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神學(신학) 紙上講座(지상강좌)] ② 전교하는 백성
傳敎(전교)…特殊團體(특수단체) 일 아니고 使徒的(사도적) 百姓(백성) 全體(전체) 일
人間完成(인간완성) · 全人類救援(전인류구원)이 使命(사명)
교회에 들어가는 것은 보다 쉽게 구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使命을 맡아 일하는 것이며 世界救援에 積極的으로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회가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 정의한 것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교회가 현대인들가 새로운 사명감에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할 필요성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교회는 젊어져야 하고 현대인들과 만나야 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에게 현시점으로 나타나야지 과거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 현대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시에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仕途적인 백성이다. 「요한복음」에서 『마치 성부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는 너희를 보내노니 성신을 받으라』 하셨다.
그러므로 傳敎의 근원은 성무이며 또한 성부는 사랑의 根源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弟子들은 모든 國境을 超越하여 형제애를 발휘할 의무를 부하받았다. 그러면 傳敎가 무엇인가를 初代교회에서 살펴보면 『성신 降臨이 있은 후 仕途들과 이스라엘 신자들은 福音 전파에 헌신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十字架상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사실 죽으셨고 그리고 復活하셨고 實際로 신자들 사이에 生活하고 계시다는 것을 사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初代敎會는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또한 豫言者들이 말한 「메시아」가 오면 하느니므이 백성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引導할 것을 豫言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歷史的 事實 속에서 初代信者들은 간擇되었다고 認識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예루살렘」에서 信者들의 一部는 迫害를 받았으며 一部는 「예루살렘」을 떠나 「안티오키아」에서 傳敎를 하여 하나의 共同體를 형성하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信者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예루살렘」이 아니고 「안티오키아」에서 깨달았는가? 「안티오키아」의 信者들은 유대아인들의 計劃性과 特殊性을 楚越한 것에서 그리스도의 特殊性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信者로서 가장 重要한 事實은 生活한 그리스도에 對한 信仰이고 이 信仰은 모든 國境을 超越한 兄弟愛로서 具體的으로 形成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4世紀에 들어와서 로마帝國이 그리스도敎를 陽性化함으로써 生活한 그리스도에 對한 아무런 信仰도 없이 領洗를 받았던 것이다. 實際信仰이 아니라 하나의 儀式으로 領洗를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民族 全體가 그리스도敎 信者가 되는 現像이므로 領洗를 받음으로써 받는 最大의 惠澤을 몰랐던 것이다. 完全히 受動的인 것이었다. 이런 使命이 敎皇의 責任처럼 또한 그곳에서 일하는 몇몇 信者나 團體의 責任처럼 생각했던 時代였다.
이러한 事項은 그대로 發展되어 20世紀初葉까지 傳敎를 몇몇 宗敎團體의 일인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現在도 아프리카나 一部 아세아 地域에서는 傳敎를 어떤 特殊團體만의 專門事業인양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세아 · 아프리카 신부들은 다만 그네들의 기존단체에 한해서만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근본적으로 전교하는 백성이기에 타인에게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영세를 받음으로서 간택된 백성의 한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백성은 모든 인간에게 전교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聖書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백성은 「人類 모두가 함께 生活하고 있는」 백성이다. 現世에 많은 사람들이 救援을 위해 勞力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할 일이고 그래야만 敎會가 自己의 본모습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敎會가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우리가 敎會를 他人들과 非信者와 一致시키는 것이다 一致하는 것은 敎會는 人類의 自然性을 多樣性 안에서 一致해야 된다는 것이다. 現代人類는 에집트 文化 · 아라비아 文化 · 라틴 아메리카 文化 등 여러 文化卷內에서 여러 民族으로 나눠져 있고 그중에서도 新生國家들과의 一致인 것이다.
그리스도敎에 있어서 아세아나 기타 地域의 젊은 國家들의 敎會가 西歐에 매여있지 않고 자주 · 독립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文化 · 言語 · 民族性을 살리면서 그리스도를 자기것으로 동화시켜야 한다.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그렇게 간擇했다. 그러므로 現代人들은 그대로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이라는 敎會觀은 敎會內에서 信者들과 또는 地方敎會들과 서로 姉妹關係를 맺고 또 對話를 交換하는 敎會들인 것이다.
여기에 交換이란 宣敎性을 말하는 것이다. 西歐敎會도 亞細亞 · 아프리카를 必要로 하고 아세아 · 아프리카 敎會들이 西歐敎會를 必要로 하는 것 以上으로 西歐敎會가 아세아 · 아프리카 敎會를 必要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제 敎會에서 第1 必要로 하는 것은 德이 아니라 向上力이다. 各敎會가 特異性을 갖고 또 어느 程度의 獨立을 가지게 되면 긴장과 충돌도 있게되며 難關을 豫想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超越하는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引導해 주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할 일이라고 여긴다. 앞으로의 敎會의 모습은 여러 地方信徒들이 現在를 갖고 또 一致하면서 多樣性이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라야 할 것이다. 교황 바오로 6世께서 말씀하신 發電이란 政治的 · 經濟的 · 社會的 發電 그것뿐 아니라 人間全體의 發電을 말한 것이다. (龜)
①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②하느님의 백성은 전교하는 백성이다.
③비그리스도교와 교회
④하느님의 백성에 봉가하는 주교 · 신부
⑤백성 속에서의 평신자의 임무
⑥하느님 백성 속에서의 수도자의 사명
프리스끄 신부