가요?』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재발 취소하겠어요』
『최소까지야… 그렇다는 말이죠. 허허허』
혜경이 약간 새침한듯 하더니
『또하나 다른 이유가 있어요』
헤경이 입을 열었다.
『다른 이유?』
『예, 두분이 얼마나 가까운 사인가를 보려구?』
『뭐? 두분이?』
박훈씨가 힐끔 현주를 보았다. 현주는 까닭없이 얼굴이 화끈해졌다.
『예. 제가 맞선 보던날 현주가 선생님과 데이트한다고 그자리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사실은 박선생님 어떤분인가 알고 싶었던거얘요.』
『애두』
더욱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현주는 혜경이를 정말로 흘겨보았다. 박훈씨는 입을 열 수 없는 모양 담배를 갑에서 뽑아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 깊숙히 빨아 연기를 내뿜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혜경이는 더욱 대담했다.
『현준 참 좋은 애얘요. 잘 보살펴줘야 해요』
『애두 그만 하자니까…』
현주가 그이상 견딜 수 없음인지 목소리가 앙칼스럽게 들렸다.
『왜?』
혜경이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현주를 보고
『그런말도 못한대서야 이 자리가 딱딱해 무슨 재미가 있나?』
그리고는 주군을 보고
『그렇지 않아요?』
억지로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주군은 여전히 시물시물하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